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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29일)는 오랜만에 아내와 마주앉아 아침을 먹었다. 아내 직장이 집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거리이고, 체중관리 하느라 굶을 때가 잦으며, 근무표까지 들쑥날쑥해서 머리 맞대고 아침을 먹을 때가 드물다. 하나 좋은 점은 쌀독의 식량이 오래간다는 것.
아내가 쉬는 날이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상의하며 밥을 먹는데 창밖에는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추위를 재촉하는 비여서 조금 스산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감이 주렁주렁 열린 감나무와 아스팔트 땅바닥을 때리는 빗소리는 운치가 있어서 좋았다.
29일은 군산시가 후원하고 군산문화원이 주최하는 제20회 '오성문화제전'(五聖文化祭典)이 열리는 날. 초대장도 받고 했으니 취재를 해야겠는데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9시 10분. 우중에도 행사를 치르는지 군산문화원 이복웅(66세)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성제전 행사가 오전 11시에 열리는 것으로 아는데 비가 오네요. 그때까지 비가 내려도 행사를 강행하는지요?"
"아~ 그래요. 우천(雨天)시에도 개최합니다. 대신 장소를 오성산 정상에서 군산중앙고등학교 강당으로 옮겼어요. 오성산 입구에 도착하면 안내판과 현수막이 걸려 있을 것입니다. 관심 가져주어서 감사합니다."
오성문화제전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이 원장은 지역 문화행사에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하다는 뜻을 거듭 밝혔다. 2002년 12월 <우리고장의 지명유래>(군산문화원)를 발행한 후에도 군산지역 지명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이 원장은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향토사학자.
군산은 서울에 비해 문화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고 시설도 열악하다. 그럼에도 무명작가 작품 전시회나 아마추어들이 펼치는 공연에서 먹는 음식에 버금갈 정도로 마음의 양분을 얻고 풍요와 여유를 찾을 수 있어 되도록 참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비는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아내가 행사장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승용차로 10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지만, 고마웠다. 그러나 계속 비가 내리면 취재를 마치고 이동하는 것도 문제였다. 후배들과 저녁 약속이 잡혀 있었기 때문.
오성제전은 제1부 오성대제례, 제2부 개막식, 제3부는 군산문화예술단이 펼치는 민요와 가야금 병창, 무용 등 다채롭게 펼쳐지는데, 행사가 모두 끝나면 오후 2시가 넘을 것 같았다. 해서 곰곰이 생각하다 아내에게 함께 있다가 오자고 제의했다.
"나를 데려다 주고 함께 있다가 왔으면 좋겠는데. 유교식으로 치러지는 제례 절차와 민속공연 등을 감상하고 그곳에서 점심도 먹고 말이지. 오성인 혼풀이와 한량무 시연은 볼만 하거든."
"글쎄요. 구경하는 것보다 집에서 푹 자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한량무 같은 거 별로 취미도 없고. 그런데 점심은 무슨 점심이에요?"
"응, 2부 끝나고 12시 넘으면 참석자들에게 도시락을 하나씩 나눠주거든. 전에도 먹어 봤는데 고급은 아니지만, 반찬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괜찮더라고···."
"도시락을 나눠준다고요. 재밌겠네. 하여간 저는 그냥 올 거예요."
아내는 결혼 전부터 소설을 써오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모 출판사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와 집필 중이다. 사물을 보면 본만큼 생각도 늘고 넓어지는 법. 아내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함께 하자고 제의했던 것인데 10시 30분이 되도록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차에 올랐다.
행사장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아내는 마음이 변했는지 차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오겠다고 했다. 강당에서는 성산 고살메농악단의 땅울림 한마당이 펼쳐지고, 한쪽에서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사)한국차문화재단 회원들이 전통 녹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혹시나?'로 시작했지만 '역시나'로 끝나
제1부는 남정근 전 옥구문화원장 사회로 봉제선언, 신위봉안, 헌공다례, 초헌·아헌·종헌, 독축, 헌시낭송(김양규 향토사학자), 오성인 혼풀이(임귀성 예도원 원장), 헌화, 종제 선언으로 마쳤다. 2부는 개식사에 이어 국민의례, 대회사(이복웅 제전위원장), 격려사(문동신 군산시장) 순으로 이어졌다.
2부 공연에 이어 한량무 시연이 펼쳐졌고, 자원봉사자들은 객석의 참석자들에게 도시락과 노란 종이에 인쇄된 행운권을 나눠주었다. 궂은 날씨에도 참석자가 600명이 넘어 모자랄 것 같다며 걱정하는 자원봉사자도 있었다.
도시락과 행운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싱글벙글. 행사장 분위기가 흥청거리기 시작했다. 철부지 꼬마처럼 하나 더 달라고 떼쓰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함께 온 누구네 엄니가 화장실에 갔다며 도시락을 의자 밑에 감추는 할머니도 보였다. 웃음이 나왔다.
아내와 내 손에도 도시락과 행운권이 쥐어졌다. 아직 온기가 남은 도시락을 만지는 순간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아내와 관중석으로 올라가 먹었는데 먹는 재미까지 더해 맛이 더욱 착하게 느껴졌다. 아내도 재미있다며 반찬까지 모두 비웠다.
아내 행운권 번호는 508번, 나는 509번. 기념품을 쌓아놓은 곳에는 레저용 자전거도 놓여 있었다. 혹시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밀려왔다. 학창시절 소풍 갈 때마다 했던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 가슴이 설렜다.
행운권 추첨은 3부 문화공연과 함께 치러졌다. 운이 좋아 당첨된 분들은 환호하며 앞으로 뛰어나갔고, 주위 사람들은 "오시기를 잘 혔네요!", "오신 보람이 있으시네요!"라며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와 내 번호는 호명되지 않았다.
'혹시나'로 시작해서 '역시나'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조금 허탈했지만, 별미인 도시락을 아내와 고개를 맞대고 먹었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이나마 기대와 꿈에 부풀어 실컷 웃었으니 본전 이상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장을 나오는데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백제 오성인(五聖人)의 충절'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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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 온조가 지금의 서울(위례성)에 건국(BC 18년)한 것으로 알려지는 백제(百濟)는 3국의 각축전으로 금강(錦江) 중류의 사비(부여)와 웅진(공주)으로 두 번 천도한다. 따라서 두 도시를 끼고 흐르는 금강은 백제의 문화교역로이자 생명선이 되었다.
금강 하류. 지금의 군산시 성산면에 자리한 오성산(227m)은 백제 교역로의 관문이었다. 그러나 백제는 서기 660년(의자왕 2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다. 당시 나당연합군(13만)이 백제를 공격할 때 가장 강력하게 저항했던 지역이 오성산이었고, 그곳에 오성인이 있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임피현(臨陂縣) 고적조(古蹟條)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치려고 오성산에 병사를 주둔하고, 안개로 헤매다가 다섯 노인(오성인)을 만났다. 그들에게 사비성으로 가는 길을 묻자 '너희가 우리나라를 치러 왔는데 어찌 길을 가리켜 줄 것이냐!'라고 항거하였다. 격분한 소정방은 노인들을 참살했는데 후일 물러갈 때 충절을 기이하게 여기고 오성산 위에 장사지냈다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소정방의 오성인 참살은 지금부터 1351년 전의 일. 여지도서는 '오성인(五聖人)의 충절'로 표기하고 있다. 그래서 군산시와 군산문화원은 조국을 사수하다 장렬하게 산화한 백제인들의 투혼 속에 피어난 오성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92년부터 매년 '오성문화제전'을 개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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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10.01 13:42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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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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