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서의 모습.
서재호
미당 서정주는 이렇게 말했다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미당'식으로 말하자면 귀농 후 나를 키운 건 8할이 '그녀'였다. 좀 양보하자면 8할까지는 아니더라도 3할은 그녀 덕이었다 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미리 말하거니와 그녀는 아가씨도 새댁도 아닌 연상의 아줌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옆옆 마을에 사는 농촌아낙 '아줌마 K'가 바로 그녀이다. 아줌마 K, 그녀와는 몇 년 전 산판일(벌목)을 함께 한 계기로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 여인네여서 그런지 생활력이 강하고 일머리가 좋았다. 호흡이 잘 맞았다. 그 뒤 지역풍물패 활동도 같이했고 지역 현안 일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자주 만나다 보니 차츰 친해졌다.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이다보니 내게 고추밭도 빌려주었고 소소한 농사 멘토링도 해주었다. 어떨 때는 "겨울 김장했으니 돼지수육에 소주 한 잔 먹으라" 청하기도 해서 여럿이 찾아가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그녀는 오랜 농촌생활로 터득하게 된 생활의 지혜를 많이 알고 있었다. 농사와 관련된 엑기스 정보도 많지만 오랜 세월 농촌에 살면서 알게 된 묵은 얘기거리들이 무궁무진했다. 또한 그녀는 성격이 화통했다.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눠주는 데 조금의 인색함도 없었다. 귀농 초기, 나는 그녀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농촌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받았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해 주는 모든 정보가 고급정보였던 건 아니었다. 그 중 어떤 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들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멧돼지를 만나면 사시로 삐딱하게 봐야 돼요"그녀의 주옥같은 어록들 중 미심쩍은 것들에는 이런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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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묵을라 하면 말이지요. 꼭 다섯 마리 이상을 한꺼번에 고아 먹어야 좋심니더. 뱀마다 독이 다 다른 기라요. 그 다른 독들이 섞이야 탈도 없고 약이 되는 기라요."또 이런 정보도 흘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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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멧돼지를 만나면 안있는교. 도망가면 안 돼요. 도망가면 덤벼요. 딱! 쳐다봐야 돼요. 그란데 쳐다볼 때 마주보면 안 돼요. 사시로 봐야 돼요. 정면으로 말고 삐딱하게 봐야 돼요. 그래야 멧돼지가 헷갈리 가지고 도망가는 기라요."또 또 이런 고급 정보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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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 키아(키워) 봤어요? 무시는 돌면서 크는 놈이라요. 자라면서 해를 따라 도는 놈이 무시라요.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잖아요. 무시도 똑같아요. 같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면서 커는 겁니더."또, 또, 또. 그녀만의 중요한 경험도 들려준다.
"개하고 고양이하고 싸우면 누가 이기는 줄 알아요? 개가 이길 것 같지요? 아입니더. 고양이가 이깁니더. 개가 고양이를 구석으로 몰고 가지요.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가 우찌 하는줄 아는교. 개 얼굴에 침을 "탁" 뱉어뿐다 아입니꺼. 개가 안 돼요. "또 또 또 또. 그녀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은 그외에도 많다. 그때는 그녀의 말하는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그 이야기들이 모두 다 사실인 줄 알았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농촌에서 나고 자랐으니 경험에서 우러나고 확인된 것들만 들려 주는 줄 알았다.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도 촌에서 제법 '짠밥'이 늘다 보니 이제 정보를 가려서 듣게 되었다. 그녀가 분명히 사실이라고 믿고 내게 일러준 이야기들이 꼭 다 맞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거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 중에 어떤 것은 직접 실험을 통해서 확인해 본 것도 있다. 실험해 본것은 '무가 정말 회전하면서 자라는지'에 관한 거였다. 집 텃밭에 무를 심어놓고 어느 정도 자라 땅위로 무 뿌리가 올라왔을때 시도해 보았다. 허연 무 뿌리 어깨쯤에 검은 매직으로 선을 그어 표시해놓고 매일 쪼그려 앉아 관찰했다.
학창시절에도 해보지 않던 실험정신을 발휘한 거다. 물론 매일 텃밭에 쪼그리고 앉아 궁상스레 무뿌리를 들여다 보는 내모습을 아내는 무척 한심스러워 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역사의 위대한 실험 뒤에는 항상 세인들의 조롱이 따랐음을 알기 때문이다. 실험결과는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무'는 전혀 회전하지 않았다.
"
우이 쉬~ 속았다."또 하나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난 게 있다. '개와 고양이의 싸움'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아래에 이어진다.
"개랑 고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기는 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