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죽어도 좋아>의 한 장면.
메이필름
그는 우선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우리네 삶에 있어서 꼭 목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항목들을 열거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인즉슨 월급쟁이로서 그 돈을 모으려면 자산관리는 필연적이라는 것이었다.
"아이도 둘인데 이제 집을 사야하지 않아요? 주택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시죠?""집 살 생각이 아직까지는 없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제 곧 유럽처럼 임대주택 시스템이 대중화 될 것 같고, 그럼 장기임대주택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안 되면 그렇게 되도록 정치를 바꿔야죠.""그럼 집은 됐고, 아이들 등록금은 마련해야죠?""등록금이요? 뭐, 물론 저도 부모님이 대주긴 했지만, 요즘 같아서는 웬만한 부모들이 감당할 수준이 안되잖아요. 학자금 100% 주는 회사에 취직하거나 아님 역시 국가정책을 바꾸도록 해야죠. 유럽처럼 국가가 등록금을 내주거나, 아님 학생들이 굳이 대학교에 안 가도 되는 사회를 만들거나." "그럼 자녀들 결혼식 때 들어갈 비용은?""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죠. 그러려면 우선 절대 금액을 줄여야 하는데, 어차피 국가 시스템이 바뀌면 주택 문제는 쉽게 해결될 테고, 허례허식만 뺀다면 결혼에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걸요? 혼수야 명품 아니고서는 얼마든지 실용적으로 구입할 수 있고.""허, 정말 계산하기 편한 분이시네. 그럼 마지막으로 노후대책은 어떻게 할 거죠?""노후요? 그러게요. 어쩐다."
그렇다. 팀장의 질문을 요리조리 피해나가던 내가 그만 노후대책 질문에 딱 걸리고 만 것이다. 퇴직 후 지금 정도의 소비 패턴을 유지하려면 필요한 비용이 한 달에 최소한 150만 원, 1년 하면 1800만 원, 우리의 기대수명이 100살이라고 한다면 필요한 비용 약 7억. 그것도 지금 화폐가치로 7억 정도이니 퇴직이 기다리는 20년 뒤에는 10억이 충분히 넘는 액수일 것이다.
팀장이 물었다. 이 7억을 어떻게 만들 거냐고. 내가 잠깐 머뭇거리자 팀장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을 믿고 자산을 투자하라는 것.
저축만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집에 오는 길.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노후보장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다행히 하루 벌어 하루 먹을 정도의 삶은 아니지만, 과연 정년퇴직 이전에 7억이라는 돈을 모을 수 있을까? 안 그래도 백수가 되자마자 아내와 함께한 일이 현재 우리의 지출 수준과 항목을 점검하는 것이었는데 아내는 우리의 노후대책으로 연금을 한 달에 20만 원씩 붓고 있다고 했다.
한 달에 20만 원이라. 1년에 240만 원.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특히 갓 둘째를 낳은 30대 가장으로서 20만 원은 꽤 큰 기회비용이었다. 그 금액이면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먹을거리와 입을 옷을 제공할 수 있으며, 여행이라도 가서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결국 우리들의 노후를 위해 그 모든 것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과연 이 정도의 연금으로 노후보장이 될까? 문제는 그 답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금융투자기관들은 자신들에게 10년 정도 투자만 하면 노후보장이 된다며 거품 물고 선전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다. 내가 현재 30대 중반, 퇴직을 하려면 25년 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그동안 얼마나 물가가 상승할지, 또한 지금의 금융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나 될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부모님 세대를 보자. 현재 우리 사회의 50~60대들은 노후보장을 자식에게 맡기던 전근대적 사회 시스템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현대적 개념의 노후대책이 필요한 세대이다. 그들은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이 땅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으며, 열심히 저축했었다. 그렇게만 살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노후는 현재 안정적인가? 자식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만큼 그들은 경제적으로 독립되어 있는가? 비극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세대들의 많은 이들은 현재 자식에게 마냥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며, 그렇다고 자신들의 노후를 위해 무언가 특별하게 준비해 놓은 것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혹자들은 이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험이나 연금 등의 시스템이 미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가장 큰 문제는 시스템의 유무가 아니라 현재 사회의 변화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따박따박 저축만 하는 이가 있다고 치자. 과연 그가 우리 사회에서 노후까지 편안할 수 있다고 누가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따라서 우리들의 노후보장을 위해서는 그 개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어차피 사회적 변화에 대하여 각 개인들의 대응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면, 그 대응의 주체가 개인이 아닌 사회, 국가로 바뀌어야 한다. 노후보장을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되 현재와 같이 독거노인에 대한 선택적 복지가 아니라 전 국민이 노후 걱정을 하지 않을 만큼의 복지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축과 연금보험이 아니라 국가적인 노후보장 시스템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이요, 이에 필요한 정치 개혁이다. 본 기자가 주택이나 자녀들의 결혼문제 등에 대해 '쿨'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만큼, 노후 대책에 대한 관념이 바뀌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전략적인 정치적 참여가 뒤따라야 한다.
노후 대책은 모두 돈으로 해결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