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1위 100% 맞힌 아내의 재보궐선거 예언

[주장] 나경원 선전... 이번에도 '욕망 투표'에 고개 떨구게 될까

등록 2011.10.21 18:28수정 2011.10.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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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열풍이 수그러들 줄 모른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건 <나가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 내로라는 가창력에 화려한 무대, 순위 발표를 앞두고 둥둥거리는 긴장감까지, 이 모든 게 어우러진 최고의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상찬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우리 가족도 얼마 전부터 <나가수>의 골수팬이 됐다. 특히 내기를 걸고 하는 '순위 맞히기'는 우리 가족의 <나가수> 백 배 즐기기 방식이다. 얘, 어른 할 것 없이 지그시 눈 감은 채 음악을 감상하고, 순위를 매기는 동안만큼은 여느 가요 평론가의 그것 못지않다.

그런데, 대학 시절 악기 두루 만지작거리며 음악 꽤나 했다고 자부해온 터지만, 난 단 한 번도 내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한두 번을 제외하곤 가창력이 단연 최고라고 손가락 치켜세운 가수는 늘 후순위였다. 어럽쇼, 얼마 전에는 재볼 것 없다며 1순위로 지명한 가수가 아예 꼴찌를 한 바람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반면 아내는 발군의 기량을 뽐냈다. 찍었다면 맞히는, 확률 거의 100%의, 차라리 예언가다. 노래가 끝나기가 무섭게 가수들마다의 대강의 순위를 짚어내는 것이, 마치 점수를 매기는 관객들의 머릿속을 훤히 꿰뚫어 본 듯 용하기만 하다. '비법'을 물어봤다.

"목소리로 감동을 주는 시대는 갔어요. 가수라면 '목'은 기본, 이제는 '몸'이 받쳐줘야 해요. 노래 실력보다 외려 외모와 무대매너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죠. '비주얼'에 익숙해져버린 관객들의 공감을 얻고, 점수를 따려면 그래야 해요. 자기 스타일 고집하며 얌전하게 노래만 잘 불러서는 인기를 얻을 수 없죠. 바야흐로 버라이어티 예능의 시대잖아요."

듣고 보니 그랬다. 언제부턴가 나가수는 '노래'가 아닌, '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이 됐다. 과거 가수는 노래만 잘하면 됐지만, 지금은 빼어난 외모에다 쇼맨십 또한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시나브로 가수가 가창력보다 외적인 이미지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것도 이젠 옛말, 숫제 '다홍'이 아니면 '치마'가 아니라는 격이라고나 할까.

만들어진 이미지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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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8월 26일 오후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열린 이임식에 참석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 유성호


가수만 그런 것 같진 않다. 얼마 전 무상급식 찬반투표를 강행해 스스로 사퇴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전형적인 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180억 원이라는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실패한 정치인일 뿐이지만, 주위에서는 여전히 그를 '투명하고 깨끗한', 닮고 싶은 변호사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잘 생긴 외모에다 고려대 출신이라는 학벌, 그리고 변호사로 활약하며 특히 1990년대 인기 TV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하면서 얻은 대중적 인기에 이르기까지 그는 웬만한 흠결 정도는 너끈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이미지를 지녔다.

더욱이 이후 어느 정수기 회사의 TV 광고에 출연한 것은 기존의 선한 대중적 이미지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광고 중 '세상을 맑고 투명하게 (만들고 싶다)'라는 그의 감미롭고 자상한 멘트는 그야말로 여성층을 중심으로 맹목적인 지지 세력을 만들었다. 광고주의 상품이 아닌, 되레 모델을 띄워 준 광고였던 셈이다.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기 위한 발판이라는 서울시장에 무난하게 당선된 그의 탄탄대로 같은 정치 이력도 선한 대중적 이미지가 가져온 결과라 해도 무방하다. 이미지 덕에 당선된 탓인지 그가 펼친 정책 또한 '디자인 서울', '한강 르네상스' 등과 같이 이미지를 홍보하는 데에만 주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긴 현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도 '자수성가한 CEO'라는 이미지 덕을 본 것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몇 해 전 어느 방송사 드라마를 통해 그려낸 그의 '드라마틱한' 삶은 시청자들에게 적잖은 감동을 주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순간 정치적 자산이 되어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말하자면, 드라마 속 '유동근'에 '이명박'이 유권자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오버랩된 것이다.

