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정자각 뒤로 신덕왕후의 능이 높게 올려다 보인다.
성낙선
왕비가 된 어머니, 비참한 최후를 맞는 아들들정릉 역시 앞서 다녀온 태릉과 마찬가지로 절대 권력을 둘러싼 투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잘 보여주는 곳이다. 정릉은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가 잠들어 있다. 태조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이 신의왕후고, 둘째 부인이 신덕왕후다. 신의왕후가 살아 있었다면, 그가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의왕후가 조선 개국 1년 전에 사망하면서,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조선의 첫 번째 왕비가 된다.
신덕왕후로서는 뜻하지 않은 영예를 누리게 된 셈이다. 그렇지만 그 영예가 그가 낳은 아들들에게까지는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운명에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던진다. 신덕왕후에게는 방번과 방석, 두 명의 연년생 아들이 있었다. 야심이 많았던 왕후는 태조와 신하들을 설득해 정실부인이 낳은 여섯 명의 아들들을 제쳐두고 자신의 둘째 아들인 방석을 왕세자로 책봉하게 만든다.
처음엔 첫째 아들인 방번을 태조의 후계자로 내세웠다가 그 뜻이 관철되지 않자, 대신 방석을 왕세자 자리에 앉힌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때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정도전과도 손을 잡았다. 물론 신의왕후의 장성한 아들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다. 세자 책봉을 둘러싸고 신덕왕후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방석이 왕이 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그 산들은 어쩌면 애초 넘을 수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험난한 여정을 앞을 두고 신덕왕후가 갑자기 숨을 거두면서 왕세자 방석과 연줄이 닿아 있는 이들의 운명은 더욱 암울해진다. 신덕왕후가 숨진 후 2년 뒤 신의왕후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세자인 방석을 비롯해 방번과 정도전 등을 모두 죽인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이방원이 정종으로부터 왕권을 넘겨받아 조선 제3대 왕에 오르는 태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