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의 증언> 표지
오마이북
정연주는 이런 모든 일들을 낱낱이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여 국민을 각성시켰다. 그러고는 원고를 다시 손질하고 여기에 '엄기영 사장에게 보내는 편지'와 '젊은 벗들에게'를 추가하여 단행본으로 펴냈다.
"내가 KBS에서 쫓겨난 지도 벌써 3년 너머의 세월이 흘렀다. 강제 해임된 뒤 홀연히 떠날 수도 있었다. KBS 안팎에서 험악한 꼴을 많이 당했기에 그런 것 다 뒤로 던져버리고 잊는 것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 더 나은 길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기록하고 증언하는 것이, 평생 동안 언론을 업으로 해온 내가 감당해야 할 사회적·역사적 책무이기 때문이었다. 아픔과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기록하고 증언해야 했다." - '머리말'에서<정연주의 증언 - 나는 왜 KBS에서 해임되었나>(오마이북, 2011)를 통해 저자는 2008년 KBS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를 해임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누가 언제 어떤 일을 했는지 등을 역사에 증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해임 이후 KBS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일선에서 취재하는 기자들과 프로그램을 만드는 PD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정보들과 조중동의 몰락 예언이명박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는 데 얼마나 집요했는지, 그리하여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기 위해 무슨 짓들을 벌였는지는 알려질 만큼 알려진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정 사장이 검찰과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한 법정 투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도 웬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렇게 알려진 사실 말고도 갖가지 흥미롭고 의미 있는 정보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런 정보들 중에는 ▲ KBS 사이비 저널리스트들의 기묘한 행태 ▲ 가히 '괴기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성싶은 어용노조의 변태성(?) ▲ 일신상의 출세만을 좇는 앵커와 기자들 ▲ 사장 몰아내기에 부역한 사내 이사 '6(敵)'의 이야기 ▲ 후임 간부들의 이중성 ▲ 특히 후임 사장 김인규의 '극과 극'적인 처신을 소개하는 '비하인드 스토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책의 긴요함은 이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를 격려한 원로학자 리영희·백낙청 교수와 김대중 전 대통령, 개념 있는 연예인 김제동, 온갖 회유와 압력을 담담히 견디다가 KBS 이사직은 물론 교수직까지 박탈당하는 신태섭 교수의 미담, 그리고 때 묻지 않은 KBS 젊은 기자들의 열정 등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긴요함은 이 책이 과거를 되새기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희망을 예언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노아의 방주에 어린 잎사귀를 물고 와 홍수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한 비둘기처럼 세상에 희망을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저자는 이 책의 제6장을 '그래도 희망은 있다'라는 제목으로 장식하고 있다.
저자는 이명박 정권의 실패와 조중동의 몰락을 예언한다. 아마도 그는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조중동에게 많이 공격당한 인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중동을 가리켜 태연히 '조폭언론'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조중동을 보지 않는 젊은 세대가 희망의 근거라고 진단하면서 조중동의 몰락이 임박했다고 확신한다.
종이 신문업이 사양산업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일수록 종이 신문을 구독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이를 만회하려고 무리수를 두었는데 그것이 곧 TV 종합편성 채널이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조중동의 몰락을 재촉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종편채널이야말로 조중동의 '죽음의 덫'이라고 단언한다.
먼저 종합편성 채널 자체가 불법적인 미디어법에 근거한 것이므로 차후 얼마든지 재허가 취소가 가능하다. 다음으로 한국의 광고시장은 새로운 종편채널에까지 옮겨 갈 여력이 없다. 종편의 시청률이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래서 종편은 속성상 막장 방송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는 예상 역시 지금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
TV 방송에는 거액의 초기 함몰비용이 발생한다. 프로그램의 제작비용은 종이신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 드라마만 해도 일정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저자는 제 아무리 조중동일지라도 이 많은 악조건을 극복하기란 어렵다고 본다. 여기에다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으로 인해 공영방송인 KBS와 MBC가 이미 조중동 성격의 방송이 돼버린 판에 시청자들이 굳이 또 다른 조중동 방송을 보려 하지 않을 것임을 감안한다면 종편의 시청률 제고는 기대하기가 난망이다.
조중동의 몰락을 기대하는 저자지만 한편으로는 진보언론에 대해서도 따끔한 비판을 잊지 않는데 이것은 정말 공감이 가는 대목이어서 소개하기로 한다. 저자는 자기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법조기자의 심각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고 하는데, 그것은 검찰 중심의 취재 관행 때문에 빚어진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법조 출입기자들은 대검찰청 기자실을 중심으로 하고, 법원 취재는 등한시한다. 그러다 보니 검찰이 주는 먹이를 덥석덥석 물면서 그게 특종이라고 여기고 대서특필한다. 수구언론이고 진보언론이고 구분이 없다. 특히 사안이 정치적인 경우 검찰은 진보언론에 먼저 먹이를 주는 것을 종종 보았다. 결과는 수구언론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 202~203쪽나는 정연주처럼 살고 싶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