나경원이 선전할 거란 아내 예측이 맞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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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가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장위골목시장을 돌며 상인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아무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이른바 '셀프 탄핵'으로 판이 커져버린 이번 10·26 보궐선거에도 어김없이 정치인들의 이미지 논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노래만 잘해서는 가수로 성공할 수 없는 시대, 정치인들 또한 고유의 정책보다 다른 '흥행 요소'를 우선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고,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그에 따라 들쭉날쭉 요동을 친다.

선거판에서는 심지어 '나쁜' 이미지도 '무명(無名)'보다는 훨씬 유리하다며,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방송에 자주 노출되어야 하고 후보가 대중 앞에서 '망가지는' 것조차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아니면 말고' 식의 인신공격조차도, 어떻든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구미 당기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나가수'에서 발군의 족집게 실력을 보여준 아내는 서울시장 야권 단일후보가 정해질 즈음 선거 관련 뉴스를 보다가 또 하나의 '예언'을 했다. '누가 야권 단일후보가 돼도 여권 후보에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눈먼 고정표 말고도 상당한 유권자가 여권 후보에 매력을 느낄 것이라는 거다.

"서울대 법대 학벌과 판사 경험, 집권 여당의 강단 있는 대변인 이미지에다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엄친딸'인데, 혹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앞으로 두고 보세요. 보수 여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50~60대는 물론, 20대 젊은 유권자들조차 적잖은 지지를 보내게 될 테니."

나름 일리 있다고 생각했지만, 선거판에서 아무리 이미지의 힘이 강력하다고 해도 이번만큼은 다를 것이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이번 일이 여당 소속 서울시장의 '헛발질'에서 비롯된 만큼,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선거로 귀결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 정부의 끊이지 않는 '닭짓'에 대한 여론의 뭇매가 더해져 선거 결과가 되레 싱거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선거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아내의 불길한 예언은 현실이 돼 가고 있다. 비교적 큰 격차로 시작된 여론조사 지지도가 시나브로 오차 범위 내로 줄어들었고, 최근 들어 판세가 뒤집혔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욕망에 충실하도록 가르쳐온 우리 교육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박원순 야권단일후보. ⓒ 남소연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보면, 선거 때마다 '게스팅 보트' 역할을 해온 40대 유권자들의 지지도가 여전히 당락의 최대 변수라는 걸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놀라운 건 따로 있다. 조사기관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실상 몰표가 예상됐던, 그래서 그들을 얼마나 투표장으로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라던 20대 유권자의 여야 후보별 지지도가 어금버금하다는 점이다.

청년 실업과 값비싼 등록금 문제 등으로 신음하는 20대 중 상당수가 여권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지만, 함께 해당 기사를 읽던 아내는 이해 못할 것 없다며 담담해했다. 나아가 욕망에만 충실하도록 가르쳐온 우리 교육의 '원죄'라고도 했다.

"어쩌면 20대가 '욕망 투표'에 가장 익숙한 세대일지도 몰라요. 주구장창 경제만을 외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떻든 내 주머니에 만 원짜리 한 장이라도 쑤셔 넣어줄 거라고 믿은 것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그저 닮고 싶다는 '선망'이 눈먼 지지로 연결될 수 있는 거죠.

생각해보세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 출신 판사를 지낸 빼어난 외모의 젊은 국회의원과, 빈한한 시골 출신에다 이마에 주름 가득한 변호사 출신 시민운동가 중 20대들이 '현실적'으로 꿈꾸는 삶이 어디에 더 가까운가를. 조금 과장하자면, 그들에게 투표라는 건 현실의 팍팍한 삶을 잠시 잊게 만드는 TV 드라마 같은 것인지도 몰라요."
#10. 26 보궐선거 #욕망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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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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