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두 번은 봐주지 않는다
임기 채우고 싶다면 오늘 잘 생각하시라

[주장] 한미 FTA 서명하는 순간, 국민적 저항 각오해야

등록 2011.11.28 20:55수정 2011.11.29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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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화 부의장이 한미FTA 비준안을 기습 상정하자 의장석으로 뛰쳐나간 최규성 민주당 의원이 의사봉 빼앗기를 시도하고 있다. 오른쪽에 마스크를 쓴 김진표 원내대표도 보인다.
지난 22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화 부의장이 한미FTA 비준안을 기습 상정하자 의장석으로 뛰쳐나간 최규성 민주당 의원이 의사봉 빼앗기를 시도하고 있다. 오른쪽에 마스크를 쓴 김진표 원내대표도 보인다.남소연

지난 11월 22일 한미FTA 비준 동의안이 국회에서 한나라당 '날치기'로 통과되었다. 취재진도 없고 국회방송도 없이 비공개로 진행되려던 국회 본회의는 야당 당직자가 창문을 깨고 진입하면서 일반인들에게 알려졌다.

야5당은 즉시 국회비준 무효를 주장했고 분노한 시민들은 길거리로 나섰다. 날치기 논란에도 11월 29일 국무회의에서 한미FTA에 관련된 14개 법률안에 대한 대통령 서명이 있을 예정이다. 대통령 서명 이후, 관련 법령들은 법제처로 보내진다. 이후 한미 양국이 한미FTA 발효 준비가 끝났음을 알리는 서면통보를 하면, 협정이 공식 발효된다. 정부는 내년 1월 1일 협정 발효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미FTA와 관련해서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국민이 저항하는 양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직후였던 지난 2008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이른바 FTA 선결조건이라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그것을 반대한 전 국민적인 촛불시위를 우리는 아직도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다. 촛불시위가 절정일 때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광화문에서 들려오는 '아침이슬'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며칠 뒤 대통령은 대국민특별 기자회견(2008년 6월 19일)에서 국민들에게 사죄하며 "어떤 정책도 민심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성난 촛불민심은 주무장관의 고시를 늦추기도 했고 한국 정부가 재협상에 나서도록 떠밀었다. 그러나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이나 검역주권의 문제는 여전히 애매한 상태로 남아 있고 대만과 일본의 수입조건이 우리보다 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던 정부의 약속도 지금은 공수표가 되어 버렸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처음 촛불집회가 열렸던 2008년 5월 2일, 그 집회는 '이명박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였다는 점이다. 보수언론이나 정부가 주장하듯 처음엔 순수했던 촛불집회가 나중에 정치적으로 변질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그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믿지 않았으며 대통령에 취임한 지 불과 두 달여 밖에 안 지났지만 그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각에는 새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이명박, 3년 전 쓴 반성문 벌써 잊은 건가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5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5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최근 쇠고기 파문에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청와대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난 지금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면, 그날 대통령의 사죄와 반성이 이후의 행적에 그리 큰 영향을 준 것 같지 않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사건의 본체라고 할 수 있는 한미FTA를, "옳은 일은 반대가 있어도 해야만 나라가 발전한다"며 국회에서 날치기로 처리한 것을 보면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민심과 함께" 하겠다는 반성문은 이미 오래전에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시간을 더 줘 봐야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3년 전의 경고는 끔찍한 현실이 되었다.


아니, 별 소용이 없었다고 최종적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약 24시간을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오는 29일로 예정된 대통령의 서명을 포기한다면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최소한의 진정성을 마지막으로 믿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물대포까지 맞아가면서 한미FTA 비준 철회를 요구하며 길거리에 나선 이유는 단지 한미FTA가 재앙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만이 아니다. 시민들이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향후 한국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그렇게 중요한 국가 간 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주권자인 국민이 자기 의견을 낼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과라기보다 과정이다. 최선의 결론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다수 국민의 총의를 모으면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비전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민 다수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결정과정에서 소외된다면 결국에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날치기한 한미FTA는 협정문만 1000여 쪽에 이를 정도로 방대하다. 특히나 이번 FTA는 한국의 여러 법과 제도를 이른바 '선진화'하는 협정이므로 단순한 무역협상과는 달리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과 향후 파급력이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국민의 뜻을 대의한다는 국회의원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협정문구 한 자 한 자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은 한미FTA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찬성하는 대로 반대하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대로 이 협정이 향후 한국과 한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최대한 치밀하게 검토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다. 그렇기 때문에 찬성자는 반대자에게 또 반대자는 찬성자에게 그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제공해야만 서로가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수 있다.

4년간 이익 극대화 모색한 미국, 그런데 우리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날치기 비준 처리 규탄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가두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날치기 비준 처리 규탄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가두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살수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고 있다.권우성

19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2000년대 이후 바뀌기 시작한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 때문에 나는 한미FTA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관료들과 정치인들과 통상대표들이 한국의 국익을 최대한으로 지킬 수 있는 결과를 들고 올 것으로 기대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한미FTA 국회비준을 전후해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그리고 한국의 관료들이 한국보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는 위키리크스의 폭로 내용을 참고하면),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FTA인지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ISD나 역진방지조치 등 이른바 독소조항들에 대해 정부는 반대론자들이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만 가정해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고 한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따져봐야 하는 과학자로서 나는 고위관료들의 이런 태도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상대성이론이 뉴턴역학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은 1.75초에 불과한 별빛의 휘어짐 때문이었고, 100년이 지난 지금은 빛보다 겨우 60나노초 빨리 비행한 중성미자가 현대물리학의 근본을 위협하고 있다.

