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은 정치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주장] 천안함 사고, 투명한 유리알 속의 미로

등록 2011.09.02 09:52수정 2011.09.0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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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고 이후 정부의 조치와 북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나는 정부가 국민을 현혹하는 미로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그 미로가 투명한 유리알 속에 그려진 그림으로 조금만 눈을 뜬 국민들이라면 금방 시작과 끝을 알아차릴 수 있는, 그래서 그림을 그린 자들만의 미로임을 보고 있었다.

최근 여당의 대표가 남북 관계의 변화를 시사하고, 새로 임명된 통일부장관이 주중 대사로 있을 무렵 남북 간 비밀 접촉을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남북 간의 관계가 이렇게 고착되어서는 남과 북 모두에게 이익될 것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남과 북의 접촉 사실이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는 해군의 함정이 두 조각나고, 46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적 사고였다는 점에서, 그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절대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일관되게 북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는데 그건 지극히 당연한 대응이었다고 본다. 또한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 없으면 남북 관계 개선도 없다고 밀어붙였던 사실도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역사적으로도 천안함 사고처럼 적의 공격을 받고 46명의 젊은이들이 죽었다면 선전포고라도 할 수 있는 사건 중의 사건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봄, 남과 북의 비밀 접촉시 우리정부는 "사과는 아니더라도 유감표명이라도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북은 완강하게 거부했다는 말이 북쪽의 당사자들로부터 흘러나왔다. 곧 전쟁이라도 불사할 것 같은 강경한 입장으로 남북간의 첨예한 대립을 합리화 시켰던 우리 정부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북한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강하게 부정하거나 공격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던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전혀 맹랑한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엄청난 비극이 어이없는 말장난으로 희화되어버린 꼴을 보게 된 것 같아 못마땅했다. 

때문에 이제 다시 남북간의 접촉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남북관계 개선에 앞서 지금 정부는 천안함 사고에 대한 입장을 확실히 해줄 것을 바란다. 만약 정부가 국민들에게는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하면서 북과 접촉 과정에서는 천안함 사고에 대한 북의 최소한의 유감 표명으로 끝내려 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드러낸다면 남북대화 재개라는 명분이 좋더라도 천안함 사고가 북한의 '버불 어뢰'에 의한 폭침이었다는 정부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정부는 모든 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천안함 사고로 인한 남북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을 말리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안함 사고가 북의 소행이라는 확신에 변함이 없다면 정부는 북의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어떤 경우에도 북과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그건 희생당한 46명의 젊은이들에 대해 책임지는 국가의 태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천안함 사고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바꾸고자 한다면 정부는 선회하게 된 배경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지난 2년간 천안함 사고를 빌미로 북을 압박했던 일이 고도의 정치적 게임이었거나 다른 말 못할 사정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충분한 설명 없이 천안함 문제를 남쪽에서 스스로 철회하고 북쪽과 대화를 추진한다면 그건 우리 정부가 뭔가를 감추기 위한 비굴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천안함 사고가 남쪽의 모략이라고 일축했던 북한 정권이 강경한 입장에서 벗어나 침묵으로 선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천안함 사고가 자신들의 공격이었음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요, 자신의 폭력성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꼴이 될 것이다. 누명을 쓰고도 누명을 벗을 생각 없이 남쪽의 지원을 바라고 어물쩍 넘기고 만다면 그것 먹이를 쫓아가는 개의 모습으로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고는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아무리 스스로 국민을 미로에 가두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만 키우게 될 것이다.

요즘 시골의 노인들도 천안함 사고에 관해 의외로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부와 보수 언론은 천안함 사고가 북한 소행이라고 믿지 않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라고 우긴다. 그러면서 드러내놓고 의문을 품으면 죄인 취급하고 있다. 정말 사람 많은 곳에서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외치는 광신도들이 판치는 세상을 보는 것만 같다.

천안함 사고는 개인적으로 봐도 투명한 유리구슬 속의 미로일 뿐이다. 국민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걸 보는 것조차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우리 정부가 대북 관계 개선 과정에서 천안함 사고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주목한다. 다시 천안함 사고에 대해 정부가 확실한 입장을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천안함 사고의 진실 규명이 정부와 국민 간의 불신 해소는 물론 나아가 민족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천안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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