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산을 오르냐고 물으신다면...

오랜 친구처럼 반겨주는 월출산이 있어 행복하다

등록 2011.08.25 20:09수정 2011.08.2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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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무더위가 온몸을 땀으로 젖어들게 하고, 습도마저 높아 시원한 곳으로 탈출 하고자 하는 생각이 간절 하였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니 흐린 먹구름이 하늘을 덮었고, 비가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그냥 집에서 하루를 소일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 같이 산행에 필요한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왔다.


남도의 작은 금강산이라 불리는 월출산을 지척에 두고 안가본지 오래되어, 성전면 월남리에 위치한 월출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먼 시야의 산 정상을 바라보니 옅은 안개가 휘감고 있었다. 강렬한 햇빛이 없어서 산행 하기에 매우 적합 하여, 산속에 들어서니 멀리서 힘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들려왔다.

거울처럼 맑고 깨끗한 물이 긴 베처럼 흐르는 '경포대(鏡布臺) 계곡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어서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 바지를 걷어 발을 담궜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해지는 시원한 느낌은 이루 형언(形言) 할 수 없을 정도다. 마음 같아서는 옷을 다 벗고 계곡물에 몸을 담그면 좋으련만 많은 사람들이 왕래해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산속의 공기도 맑고 깨끗하여 몸과 마음의 상쾌함을 느껴서, 가족과 함께 올 것을 혼자만 왔다는 후회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사람들은 혼잡한 세상 속을 떠나 심산유곡(深山幽谷)을 찾아가 심신을 달래는 것 같다.

계곡에서의 탁족(濯足)을 마무리 하고 깊은 숲길을 향해서 걸음을 옮기니 화들짝 놀란 다람쥐가 순식간에 눈앞을 지나갔다. 먼저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걸어가니 풀숲에서 풀벌레 소리가 소곤소곤 들려 온다. 한참을 걷다보니 야영장에서 텐트를 치는 가족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산에서는 낯설은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친구가 될 수 있어서 참 좋다.

산의 중턱에 다다르니 지나온 길들이 아득히 멀어지고, 흐린 발자국의 흔적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삶의 여정도 마찬가지로 항상 뒤 돌아보면 아쉬움과 후회가 앙금처럼 가라앉고 허전함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게 된다. 조금만 더 잘할걸,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 조금만 더 사랑할걸 왜 못했을까 하는 자문자답을 하면서 길을 걸어갔다.


어느덧 정상을 눈앞에 두고 바위에 앉아 이마에 땀을 닦는데, 갑자기 장대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예기치 못하고 갑작스럽게 만난 복병(伏兵)이라서 피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온 몸에 비에 젖었다. 소나기는 일단 피해야 하므로 울창한 나무숲으로 들어가니 굵은 빗줄기는 간신히 비껴가는 듯 했다.

월출산은 장대 빗줄기와 그 소리로 가득 차서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깊은 숲속에 오로지 혼자서 듣는 바람소리와 빗소리는 오케스트라가 들려주는 교양곡 보다 더 감동적 이었다.


빗줄기가 그치고 다시금 숲에는 평온이 찾아 왔다. 비에 젖은 옷을 벗어 배낭속에서 마른 옷을 꺼내 갈아입고 기지개를 쭉 펴고 가파른 길을 지팡이로 짚으며 힘겹게 오르니 괴암괴석(怪岩怪石)이 험상스런 얼굴로 낯설은 나그네를 맞이 했다. 깜짝 놀랐지만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그저 평범한 암석에 불과했다.

가파른 바위에 걸쳐진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니 산아래 펼쳐진 마을과 푸른 들판에 한눈에 들어 왔다. 잠시  긴 숨을 쉬고 앞을 보니 천왕봉 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문을 보고 꼭대기에 올라 왔다는 안도감이 들았다. 너무나 오랜만에 산행을 해서 그런지 온몸에 기운이 모두 빠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연거푸 얼음물을 마시고 몸을 식히고 있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뚝 쳤다. 상기된 얼굴로 옆을 보니 같은 아프트에 사는 후배였다. 

"평상시에는 산에 가지 않은 분이 어쩐일이세요?"
"그냥 오늘은 왠지 월출산이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왔네"
"그럼 이침에 전화를 했으면 함께 왔을 것인데, 혼자 오르느라 심심했을 것 같네요?"
"그래도 쉬엄쉬엄 올라오니까 참 좋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하고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들으니  전혀 외롭지 않았.네"

후배와 산정상에서 우연히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보니, 하얀 구름이 천왕봉을 휘감아 마치 깊은 안개 속에 잠긴 듯 했다. 신비한 느낌이 들었고, 마치 모세가 시내산 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엄숙함이 흐르고 있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릴 듯 하였지만, 스쳐가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긴 침묵만 가득했다.

후배와 함께 천왕봉의 신비한 경험을 뒤로 한 채 조심스럽게 산 아래로 발걸음 옮겼다. 올라올 때에는 정상을 향해 힘 있게 올라오지만 내려 갈 때는 몸을 숙이고 조심해서 가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진리요 사람의 도리임을 월출산은 가르쳐 주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잘못가면 부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길을 잘 살피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내려가야 한다.

발밑의 평야가 서서히 그 모습이 점점 좁아지고, 산 밑에 다다르니 도갑사 약수터가 목마른 나그네를 반겨주며 시원한 물을 건네주었다. 물 한 모금 마시니 온몸에 퍼지는 시원함과 상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땀 흘린 뒤에 마시는 물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고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작은 교훈을 마음 판에 새겼다.

산행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월출산 온천에 들려 뜨거운 물에 들어가니 노곤함이 다 풀리고 마른줄 알았던 땀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열탕속의 더운 기운을 느끼면서 오히려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이 신기하다. 육신을 입고 태어나 자신의 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려 하는 것이 어찌 보면 순리에 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 속에 온천욕을 즐겼다. 

오랜 산행과 온천욕을 마치고 비어있는 뱃속을 채우기 위해 식당에 들려 산채 비빔밥에 동동주를 곁들어 허기를 채우니 이제야 세상의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 했다. 인간의 본원적 요구를 채우니 금심 또한 떠나가고 오늘의 산행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동동주 한잔에 추억을 새겼다. '한 달에 두 번은 꼭 산에 올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익히고 자연과 친구가 되자'는 후배의 건의를 겸허하게 수용하고 천하를 평정하고자 하는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했다.

하늘을 가린 먹구름 때문에 그런지 벌써 어둠의 그림자가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자동차는 웅장한 월출산을 뒤로하고 불티재 터널을 지나 강진방향 도로를 질주 하였다. 여전히 월출산의 모습이 우리들 곁에 있었고 비록 아쉽지만 달리고 달려 어느덧 집 앞에 멈춰 섰다.

왜 산을 오르냐고 물으면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고 대답하고 싶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늘 반갑고 다정스런 월출산은 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가까운 곳에 있어서 쉽게 찾아갈 수 있어서 좋고, 무언(無言)의 대화와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니 지란지교(芝蘭之交)의 친구가 되어 참 좋다.

월출산을 아직 가보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꼭 한번 찾아가서 새로운 우정을 맺고 행복한 동행의 시간을 가져 보시길 권면 해본다. 
#경포대 #호연지기 #산행 #자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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