이번 한미FTA는 기본적으로 기업들에게 한국정부와 최대한의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는 협정이기 때문에, 정부의 초월적인 힘이 제거된다면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관료들이라면, 반대하는 전문가들의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상력을 탓하기 전에 지나치게 극단적인 상황에도 대처할 방법을 응당 마련해야 하는 법이다.

이렇듯 논란이 확산되면서 또 하나 확인된 사실은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한미FTA를 둘러싼 토론과 이견조정 및 사후대책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4년 동안 의회가 FTA의 이해당사자들과 모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한 뒤에 의회비준을 마쳤다.

한국에서는 협정문조차 제대로 읽어본 국회의원이 거의 없을 정도로 협정에 대한 연구와 이해 조정에 들어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최근의 어느 TV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정부입장을 공공연히 편드는 토론진행자가 프로그램 말미에 "ISD만 해도 이렇게 토론할 게 많고 의견차이가 큰 줄 미처 몰랐습니다"라고 실토하기도 했었다. 반대론자가 제기하는 독소조항은 이것 말고도 무려 10여 개나 더 있는데, 과연 우리가 선진국들과 FTA를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성찰해 본 적도 거의 없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한나라당이 지난 22일 마치 군사작전 벌이듯이 속전속결로 비준안을 날치기한 행태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정면으로 위배한 야만적인 폭거에 다름 아니다. 인감도장을 국회의원들에게 맡겨 둔 것과도 같은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계약서 문안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장 관리하는 대리인이 자기만 믿으라며 우격다짐으로 주인 몰래 도장 찍은 것과도 같다. 게다가 그 대리인은 자신조차 협정문의 내용이 뭔지도 잘 모른다.

대한민국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엄중히 경고한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날치기 처리 규탄 촛불집회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한미FTA 비준안 한나라당 단독처리를 규탄하며 '한미FTA저지', '이명박 심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날치기 처리 규탄 촛불집회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한미FTA 비준안 한나라당 단독처리를 규탄하며 '한미FTA저지', '이명박 심판'이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유성호

지난 2008년 시민들이 빼앗긴 권리를 되찾겠다고 길거리에 나섰을 때 정부와 보수언론은 자신의 주장과 목적이 옳다고 해서 그 수단과 방법이 모두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며 시위대를 나무랐다. 똑같은 이야기를 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 한미FTA가 아무리 아름다운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국민들이 진짜 장밋빛인지 충분히 꼼꼼하게 따져보기 전에는 잿빛 서류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주권자란 그저 헌법조항 속의 글귀일 뿐이고 실제로는 국가중요정책결정과정에서 일방적인 통보만 받고 자신의 인감도장이 어디에 어떻게 찍히는지도 모른다면, 그런 국가는 더 이상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독재국가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 날치기가 공식 발효되어 폐기되지 않고 유지된다면, 미래의 또 어느 정치가와 관료들은 국민들의 생각이나 의견 따위는 간단하게 무시하고 자기 입맛대로 국가중대사를 결정하려고 할 것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는 미래에 두 배 이상의 짐으로 넘겨진다. 그때는 지금보다 그 잘못을 바로잡기가 훨씬 더 어려울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불의에 대한 즉각적인 응징은 반듯한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중요한 덕목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독재정치로 한국을 이끌었던 지도자로 기억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명박 개인을 넘어, 온 국민과 대한민국 전체의 불행이다. 이미 말했듯이 오는 29일 국무회의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날치기 처리된 한미FTA 이행 법률안에 대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서명을 할 예정이다. 그 서명의 의미를 대통령은 똑똑히 알아야만 한다. 만약 내일 예정대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명한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파괴한 독재자임을 자인하는 자술서에 서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와 함께 3년 전 청와대 뒷산에서 '아침이슬'과 함께 쓴 그의 대국민 사과문은 완전히 쓰레기 조각이 되는 것이고 왜 그때 기회와 시간을 더 주자고 했냐는 원성이 거리와 하늘을 뒤덮을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최근 카다피의 최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에서 이미 그 역사적 진리를 확인해왔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또다시 민심을 저버리고 '독재자 자술서'에 서명한다면, 국민들은 더 이상 그의 남은 임기를 기다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은 단 하루라도 빨리, 설령 그때가 퇴임하기 전날이라 하더라도 독재자를 권좌에서 몰아내기 위해 싸울 것이다.

서명을 포기하라. 한미FTA  발효를 거부하라. 그렇지 않으면 2008년을 능가하는 엄청난 국민적 저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덧붙이는 글 | 이종필 기자의 트위터는 @ststnight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종필 기자의 트위터는 @ststnight입니다.
#한미 FTA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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