▲평화와 인권의 메시지를 담은 낙서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뱅크시가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화를 제작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뱅크시 필름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뱅크시 필름
'원조 쥐 그림'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감독으로 데뷔한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뱅크시는 G20 정상회담 홍보 포스터 청사초롱 위에 '쥐 그림'을 그려 넣었다가 검찰로부터 불구속기소 됐던 박정수씨가 패러디했던 인물로 그라피티 아트의 전설로 불립니다. 당시 뱅크시의 팬 사이트는 '한국의 쥐에 자유를'이라는 슬로건으로 박씨의 구명운동을 벌였고, 그때 만든 쥐 그림 포스터는 아직도 팬 사이트에 걸려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저항문화로 시작된 낙서화(그라피티 아트)는 건물 담벼락이나 지하철 등에 스프레이나 페인트 등으로 낙서나 그림을 그려놓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거리 예술의 한 장르입니다. 뱅크시는 쥐와 경찰 등의 모양을 오려낸 뒤 구멍에 물감을 넣어 그림을 찍어내는 스텐실 기법으로 세계 각지의 벽에다 현대 예술, 폭력과 전쟁, 환경오염과 신자유주의 등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저항의 메시지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는 '얼굴 없는 아트 테러리스트'로도 불립니다. 뱅크시는 가명이며, 얼굴도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낙서화는 경범죄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상황은 희한하게 변질되어 갑니다. 브래드 피트 같은 할리우드 배우가 그의 작품을 고가로 사들이는 등 세계 유수의 경매장에서 '범법자 작품'을 고가의 상품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뱅크시로서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셈입니다.
정작 자신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시멘트 조각에 화살이 박힌 들소와 쇼핑카트를 미는 원시인을 흉내 낸 작품을 몰래 걸어 놓는 등 기발한 퍼포먼스로 자본이 지배하는 현대 예술계를 농락했음에도 말입니다. 낙서와 놀이를 통해 기성 질서의 권위를 신랄하게 조롱해 오던 뱅크시는 결심합니다. 우스꽝스러운 자본의 논리를 폭로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현대 예술계에 다시 한 번 발랄하게 도발하기로. 그가 다큐멘터리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연출한 이유입니다.
영화의 오프닝은 '거리 예술'답습니다. 스프레이를 흔들고 페인트를 혼합 후 야마카시처럼 담벼락을 올라타더니 심지어 빌딩에 매달린 채로 낙서를 합니다. 지하철에 광고판까지 도시 전체가 작업장입니다. 이윽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목소리를 변조한 뱅크시가 작업실에 앉아 영화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길이 올바른 예술의 길인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그가 말한 '이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그라피티 아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