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울중학교 복도 게시판 한쪽에 '사랑의 매, 무서워요'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한울중은 체벌을 전면 금지했다.
박상규
20년도 훨씬 더 지난 케케묵은 이야기를 새삼 꺼내는 건, 광주의 한 중학교에서 교사가 교실 복도에서 학생이 교사의 머리채 잡이까지 하며 벌인, 이른바 '머리채 싸움' 뉴스를 접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몇몇 언론에선 물 만난 고기 마냥, 교권이 얼마나 실추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며, 체벌을 부활시키고 해당 학생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는 이렇다. 해당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간 게 발단이 됐다. 교사는 그 아이를 훈계하기 위해 따로 교무실로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고, 얼마 후 복도에서 마주치게 되자 교사는 그 아이를 자신이 수업하는 교실로 데려가 거친 말을 섞어가며 심하게 나무랐다. 이전에도 휴대전화를 통해 동영상을 보는 등 수업태도가 좋지 않다고 수차례 지적당해 온 터였다.
심한 꾸지람에 분개한 아이는 교실을 박차며 나갔고, 이를 막아서던 교사와 언쟁이 오가는 가운데 급기야 '머리채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다른 교실에서 동료 교사들이 달려 나와 싸움을 뜯어 말리면서 이내 마무리되었지만, 이 모든 장면이 복도에 설치된 CCTV를 통해 그대로 녹화되었다.
공교육의 붕괴 위기라는 요즘의 현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벌어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교사와 학생 사이가 더 이상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맺어질 수 없는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그 아이의 패륜적 행위에 대한 일벌백계는 당연한 조처일 테지만, 그것만으로는 엄중한 학교 현실이 그다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분노를 잠시 삭이고, 이를 교사들의 획일적인 생활지도 방식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보면 어떨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러한 '패륜아'가 사건이 발생한 그 학교에만 있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만 돼도 흡연과 음주는 조만간 교칙의 단속 조항마저 빼야 할 정도로 보편화된 게 현실이고, 가출과 폭행, 상습 절도로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 듯하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다. 기실 그 학생이 교사의 '머리채'만 잡지 않았다면 별 탈 없이 넘어갈 일이었다고 할 정도로 학교의 생활지도가 한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교와 교사의 생활지도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거칠게 말해서, '대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체벌이 불가피하며, 막장 얘들에게는 여전히 몽둥이가 약'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 학교가 그런 아이들을 지도할 능력이 부족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일임을 고백할 용기도 없으면서, 여태껏 매라는 손쉬운 대증요법에만 기대온 것이다. 그런 탓에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는커녕 시나브로 상황이 악화되는 모양새다.
이른바 '막장' 아이들은 부모와 가족이 감당해야 할 몫이자, 정도가 심한 일부 아이들의 경우에는 전문가의 상담과 병원 치료를 필요로 한다. 곧, 학교가 결코 대신해줄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이유로 모든 책임과 비난을 학교가 감당해야 한다면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다. 부모조차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아이를 학교에서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이의 그릇된 행동은 온전히 부모와 가족의 책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년 초 담임과의 상담 때 '오로지 선생님만 믿는다'며 선물 들이밀 게 아니라 자녀 교육의 한 축을 함께 책임지겠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학부모와 교사는 아이를 중심에 놓고 교육에 대해 서로 고민을 나누고 협력하는 관계여야지,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안기고 비난하는 대상일 수는 없다.
그러자면 부모가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 예컨대, 정작 살아가는 데에 별 쓸모가 없는 지식을 몇 개 더 얻겠다고 밤늦도록 교실에 잡아두는 건, 부모와 자녀와의 건강한 관계를 끊어내는 짓이다. 하루에 밥 한 끼조차 함께 먹을 수 없다면 그걸 어찌 한 가족이라 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커가는 과정에서 자녀의 성격과 행동 변화를 되레 부모가 교사에게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분하기보다 어떻든 우리 교사들이 먼저 노력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