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탈리아처럼, 투표 이틀 합시다

서울시장 선거 투표를 이틀 한다면 그 결과는?

등록 2011.10.13 11:15수정 2011.10.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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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이야기다. 투표를 이틀간 하자. 

다른 나라의 예가 없지 않다. 이탈리아는 일요일이 투표일이지만, 월요일에도 투표가 가능하다. 일요일은 아침 8시에서 밤 10시까지, 월요일은 아침 7시에서 오후 3시까지. 투표일이 이틀이다.

인구의 98%가 가톨릭인 나라니까, 종교적인 이유로 성직자 처럼 일요일이 평일보다 더 바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휴일에 더 바쁜 사람들은 성직자 말고도 분명히 있다. 그 사람들에게도 평등한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평일에도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한 듯하다.

사실 우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휴일 관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한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 자영업자,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쉴 틈이 없는 중소기업 종사자가 적지 않다.

우리도 이탈리아처럼 투표 이틀하자!

하루라도 공휴일이 생기면 아이들과 유원지 가는 게 훨씬 중요한 부모 유권자들도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생계에 바쁘고, 저학력층이고, 가난하고,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들이 공휴일에 투표하기가 더 어렵다.

우리의 총선과 대선, 지방선거 투표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공휴일이다. 그러나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는 요즘, 공휴일 다음날까지 투표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건 황당한 주장이 아니다. 물론 투표율이 올라가면 불리한 정당이나 정치세력은 어떤 명분으로라도 반대할 것이다.


우선, "별도의 법정 공휴일까지 보장했는데 선거일을 굳이 하루 더하는 것은 사례도 없다(이탈리아의 투표일은 일요일이니까)"고 할 수 있다. 워낙에 외국 사례를 잘 따지는 사대근성이 강한 한국 국회(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경험에 근거한 주장이다)에서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그 아이디어를 차용하는 것이지 꼭 같은 제도를 도입할 필요는 없다.

"별도의 공휴일을 지정하는 것은 그만한 정치적 책임을 부여한 것이니, 국민의 정치의식을 나태하게 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투표에 그만한 정치적 책임을 부과하자면 그날 하루에 대한 보상을 국가가 해주거나 아니면 생계 걱정을 하지 않을만큼 복지가 잘 갖추어져야 하지 않을까?


선거관리에서의 어려움이나 부정시비도 있을 수 있다. 아마도 1993년 이전의 선거에서는 투표일을 이틀로 하면 그날밤에 무수한 투표함에서 부정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첫날 투표가 종료되면 개표장소로 옮겨서 경찰이 참관인들과 함께 보관하다가 다음날 가져오면 된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안해도 지금은 투표함에 손을 대서 부정을 저지를 만한 일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런 주장들이야 실은 갖다 붙인 명분일 뿐이다. 한가지 실제로 염려할 만한 일은 경제적 손실, 관리비용 같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경제냐, 정치냐 하는 식의 이분법적 도식을 들이댄 다음, 소위 경제신문들이 주동이 되어 기업들이 걱정한다는 둥, 국민들도 굳이 돈을 더 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둥 하는 주장을 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지만, 결코 그냥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낮은 재보궐 선거 투표율... 과연 민주적인가

일단 재보궐 선거의 투표일을 이틀로 해보자. 재보궐 선거는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것도 아니다. 그 자체가 이미 법정 공휴일이 아니니 공휴일에다 뭘 더하는 것도 아니다. 선거사무에 들어가는 실무비용만 추가하면 그만이다. 당연히 비용적 측면(경제적 손실이든 관리비용이든)에 대한 반론이 어렵다.

무엇보다 재보궐 선거의 투표율은 대부분 충격적으로 낮다. 응당 다수 국민이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반대하는 정당도 명분 만들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공휴일에 하는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도 50% 안팎이다. 이런 상황에 쉬지도 않는 날 일부 지역에서만 벌어지는 보궐선거의 투표율이 20~30%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 정치혐오가 높다, 관심이 적다, 투표 캠페인이 문제다, 연령대별 투표율이 너무 차이가 난다 하는 갑론을박은 대체로 헛다리를 짚는 것이다. 애초에 투표를 할 만한 충분한 기회를 보장한 다음에 저런 논의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가령 재보궐 선거를 보자. 시골에서는 농사에 바쁜 시절이라면 그날 날씨에 따라 일을 맞추어야 해서 투표하러 가기 어렵고, 주요 인구가 출퇴근하는 도시 주민들에게 어떤날 하루만 주고 출퇴근 전에 하라는 것이 과도한 부담일 수도 있다.

실제로 투표 당일에 날씨가 어떠냐에 따라 투표율이 달라지고 당락이 달라지는 경우는 많다. 그런데 21세기에도 후보자와 정당들이 비가 와서 졌다는 둥, 날씨가 좋아서 이겼다는 둥 하면서, '천운'을 탓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이번 재보궐 선거의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예측불허다. 그러나 야당들은 투표율 때문에 어떻다거나, 선관위가 오히려 투표 훼방한다는 타령을 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입법활동에 먼저 힘쓰면 좋겠다.

이번을 기화로 재보궐 선거에서 투표일을 이틀로 하는 개정안을 발의해 보자. 단 몇 퍼센트라도 투표율이 올라가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유권자에게 투표할 권리가 보장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더 나은 민주주의다. 이 더 나은 민주주의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도 시행되면 좋겠다. 1987년 이후 이렇게 민주적인 선거법 개정도 별로 없다.

투표 참여 보장이 민주주의의 확장이다

야당 입장에서는 어떤 선거전략도 이만한 게 없고, 설령 안 되는 한이 있더라도 논란이 되면 될수록 반대하는 당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다. 보수정당이라도 더 나은 민주주의를 반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당연히 선거전략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문제다.

단지 참여를 높이자는 주장만도 아니다. 명백히가장 기본적이고 가시적인 수준에서 평등한 정치참여가 보장되고 있는가의 문제다. 이탈리아의 선거제도를 소개한 한 책은 '평등한 투표'라는 제목의 장에서 '투표일은 어떻게 보장되는가' 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요컨대 평등한 투표는 단지 '1인1표'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보장되었는데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는 아직 멀었다. 이런 거창한 주장만해서는 별로 나아지는 것이 없고, 실은 더 현실적이고 절박한 과제가 은폐되기 쉽다. 물론 진실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상상력을 좀 더 발휘해보자. 가장 쉽고 기본적인 정치참여 방식인 투표에서도 너무나 많은 불평등이 존재한다. 공휴일에, 재보궐 선거일에 투표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 꽤 되는 것이 분명한데 정치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보장되었다고 하겠나.
#투표 #선거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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