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는 잘 팔려도 사진집은 안 팔리는 세상"

사진과 사진집을 함께 감상하는 '포토북 페어'

등록 2011.12.20 18:41수정 2011.12.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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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일상 속에서 흔해진 게 요즘이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아도 사진집을 사서 보거나 소장하는 문화는 우리 사회에 아직 정착되지 못한 것 같다. 그 덕에 큰 서점에 가도 언감생심 '사진집 코너'는 보기 힘들고, 감상하기 힘들게 비닐포장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사진집을 사보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세칭 '기변 (기종변경)'이라 하여 값비싼 DSLR 카메라(렌즈 교환식 고급 카메라)와 렌즈는 자주 바꾸지만 집 안에 한두 권의 사진집을 비치해두는 교양과 문화가 아쉽다. 오리지널 전시작은 아니어도 사진집 한 권에도 감동은 고스란하다. 편하게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사진과는 다른 깊이와 내공을 느끼게 된다. 사진집도 책의 속성을 따라가나보다.  


그렇게 접하기 힘든 사진집들이 모두 모여 있는 반가운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열리고 있다. 오로지 사진만 전시하는 갤러리 '류가헌'에서 진행 중인 '포토북 페어'가 그것. 안 팔린다는 사진책을 꾸준히 출판하는 이 시대의 선구자 같은 십여 개의 출판사들이 참여해 힘들게 만든 사진집들을 보여주고 있다.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소담한 갤러리의 분위기가 관람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소담한 갤러리의 분위기가 관람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김종성

사진집 참 다양하기도 하다

우주가 만들어낸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에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다양성이다. 획일화된 사회일수록 자연미보다 인공미를 좋다 하고, 예술보단 기술이나 기능을 앞세운다. 멀쩡히 잘살고 있는 백로와 그 주거지를 파헤치고 그 위에 학알을 형상화해서 만들었다는 여주 이포보를 4대강 사업의 명품보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반 대중들이 쉬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오랫동안 꾸준히 사진집을 내고, 구매자가 소량이라 적자 볼 것이 뻔한 데도 신념을 가지고 사진 예술을 추구하고 있는 출판사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다양하기도 한 제목과 모양새의 사진집들을 대하니 가슴이 벅차기까지 하다.

평생 논밭에서 일하는 소만을 찍어놓은 사진집, 신묘한 굿의 세계를 촬영해온 사진집, 청중을 찔레꽃처럼 울리던 장사익을 흠모한 나머지 그만 나오는 사진집 등 볼거리, 생각거리가 풍성하다. 사진과 헌책방을 사랑한 책방지기 최종규 시민기자의 책을 발견한 것도 반가운 친구를 만난 것마냥 의외의 기쁨이었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철학적인 세계관을 확립하고 현대 미술의 본거지 뉴욕을 뒤흔든 사진가 김아타부터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골목길과 그곳의 주민들을 반평생 동안 따라다닌 김기찬,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의 제주도를 재창조해낸 사진가 김영갑의 작품까지 유명작가들의 사진집도 빼놓을 수 없다.

일반 책처럼 사진집에도 문고판 시리즈가 있는 게 눈에 띈다. 국내외 유명 사진가별로 그의 주요 작품과 설명이 작은 책 한 권에 응집되어 있는 데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1만1000원). 평소 관심이 있었던 작가의 삶과 사진이 담긴 사진집을 부담없이 사서 볼 수 있겠다. 골목길 사진가 김기찬과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유진 리처드의 사진집을 골랐는데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책이지만 소장의 기쁨 못지않게 뿌듯했다.   


 십여 개의 출판사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사진집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십여 개의 출판사들이 만들어낸 다양한 사진집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김종성

사진, 증언을 위한 최상의 도구

사진은 예술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기록의 도구이다. 카메라가 담아낸 사진 한 장은 한 시대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기록하기 때문에, 그 어떤 예술 장르와는 다른 직접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그것을 우리는 증언이라고 부른다.

사진은 증언에 관해서라면 최상의 도구다. 때로는 호소를, 때로는 고발을 위한 가장 즉물적인 도구다. 그런 사진을 멋있게 표현하여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고 하며, 그런 사진을 찍는 사람을 나는 '행동하는 철학자'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 사회의 소금 같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이 나라에 존재하고 있어 참 다행이다 싶다.  

'포토북 페어'는 이런 다큐멘터리 사진집도 빼놓지 않고 전시하고 있다. 기륭전자의 폭압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5년여의 투쟁을 기록한 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보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연민과 분노로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경험하게 된다. 성남훈, 이상엽, 노순택 등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최근 만든 책 <사진, 강을 기억하다>는 대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을 그것도 단기간에 밀어붙이며 과거로 역행하는 시대에 생생한 증언이 되고 있다.

"사진이 사회비판을 하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추구한다는 말인가?"라고 일갈하며 평생을 사회의 부조리와 힘없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온, 존경스러운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집도 전시장 한 켠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문고판 형식의 사진집도 있다. 동서양의 사진작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문고판 형식의 사진집도 있다. 동서양의 사진작가들이 망라되어 있다.김종성

나도 사진집 한번 내볼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갖가지 사진집의 세계 속에 푹 빠져 있다가 문득 든 생각은 '나도 사진집 한번 내볼까?'였다. 국내의 사진집 전문 출판사들이 다 모여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여러 권의 사진집을 가지고 있는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은 사진촬영과 함께 글을 쓰는 연습을 꾸준히 병행하라고 권한다. 사진기는 잘 팔려도 사진집은 안 팔리는 이유가 아직 시민들의 문화적 소양이 부족해서라고 하지만 그의 의견은 다르다.

글은 있는 둥 마는 둥 사진만 가득한 사진집은 사진 전공자나 평론가 혹은 아티스트용이지 일반적인 독자들과 소통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사진에 담긴 작가의 진솔하고도 생생한 글이 대중의 공감을 얻을 때 비로소 사진기만큼 사진집도 잘 팔리는 시대가 온다는 것인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맘을 흔드는 그런 사진을 대하노라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 '작가는 관객들이 뭘 읽어주길 기대했을까?', '과연 그런 기대를 하긴 했을까?', '찍는 순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찍었을까?', '과연 생각을 하고 찍을까?' 등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글자가 없었다면 시인은 사진을 찍었을 거라고 한다. 많은 사진집 가운데 시인의 마음 같은 책들을 발견했을땐 짜릿하기까지 하다. 연말연시 선물로 고민스럽다면 그렇게 고른 한 권의 '사진집'은 어떨까.

전시장은 작은 한옥을 개조하여 만든 곳으로 편안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고 관장님의 설명도 사진집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 전시회는 12월 말까지 하며 입장료는 없다. 갤러리내에 북카페가 있으니 연말의 약속장소로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12월 17일에 다녀왔습니다. 갤러리 '류가헌'은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이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랍니다.


덧붙이는 글 12월 17일에 다녀왔습니다. 갤러리 '류가헌'은 수도권 전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이며, 휴관일은 매주 월요일이랍니다.
#포토북페어 #류가헌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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