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걱정 안 하냐고? 그래도 재밌으니까!

'취업 동아리'가 대세인 시대...탈춤 동아리 친구들의 속마음

등록 2011.08.24 10:26수정 2011.08.30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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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여름방학을 맞아 경남 고성으로 '전수'를 떠난 휘몰이 학생들.

여름방학을 맞아 경남 고성으로 '전수'를 떠난 휘몰이 학생들. ⓒ 박가영


3월, 새내기에게는 참으로 잔인한 달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 익숙해져야만 하는 스무 살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렇게 한숨으로 학교생활을 이어나가던 그때 개강파티가 열렸다. 서먹서먹하던 선배들과 이 기회를 말미암아 친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전 처음 마셔보는 소주의 쓴 잔을 겁도 없이 비워댔다. 그렇게 헤롱대던 내게 선배가 살갑게 말을 붙여왔다.


"너, 우리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을래?"
"뭐하는 곳인데요?"
"응, 직접 대본도 쓰고 연극도 하고 춤도 추고…. 하여튼 재밌는 곳이야. 배고프면 연락해, 언니랑 밥 한 끼 먹자."

배보다는 선배의 관심과 사랑이 고팠던지라 다음 날 결국 선배와 밥을 먹게 되었다. 아, 그것이 시작인 줄 알았더라면 그 파스타에 넘어가지 않았을 것을! 계산을 마친 선배는 의기양양하게 돌아보며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자, 너는 이제 휘몰이다!"
"예에?!"

그렇게 얼떨결에 학생회관에 찾아갔다. 동아리방을 지키고 있던 선배들은 갖은 칭찬과 회유를 통해 결국 나의 가입동의서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학에 가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일을 해보자' 하는 것이 내 목표이긴 했지만 탈춤은 그야말로 '없던 선택지'였다.

처음 춰보는 춤이란 어찌나 어색한지. 그렇게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봄에는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고, 여름과 겨울에는 방학을 이용해 일주일 동안 경남 고성으로 내려가 직접 춤을 배우기도 했다. 하루 8~9시간 가까이 춤을 추고 악기를 다루다 보면 어느새 온몸이 땀범벅. 씻기 위해 들어간 샤워장에서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지하수만 나오니 몸에 물을 끼얹다보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게다가 모기는 어찌나 많은지!


달콤한 첫 번째 방학을 생뚱맞게 시골에서 보내며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서울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춤을 추다보니 재밌고, 재밌다보니 잘 추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결국 석 달만 있어볼까, 하던 나는 어엿한 3년차 회원이 되었다.

"내 대학생활의 균형을 잡아주는 곳, 동아리"


그러나 가끔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들은 '스펙' 쌓느라 모의투자학회며 창업 동아리에 영어회화 스터디를 하는데 나는 이래도 되는 걸까. 그래서 춤을 추고 있을 때도 불안했다. 이게 정말 내 '자기소개서'에 도움이 될까? 고민을 거듭할수록 동아리 활동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렇게 방황하던 나를 다시 한번 잡아준 것은 뜻밖에도 선배가 아닌 동기와 후배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동아리나 학회 활동이 '사치'가 되어버린, 나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을 다른 대학생들에게 내게 위안이 된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1학년 - 의지하고 기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나 역시 동아리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새내기들이 들어오면 물어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질문이 있다.

"왜 이 동아리에 들어오게 되었니?"

다소 황당한 질문에 신입생 최수빈 학생(성신여대 산업디자인 1)은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며 쑥스럽게 웃는다. 대부분 대학이 그렇겠지만 자신이 느끼기에 '여대'는 개인주의가 특히 심한 공간인 것 같다고 말하며, "하루 종일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에 오니 '밥 친구', '수업친구'가 따로 생겼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런 학교생활에 회의를 느끼던 차에 동아리에 들게 되었고, 이 속에서 유대관계를 맺고 정을 느끼는 것이 좋다는 최수빈 학생. "아직 1학년이라 모든 것이 얼떨떨하고 가끔 힘들기도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이 좋기 때문에 가입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했다.

a  차례대로 최수빈, 김슬기, 유지원 학생

차례대로 최수빈, 김슬기, 유지원 학생 ⓒ 박가영


2학년 - 경제적·심리적으로 힘들 때도 많지만... 재밌으니까!

