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될 김장 속

등록 2011.11.13 10:47수정 2011.11.1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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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두고 오기라도 한 것처럼 급하게 귀가한 이후 바로 샤워를 했다. 교합을 앞둔 서툰 총각 모양으로 황급히 옷을 벗고 몸을 씻었다. 일 년에 한 차례밖에 먹을 수 없는 김장 속을 대하는 심정은 오래도록 구애하다 마침내 승낙을 받은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토록 원하던 여인을 얻게 된 순간에 몸을 깨끗이 씻는 예의를 갖추는 것처럼 김장 속을 먹을 때도 할 수 있는 성의를 다해야 마땅하다.

 

돼지고기를 삶으면서 굴을 깨끗이 헹궈내며 날밤을 엷게 저미고 잣을 고르는 것 역시 곧 얻게 될 여인에게 좋은 옷과 백을 사주는 것과 흡사하다. 이미 교합을 허락받았음에도 최대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그저 살에다 살을 부벼 넣는 의무적 섹스로 전락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시간이 되면 먹어야 하고 살기 위해서 연료를 채우는 것 같은 식사와 김장 속을 먹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안이다. 하물며 모든 것을 직접 키우고 만들어 보낸 것임에야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귀하게 성장한 여인을 대하는 것처럼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밤을 썰다 칼날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손가락 끝을 베어 적지 않은 피를 흘렸어도 인상조차 쓰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인을 가지기 위해서 상당한 지출을 감수하는 것처럼 이 정도 고통과 출혈쯤은 얼마든지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배려와 기다림의 모든 과정을 충분히 경유한 다음 마침내 모든 준비가 끝났다. 올해 따라 유난히 붉고 촉촉하게 채색된 김장 속은 육감적이고 풋풋한 여체(女體)를 방불케 한다. 알맞게 절여진 배추에 뜨거운 돼지고기를 한 점 올린 다음 속을 얹어 입에 넣었다. 씹기조차 버거울 지경으로 입이 미어지도록 집어넣고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에 눈을 크게 흡뜨고 머리를 흔드는 모습은 섹스의 첫 과정에 돌입한 것과 흡사할 것 같다.

 

이윽고 숨을 돌린 다음 날것 그대로의 속을 씹자마자 불꽃놀이처럼 뜨겁고 강렬하게 터져나는 박력 있는 식감에 그만 숨이 막혔다. 몇 차례 우물거릴 때마다 더욱 강하고 풍부하게 어우러지는 맛은 극치의 오르가슴이다. 어느 사이에 삼킨 다음 빠르게 배어드는 여운은 억겁의 윤회를 관통한 것처럼 희열을 들끓게 한다.

 

그득 따라둔 차가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 미뢰(味蕾)를 헹구었다. 잔뜩 흥분한 나머지 순식간에 끝나버린 첫 교합의 시트를 말끔히 걷어낸 다음 두 번째의 오르가슴을 틀어넣었다. 맵고 강렬한 김장 속을 잘 익은 돼지고기가 부드럽게 감싸고 굴의 향미가 흐르는 가운데 잣과 밤의 상큼함이 틈틈이 박혀 어우러진 식감에 사정 직전에 오른 것처럼 열뜨고 혼미하다.

 

투명한 소주의 입자가 촉매로 작용하여 더욱 강하고 격렬해진 맛이 그대로 혈관에 빨려들었다. 그것을 삼킨 다음부터는 손이 의지를 따르지 않았다. 득도의 조짐이라는 무념무상이 아마 이럴까? 정신없이 속을 먹고 술을 삼켰다. 감동을 포식하고 사랑을 포만한 다음 그만 눈물이 났다.

 

김치를 완성하기 위한 부속물에서 완전히 독립된 별개의 음식인 김장 속은 성인식의 의례이기도 하다. 돼지고기를 곁들여 먹는 김장 속의 맛을 이해할 수 있게 된 사람은 한국인으로서의 성인식을 무사히 통과한 것과 같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고력(苦力)을 감내하고 만들어 보낸 김장 속을 그리 쉽게 먹기 어려운 것처럼 성인식의 기회도 그리 흔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김장에의 동참은 구성원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입증되는 것이다. 김장 속을 먹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뜨거운 국물의 내부에서 시원한 부위를 걸러낼 수 있으며, 집에서의 식사가 단순히 연료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눈을 가리고 먹어도 우리 집의 김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한 사람의 한국인이 완성된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닌 만큼 김장 속을 아무리 예찬해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서글프게도 앞으로는 김장 속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을 것 같다. 유명한 맛집과 식당들이 자랑하는 보쌈과는 전혀 다른 김장 속을 먹을 수 있던 데는  그만한 희생에 힘입은 것인데, 당신들께서는 이상 고력을 감당하지 못하실 것이다. 김장 속을 먹을 때마다 자식들 먹일 김장에 소용되는 모든 것을 길러 거두고 다듬으며 절여내 버무린 당신들의 희생과 고력에 목이 메었었다.

 

앞으로는 그러시지 말라고 한사코 만류했지만 정말로 김장을 못 먹게 되면 어쩌나 하는 이기심이 꿈틀거리지 않았던가. 그때마다 웃으며 무말랭이와 시래기거리까지 말려두시던 분들이 이제는 정말 한계에 이르신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해주었던 김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당신들의 심정이야 오죽 할 것인가. 앞으로는 힘들어도 너희들이 담가 먹으라는 말씀이 아프고 스산하게 버무려졌다.

2011.11.13 10:47ⓒ 2011 OhmyNews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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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권 출판을 목표로 하는 재야사학자 겸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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