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학을 입학한 첫 해, 농촌활동을 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매일 소주를 PET병 채로 들이키는 농민분 이야기입니다. 매년 농산물 시장은 폭등과 폭락을 반복하는데, 국가는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재배작물을 추천하고 농가부채를 빌려주죠. 당시에 유리 온실을 국가에서 추천했는데, 이 유리온실이 우리나라 기후랑 잘 안맞았나봐요. 그래, 꽃값은 폭락하고 온실 때문에 농가부채만 몇 억. 옆 동네 아저씨는 자살하고, 제가 간 마을 분은 매일이 술이었답니다.
지난 2000년 7월 1일. 제 생애 절대 잊지 못할 일이 있었습니다. 농수산물시장 전면개방이란 것인데요. 요즘엔 가격이 꽤 올랐지만, 개방 초기에 오렌지가 3~4개에 천 원씩 길거리에서 팔렸습니다. 과일이란게 필수적으로 골고루 먹기보다는 하나를 먹으면 다른 하나는 안먹게되죠?
그 당시 몇 년전의 유리온실과 같은 정책으로 추진된 추천 작물이 방울토마토였습니다. 방울토마토를 키우는 농민들은 시위를 벌이면서 도로를 토마토빛으로 물들게하기도 하였죠. 이 때 방울토마토 한 박스에 천 원씩 하는데 박스값만 800원 정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지쳐버린 농민분들은 스스로 그 목숨을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거의 매일 사회면 한 귀퉁이에는 농민분들의 자살 소식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드니 사람들은 참 무관심해지더군요. 너무 슬퍼서 매일을 울었습니다.
한 방송사는 미래한국리포트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사회의 '과도경쟁'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목소리를 SNS를 통해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들도 보여집니다. 물론 대립이 더 커졌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소통이 늘어나면서 당연히 의견들이 부딪치는 것도 늘어난 것이라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올해 희망버스를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우리 사회가 옆 사람을 돌아보기 시작했구나, '돈'이 아닌 '사람'이 자리하기 시작했구나' 희망이 울려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2011년, 서울 시장 선거가 끝나고나니 국회에서 한미FTA를 통과시킬 것만 같은 기운이 감도네요. 민주노동당 이정희대표는 민주당이 조용히 반대표결만 하고 포기하려는 것 아니냐며 비판하고 있죠. 그러던 중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울음이 복받쳐 오릅니다.
매일 매일 농민들이 목숨을 내려놓고, 사회는 그것들에 무관심하게 세상을 살아내는 과거의 우리를 반복해야 하는 것일까요? 또 다시 그런 기사들, 절대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좀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해 옆 사람이 목숨을 놓아야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타살입니다. 우리, 같이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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