2010학번 유지원 학생(성신여대 생명과학화학부 2)은 동아리 집행부다. 동아리 관례상 2학년이 전체를 이끌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동기들과 남은 6개월 동안 공연을 기획하고 행사를 꾸려야 한다. 이 때문에 가장 걱정거리도 많고, 또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이 모든 것들이 그저 재미있다고 한다.

"1학년 때는 아무래도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 수동적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집행부가 되어 보니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실현시킬 수 있어 즐겁다. 그만큼 동기들에게 고맙고 또 미안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물론 충돌도 있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단다.

하지만 외적으로 힘들 때도 많다. 학교에서 동아리 지원금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학생들의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학교 앞에 있는 가게들을 돌며 공연비 지원을 받기도 한다. 불평을 할 법도 한데, 힘들여 완성시킨 만큼 더 애착도 크고,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고 말한다.

유지원 학생은 "환경이나 조건은 좋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긍정적으로 장점을 찾아보려 한다"며 웃었다. 또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지원금이 나온다면 부담을 덜고 더 재밌는 일들을 벌여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3학년 - 재미와 '스펙' 사이에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거야

3학년 2학기를 앞두고 있는 2009학번 김슬기 학생(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은 나와 마찬가지로 3년째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내 든든한 동기다. 그 역시 선배의 권유에 의해 휘몰이에 들어왔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탈패'가 가지고 있던 운동권 이미지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지만 직접 겪고 보니 평범한 곳이라 놀랐다며 웃는다.

그러다가도 "솔직히 스펙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동아리 활동을 왜 계속 하는 것이냐"는 짓궂은 질문에 금방 표정이 진지해진다. 그는 "나 역시 그 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부모님 역시 썩 반기는 눈치도 아니고. 그러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얻는 장점이 더욱 크다. 또래 대학생 중 자신 있게 우리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점을 생각하면 뿌듯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우리 것을 대할 때의 마음가짐도 달라진다고. 또 동아리 생활을 하며 '재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지나치게 결과에 치중하다보니 과정을 즐기기 보다는 그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재미, 무언가 내 손으로 기획하고 연출하는 재미를 찾았다고 했다.

김슬기 학생은 "왜 나라고 스펙 걱정을 하지 않겠나. 다만 그것을 맹목적으로 쫓다보면 소중한 대학생활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동아리 활동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스펙'이 아니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이들

사실 어디 나가 '탈춤 동아리'라는 것을 밝히기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사람들의 신기하다는 시선과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서였다. 그래서 나와 동기들은 우스갯소리로 사람들 앞에서 소개를 해야 할 때는 투박해보이는 '탈춤패' 대신 '한국무용반'이라고 속이자며 쑥덕공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 외로 많은 대학에서 여전히 전통 문화 관련 동아리들이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같은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말하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또 동아리 활동을 하지 않는 다른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것을 볼 때면, '이 친구들 역시 함께하고 싶었구나' 하고 짐작하곤 한다. 다만 이들이 선뜻 다가오지 못한 이유가 '이럴 시간이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혹시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을 간과하지 않았나 하여 마음 한 쪽이 무거워진다.

이들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가시적인 성과'나 '수치화된 결과'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과 부대끼며 조금씩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즐겁게 가는 이들. 이들을 보며 살아가는 데에 정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스펙'이 아닌, 달고 쓴 경험과 어떤 일이든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자세가 아닐까 깨닫게 되었다.

'재미'야 말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 아닌가. 그것을 깨닫고 실천한다는 것 자체로 이미 풍요로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품어본다.

덧붙이는 글 | 박가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가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아리 #대학 #휘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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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사람과 영화가 좋습니다. 이상은 영화, 현실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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