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 진단 받으신 장모님... 가슴이 아렸다

내 메모장에 기록한 '장모님 병상 일지'

등록 2011.09.07 09:49수정 2011.09.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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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였다. 아침을 먹는데 차를 대는 소리가 들렸다. 피곤해하는 아내 얼굴도 떠올랐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예상대로 퇴근하는 아내가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틀 연속 밤 근무하느라 고생했지,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다 말았다.


 출근하려고 대문을 나서는 아내. 가을이어서 그럴까요. 고마우면서도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출근하려고 대문을 나서는 아내. 가을이어서 그럴까요. 고마우면서도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종안

어제(5일)도 출근하려고 대문을 나서는 아내에게 "운전 조심해!"라는 말만 했지 "사랑한다!"는 말은 못했다. 피부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아서였다. 친정어머니 병환으로 마음 아파하는 아내를 위로도 하고 애정표시도 할 좋은 기회였는데 놓쳐서 아쉬웠다.

내 메모장에 기록된 장모님 병상 일지

부산 처제 아파트에 사는 장모(85)님이 지난 7월 15일 신장(콩팥)을 하나 떼어내는 대수술을 했다. 그날은 수술이 잘되었다고 해서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다음날 오후에는 꿰맨 부위에서 출혈이 심해 중환자실로 옮겼다는 전화를 받았다.

수술 후 며칠은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소식에 가슴을 졸이며 보냈다. 수술 6일째 되는 날(21일). 아내와 점심을 먹는데 처제가 전화를 해왔다. 장모님 병세가 호전되어 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웠으나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다. 고령이셨기 때문이다.

아내는 직장에 매인 몸이어서 혼자라도 문병을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해서 당일치기로라도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훗날 함께 가자며 말렸다. 아무리 남편이지만, 병색이 가득한 친정어머니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딸의 심정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내는 약속을 어겼다. 며칠 후 혼자 문병을 다녀온 것이다.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다. 그래도 장모님이 요관, 신장, 임파선(림프선)을 떼어냈다는 소식은 전해주었다. 간호사 경력 40년의 아내가 전하는 장모님 병명은 신장암 3기. 어이가 없었다.

아내는 신장은 하나 떼어내도 30년은 너끈히 산다며 어머니(장모)는 재수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소변에 혈류가 나와 병원에서 조사해서 암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 아내는 더 늦었으면 1년 버티기도 어려웠을 거라며 8월에 잡혀 있던 수술을 앞당겨서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했다. 그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8월 초순에는 처제가 전화를 해왔다. 장모님이 퇴원해서 집에서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걷기를 싫어해서 운동을 시키고, 수술 부위가 잘 여물지 않아 걱정된다는 내용 것이었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처제는 어머니 보살피랴, 살림하랴, 아이들 키우랴 무척 고생하는 모양이었다. 

8월 13일에는 장모님이 경남 양산시 모 병원에 재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술 후 한 달이 되었는데 조직검사를 해보니 상처 부위에서 맹독성 균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그런지 자꾸 불길한 예감만 들었다. 

아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는 게 더 중요

시간이 지날수록 장모님 문병도 좋지만, 아내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안심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 생각했고, 아내가 하는 얘기에 반대하거나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신경을 쓰면서도 장모님 뵙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남이 전해주는 얘기만 들으니까 좀이 쑤셨다. 아내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초조하고 불안했다. 한두 시간이라도 뵙고 오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상처도 빨리 아물고 회복기도 짧다. 하지만, 기력이 쇠한 노인들은 상처가 잘 아물지 않으며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노인 환자는 상태가 좋아도 내일을 장담 못한다고 하는데 걱정되었다.

어렵게 이루어진 장모님 문병

달포 가까이 마음을 태우다가 친정어머니 병시중을 위해 휴가(3일)를 신청하고 출발하는 아내를 따라 문병을 다녀왔다. 그날이 8월 28일. 병실에서 두어 시간 머물다가 왔는데, '장모님 문병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병실에 들어서니 장모님은 나를 금방 알아보았다. 표정이 밝아지면서 생사를 모르던 친정동생이 찾아온 것만큼이나 좋아했다. 우선 정신이 맑은 것 같아 안심되었다.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안부도 묻고, 나의 건강까지 걱정해주는 장모님이 고마웠다.

지난 3월 26일 찾아뵈었을 때는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몸을 움직이면 여기저기가 쑤시고 저리니까 육장 TV 앞에만 앉아 있다"며 "식사도 하루에 한두 끼만 먹고, 교회 예배도 한 달에 한 번밖에 참석하지 못한다"라고 투정하듯 말했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5개월 전 일들이 옛날처럼 느껴졌다.

 주사자국으로 멍든 장모님 손등. 평생 일만 해먹고 사느라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했다는 장모님 푸념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주사자국으로 멍든 장모님 손등. 평생 일만 해먹고 사느라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했다는 장모님 푸념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조종안

병상으로 다가가 장모님 눈부터 확인했다. 환자는 식사도 잘해야 하지만, 눈동자가 살아 있어야 회복이 빠르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망이었다. 각막 표면에 이물질이 끼어 눈동자가 누렇게 보였기 때문. 고령이라고 하지만 상태가 너무 심한 것 같았다.

손등과 팔에는 누구에게 맞아 멍든 것처럼 피가 시커멓게 맺혀 가슴이 아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손목을 잡으니까 손등은 예전처럼 온기가 돌아 다행이었다. 손을 만지고 비비고, 또 만지고 비비고···. 어렸을 때 꽁꽁 언 손을 녹여주던 어머니 손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

문병을 마치고 오는데 장모님께 달리 할 말이 없었다. 10년 백수라서 손에 쥐어드릴 것도 없었다. 다만, '안나 엄마'(아내)가 없으면 다른 병상의 환자하고라도 대화를 많이 하시라고 당부하고 병실을 나왔다. 빠른 쾌유를 기원하면서.
#장모 수술 #문병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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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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