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만에 또 길 잃어...이런 미로 또 없습니다

[모로코에서의 한 달 14] 모로코의 화석도시 '페즈'

등록 2011.09.14 19:26수정 2011.09.14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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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로 페즈가는 길

모로코는 가는 곳마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분위기가 다른 도시들이 많다. 이런 다양성이 어떻게 한나라로 모여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페즈도 그런 도시 중 하나다.


모로코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페즈는 '살아있는 화석 도시'라고 불릴 만큼 중세 아랍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지난번 기차와 택시를 번갈아 탄 마라케시에 갈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기차 값과 기차에서 메디나(구시가지)로 가는 택시 값과 고생을 합하면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바트에서 대형택시(말만 대형이지 크기가 크진 않다. 일반 승용차 크기에 6명까지 탈 수 있다.) 한 택시에 라바트에서 페즈까지 1600디람 정도로 가격을 흥정해놓고 출발했다. 라바트에서 동쪽으로 200km 정도. 택시로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차로 도시 간을 이동하니 기차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기차가 모로코의 황량한 벌판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 택시를 타고 가면 마을을 지나가기 때문에 축제를 하고 있는 모습, 시장의 분주한 모습 등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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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완

우리가 예약한 숙소 바로 앞까지 갈 수 있다는 장점에 택시를 탔는데 페즈에 도착하니 문제가 생겼다. 페즈의 메디나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길이 좁아 더 이상 차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택시아저씨한테 아무리 따져 보아도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현실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아저씨가 10디람 정도를 받고 알려주신다고 해서 따라 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도로 길을 찾는 것은 포기


다음날이 되어 지도 한 장 들고 숙소를 나가는 순간. '막막하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 쓰이는 거겠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페즈는 9세기경부터 이드리스 왕조의 수도였고 1981년에는 페즈의 메디나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859년 이드리스 왕조 때 세워진 세계에서 손에 꼽을 가장 오래된 대학인 이슬람 신학대학, 알카라윈 대학도 페즈에 있다. 이러한 이유로 페즈는 모로코에서는 빠지지 않는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하지만 당나귀가 지나간다 치면 골목의 모두가 벽에 등을 딱 대야 할 만큼 좁은 골목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는 이곳은 관광객에게는 정말 미로나 다름없다.

처음에는 길이 갈라질 때마다, 5분에 한번씩 현지인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길을 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은근 슬쩍 말을 걸어오면서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현지인들을 뿌리쳤다. 하지만 9,400여개의 골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곳에서 지도를 들고 길을 찾는다는 것이 불가능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골목골목 웬만한 건물높이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벽들 때문에 이러다가는 빠져나가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젊은 현지인 청년이 길을 안내해주겠다며 말을 걸어오기에 따라나섰다. 이 청년은 자기는 페즈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눈을 감아도 길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메디나에서 운반수단인 당나귀가 짐을 실고 지나갈 때만 빼면 걸음이 빠른 이 청년을 따라잡느라 다들 진땀 좀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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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완, 곽온유, 허현정

가죽의 회색 염색약은 비둘기 배설물

먼저 안내해준 곳은 천연가죽염색을 하는 곳이었다. 페즈는 알제와 통하는 대상로(隊商路) 역할을 하면서 상공업이 발달하였다. 그 중에도 가죽이 특히 유명하다. 고약한 냄새가 심해질수록 가죽염색을 하는 곳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도착하니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가죽을 헹구고 있는 흐르는 물이었다. 오염이 많이 돼서 저기서 가죽을 헹궈서 더 더러워지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염색하는 곳 입구에서는 민트 풀을 나누어 준다. 냄새가 심하기 때문이다.

두층을 올라가니 천연염색을 하는 모습이 한 눈에 펼쳐진다. 옅은 회색은 비둘기 배설물로, 주황색은 헤나로 이렇게 천연염색을 한다. 멀리 떨어져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직접 가죽을 담그고 일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곤욕일까 싶었다. 가죽의 종류와 염색하는 과정을 설명 듣고 간 곳은 가죽상점이었다. 찌는 더위에 가죽잠바를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이렇게 둘러 볼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 여기저기 잘 훑어보았다. 잠바부터, 가방, 소파까지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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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완, 곽온유, 허현정

그 다음 안내한 곳은 아르간 오일을 파는 가게였다. 모로코에서만 재배된다는 아르간 열매는 식용과 미용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이 봉사를 간 단원오빠도 모로코에 가면 아르간 오일은 꼭 사와야 된다며 상점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많이 구입하니까 파는 분께서 기분이 좋으셨던지 비누까지 덤으로 주신다. 상점 한쪽에서는 직접 아르간 열매의 껍질을 까고 있는 여자분 들이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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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가짜 페즈인도 등장

마음이 급한 청년은 어서 발길을 옮기라고 재촉한다. 그 다음 보여줄 건 직접 수공업으로 카펫을 만드는 곳이었다. 좁디좁은 문을 지나가니 안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탁 트인 넓은 공간이 있다. 건물 3층 높이는 족히 될 만한 카펫이 바로 앞에 걸려있고, 아저씨들이 수다를 떨고 계셨다. 이 건물만 해도 천년은 족히 넘은 거라고 설명해준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동화책에서만 봤던 베틀이 보인다. 이 베틀로 카펫을 짜는 거라고 한다. 원색의 카펫들은 어떻게 사람 손으로 이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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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온유

쉴 새 없이 구경을 하고 지친 우리들은 이 청년에게 카페에 가자고 졸랐다. 이 청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안 받는다고 하고 구경이 끝나면 백팔십도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의심했는데 우리가 마음에 들었나본지 그러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방문한 상점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모양이었다.

페즈에서 나고 자란 이 청년은 유럽을 보내 준다고 해도 자기는 페즈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한다. 페즈 사람들의 이 도시에 대한 자부심은 유별나다. 요즘에는 페즈 사람도 아닌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현지인 행세를 하며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자기는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일자리가 없어 이렇게 낮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안내를 해주고, 저녁에는 복싱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복싱을 한 지는 오래되어서 한눈에 보아도 몸이 단련되어 있다.

안내가 끝나고 이 청년은 자기 갈 길을 가고 우리는 택시를 잡는 곳으로 이동했다. 별로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5분이 지나지 않아 또 길을 헤매니 어디선가 갑자기 그 청년이 나타나 반대쪽 길이라고 알려준다. 우리가 계속 같은 길을 맴돌았나 보다. 택시를 타니 이제야 길 잃을 걱정은 없겠구나 라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비록 시간이 없어 가보진 못했지만 페즈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이프란(Ifrane)도 교육생들이 꼭 가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프랑스의 보호국으로 있을 때에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지어진 유럽풍의 마을이라고 한다. 모로코의 '작은 스위스'라고 불린다고 하니 그때 못 가 본 것이 한이 된다. 이프란과 더불어 이프란에서 멀지 않은 아즈루(Azrou)라는 곳도 모로코에서 유명한 베르베르 도시니 꼭 가볼 만 하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모로코 #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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