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는 매주 수요일 밤 또는 목요일 새벽에 지방으로 떠난다. 출발 전 준비하는 모습.
이주영
"20번 넣으려면 멀었어, 계속해"꽃피는 4월, 아빠는 지방을 돌며 일을 했다. 신용카드 발급 비율이 낮은 동네를 찾아다녔다. 불교 신자인 아빠는 종교의 벽도 극복했다. 달리는 차 안에선 불경을 외웠고, 카드 신청을 하겠다는 시골 교회에서는 할렐루야를 외쳤다. 집에 돌아와서도 쉬지 않고 고객 정리를 했다. 전국 일주 시작 후, 아빠의 급여는 1.5배 늘었다.
덕분에 난 회사를 그만 두고 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80만 원 하는 신문사 아카데미 수업을 들었고, 언론사 인턴 활동도 했다. 매주 두 번 서울로 올라가 스터디를 했고, 영어 점수를 올리려 매달 3만~4만 원을 내고 토익 시험을 봤다.
그러나 내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언론사 문턱에서 낙방하기 일쑤였다. 때마침 아빠 친구 자녀들의 소식이 집 문 틈새로 흘러들어왔다. 다들 하반기 공채에서 최종 합격해 대기업 또는 금융업계의 사원이 됐다고 한다. 엄마는 그 소식을 내게 육성으로 반복재생했다. 아빠는 내 손을 잡으며 엄마 말의 뒤를 이었다.
"걔들 다 20군데 중 한 곳 붙은 거래. 넌 20번 넣으려면 한참 남았으니 괜찮아. 계속해."현실의 벽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준 아빠의 목마아빠가 지방으로 떠나기 전, 나는 물었다. 일을 더 하면서까지 내 꿈을 밀어주려는 이유가 뭐냐고. 아빠는 말했다. 20살 때 재수해서 겨우 대학에 붙었지만 돈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30살 때 아빠는 결심했단다. 현실 앞에서 꿈을 포기하게 되는 좌절을 자식에겐 물려주기 않겠다고.
2011년. 아빠의 전국일주 덕분에 난 마음껏 꿈을 향해 바동거렸다. 결과는 실패였다. 그러나 내 꿈을 지지해 준 아빠가 있어 좌절하지 않았다. 내게 아빠의 여행은, 현실의 벽 너머를 볼 수 있게 해준 목마 같았다.
"이 세상의 부모 마음 다 같은 마음/ 아들딸이 잘 되라고 행복하라고/ 마음으로 빌어준 박영감인데"가수 오기택씨는 '아빠의 청춘'이란 노래에서 읊었다. 부모는 언제나 자식 생각에 잠겨 있다고. 하지만 그의 말은 어딘가 부족하다. 과연 생각뿐일까. 아들딸을 위해 마음의 갑절로 몸을 쓰는 게 부모인 듯하다. 어른이 된 딸의 꿈을 위해 매주 떠나는 나의 아빠처럼.
덧붙이는 글 | '내가 뽑은 올해의 인물' 응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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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선 할렐루야 절에선 부처님... 미안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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