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드냐? 억울하냐? 그럼 싸워!

[서평] <삼성을 살다>

등록 2011.11.17 11:45수정 2011.11.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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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살다 ⓒ 이상재

삼성을 살다 ⓒ 이상재

한국에서 여성 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거기에 더해 삼성이라는 국내 최대 기업의 사무직 노동자로서의 삶은 또 어떤 것일까?

 

다소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의 '이은의'씨가 펴낸 책 <삼성을 살다>. 저자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국내 최대 기업이라는 삼성의 직장문화와 대면한다. 자존심 강하고 꿈 많은 이 여성 노동자가 접한 삼성은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다. 이 책에는 '어떻게 좌절하고 또 어떻게 싸웠나'에 대한 12년 9개월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낸 책 <삼성을 생각한다>가 삼성 내 최고위층 인사만이 알 수 있었던 다종다양한 기업비리 종합선물세트를 보여 주었다면, <삼성을 살다>는 일반 평사원의 시선에 비춰진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의 맨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책 제목에 '삼성'이라는 기업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에 이 책의 성격을 단순히 삼성재벌 폭로 정도로 예상하고 읽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이 책에서 저자는 삼성 특유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문화, 특히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정밀하게 감시하는 듯한(실제 그럴지도 모른다) 무노조 정책 등에 관해서 상세하게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삼성의 기업문화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는 데 있지 않다. 구태의연하고 비합리적인, 때로는 탈법적인 직장문화에 맞서 무려 12년 9개월에 걸쳐 힘들지만 의연하게 싸워나간 한 노동자의 삶의 기록이라는 점이 강점이다.  

 

그 투쟁 또한 '노동자 투쟁', '사내 민주화', '정의'와 같은 거대담론이 아닌, 순전히 저자 개인의 차원으로 초점을 맞추고, 담담하게 자신의 소소한 일상과 내면의 심리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폭압적인 탄압과 그에 맞선 치열한 투쟁기를 예상하고 책을 펼쳐든 독자들은 동료관계, 업무 이야기와 같은 회사생활과 해외여행, 연애 이야기마저 심심찮게 나오는 부분에서는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직장상사의 성추행을 회사에 알리고 시정을 요구한 후 회사에 법정소송까지 벌인 뒤, 7년 만에 결국 승리하는 엄청난(?)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승리 뒤에는 성추행을 회사에 알린 이후 회사 측에 의한 문제회피, 가해자 감싸기와 업무배제, 승진누락, 왕따 등이 연이어 이어진 긴 세월이 있었음을 확인하는 씁쓸함도 이 책에 있다.

 

이 글을 읽을 여성학자들이 혹시 느낄 못마땅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글머리에 굳이 '여성'을 부각시킨 이유가 있다. 한국의 직장문화에서 많은 여성들이 이씨가 받았던 상처와 피해와 같은 각종 차별과, 인권침해가 특정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너무나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도 고졸 학력으로 취업한 여성의 승진제한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던가, 남성사원에 비해 차별받는 대졸 여성사원의 승진, 직장상사의 성추행에 대해서도 참을 수밖에 없는 여성노동자들의 애환이 자신 혹은 동료 여성들의 이야기속에 자세히 나와 있다.

 

조직, 특히 삼성과 같은 거대집단과 맞선 개인의 싸움은 개인의 패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패배는 패배로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해당 개인이 직장을 떠나는 결과로도 많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씨는 직장을 떠나지 않고 용감하게 그리고 영리하게 싸워 자신이 옳았음을 법적으로 확인시키고 난 후에야 회사에 사표를 던진 멋진 노동자였다.

 

책 제목을 그냥 '직장을 살다'로 해도 될 만큼 이은의씨가 겪은 체험들은 이 땅의 많은 기업들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책을 읽고 있는 중에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여성 선후배들에게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직장생활에 힘들어 하는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권해야겠다고 마음이 바뀌었다. 그리고 위로해주고 싶다.

 

"힘드냐? 억울하냐? 그럼 싸워!"

덧붙이는 글 | <삼성을 살다> 이은의 씀, 사회평론 펴냄, 2011년 10월, 359쪽, 1만4000원

2011.11.17 11:45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삼성을 살다> 이은의 씀, 사회평론 펴냄, 2011년 10월, 359쪽, 1만4000원

삼성을 살다 - 12년 9개월

이은의 지음,
사회평론, 2011


#삼성 #삼성을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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