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들이 인센티브제를 고리로 의사들을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에는 외래 진료환자 수와 병상 가동률 등 하루 동안의 실적이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다.
송윤희 · 이선웅
"한 대학병원 진찰실 앞. 환자가 의사를 면담하고 나오는 시간이 초단위로 찍힌다. 첫 환자는 31초. 다음은 22초이고 그 다음은 41초다. 평균 진료시간은 31초다. 채 1분도 되지 않는 대학병원 진료시간에 경악을 금치 못할 때 한 의사가 병원에서 보내온 문자메시지를 보여준다. '10.12 18시 현재 당일외래 1896명, 익일예약 1646명, 총병상 681, 재원자 598(87%)' 마치 영업사원에게 '실적'을 독촉하는 듯한 내용이다."위 내용은 한국의 첫 의료 다큐멘터리 영화 <하얀 정글> 중 일부다. 현직 의사인 송윤희 감독이 연출·제작·촬영·편집한 이 작품은 '한국판 <식코>'로 주목받으며 인디다큐페스티발 2011 실험상을 수상했다. <하얀 정글>은 그동안 짐작은 했지만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던 의료민영화의 현실을 낱낱이 고발했다.
<오마이뉴스>가 지난 8월 만난 한 대학병원 레지던트 4년차 A씨에게도 같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병원들은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의료인과 환자를 짜내고 있었다.
"환자들 진료 하다보면 모니터에 '띵똥'하고 화면이 뜬다. 이 환자에게 이런 처방을 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수가를 받을 수 있는 기준에 충돌된다는 안내화면이다. 건강보험공단의 '행위별 수가제(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마다 그 횟수에 따라 진료비를 지급하는 제도)'에 최적화된 처방을 요구하는 것이다. 병원 행정 쪽에서 이 부분만 따로 모니터링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의사와 환자가 마주 앉은 진료실, 병원 자본이 그 안을 감시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비해 7배나 높은 척추수술 건수... 이유는 '인센티브 제도'?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가 시장 만능주의에 빠져든 이면에는 이제는 한국 의료의 관행처럼 자리 잡은 '인센티브 제도'가 있었다. 외래 진료수나, 수술 건수 등을 놓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현실 속에서 과잉의료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병원의 인센티브는 각종 검사나 입원 등 거의 모든 의료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는 인센티브 제도는 과잉진료 심화와 함께 건강보험재정 악화까지 가져온다. 그러나 A씨는 "양심적인 의료인도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회의를 느끼게 된다"며 "각자 버는 돈의 액수가 차이가 나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을 심하게 느끼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병원마다 다 다르지만 지방의 모 대학병원의 사례를 보면, 월 4천만 원 매출을 넘길 때마다 해당 금액의 8%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예를 들어 위암수술에는 입원비·특진료 등 모두 합쳐 약 600만 원 정도가 든다. 만약 한 의사가 20명 정도 수술하면 연봉 외 480만 원의 인센티브가 얻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센티브만으로 한 달에 1000만 원을 버는 게 어렵지만은 않은 셈이다."
한국의 척추 및 무릎 관절 수술 급증 추세도 인센티브 제도와 연관돼 있다. 현재 한국의 척추수술은 유럽과 일본에 비해 무려 7배나 많이 시술되고 있고 무릎 수술 건수 역시 5배나 차이 난다. A씨는 "척추나 무릎 수술의 경우, 수술이냐 재활이냐를 놓고 그 기준이 굉장히 광범위하다"며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는 수술 시술이 선호되는 한국 의료 환경에서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기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故) 탤런트 박주아씨 사건으로 논란에 빠진 '다빈치 로봇수술'도 마찬가지다. A씨는 "환자들이 일반 수술(100만 원)보다 월등히 비싼 다빈치 로봇수술(1500만 원)을 택하는 것은 병원 측이 제시하는 수술 대기 시간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병원에서 일반 수술 대기시간은 3개월에서 5개월로 잡는 한편, 다빈치 로봇수술을 택할 경우 1~2주일 내로 대기시간을 줄여준다"며 "이는 환자들의 불안감을 이용한 돈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고가 검사나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의료가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적용되기도 한다. 책 '의사의 거짓말(가제)'을 집필 중인 이상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효과가 없고 비싸기만 한 진료나, 효과는 없는데 부작용만 있는 시술도 행해진다"고 지적했다.
"어떤 곳을 보면 중풍 예방 차원이라며 뇌 MRI를 찍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중풍은 뇌의 혈관구조를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괜스레 돈만 쓰는 경우다. 암세포를 발견한다고 '양전자 단층촬영기(PET)'를 권유하는 곳도 있는데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비싸고 좋은 검사이긴 하나 무작위로 찍는다고 효용이 있는 건 아니다.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다 정상으로 나올 결과를 비싼 기기로 재확인하는 셈이다."시장 만능주의에 포위된 의료현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시장 만능주의에 포위된 의료 현실에 환자만 고통 받는 건 아니다. 이 정책위원은 "개업의들이 살아남기 위해 비싼 의료기기를 도입하고, 이를 환자에게 써먹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돼 있다"고 지적했다.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의료서비스 대신 환자들이 선호하는 인테리어·신기술 등으로 승부를 볼 수 밖에 없는 '정글'이 형성됐단 얘기였다.
다음은 이 정책위원의 말이다.
"현재 서울 지역 개인의원은 포화상태로 치열한 경쟁이 예고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비싼 기계를 들여서라도 '포장'을 한다. 포장에 든 초기비용은 환자가 고스란히 부담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인 시장이었다면 겉포장에 주력한 상품은 경쟁을 통해 금방 퇴출됐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는 다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진다."대형병원들이 병상 수를 늘리는, '규모의 경제'에 집착하는 것도 의료인과 환자 모두를 힘들게 하는 원인이다. OECD 국가 중 최근 20년 간 인구 대비 급성기 병상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뿐이다.
이에 대해 서울 종합병원 6년 차 간호사인 B씨는 "수술 및 입원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반해 간호사 수는 늘어나지 않는다"며 "근무를 3교대로 진행하긴 하지만, 노동강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 같은 근무환경으로 인해 수면장애까지 얻었다고 했다. B씨는 "야간 근무를 끝내고 돌아오면 잠을 들 수가 없어 수면유도제까지 먹어야 된다"며 "수술실에서 일하는 간호사의 경우, 유산 확률이 배로 높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이처럼 간호사들의 피로도가 높을수록 의료서비스 질은 떨어지고 사고 발생 가능성은 높아지는데 병원은 차등병실, 주차서비스 등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환자들과 의료인들만 고통 받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루비콘강 앞에 선 한국 의료, 조속히 무상의료 추진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