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치... 너, 또 흥분했구나"

[연재동화] 안내견 뭉치와 로봇 친구 또또 (6) 공만 보면 흥분하는 뭉치

등록 2012.01.02 12:06수정 2012.01.0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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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시간을 위해 학생들이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었습니다.

"민재야. 오늘 오랜만에 테니스 한 번 할까?"


반에서 운동을 제일 잘하는 범석이가 민재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습니다.

"좋지. 얼마든지 환영이다."

민재도 지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옷을 다 갈아입은 민재는 다른 학생처럼 곧바로 운동장으로 향하지 않고 운동장 한쪽 구석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향했습니다.

"뭉치. 하나 둘. 하나 둘!"

민재가 뭉치를 향해 구령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구령에 맞추어 뭉치가 그 자리에서 쉬-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 둘 소리에 맞춰 뭉치가 쉬를 하는 것은 하나 둘 소리가 응가와 쉬를 하라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뭉치가 훈련을 받은 안내견센터에서는 '응가, 쉬'라는 말을 하면 어린아이들이 응가나 쉬가 마렵게 되는 것처럼 '하나'는 똥, '둘'은 오줌'이라는 의미를 담아 안내견의 배변 권유어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쉬-를 마친 뭉치와 민재는 운동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반 친구들은 농구나 축구 등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기 위해 운동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뭉치는 운동장 한쪽 농구코트에서 통통 튀는 공을 보자 아주 좋았습니다. 그래서 뭉치는 농구 코트를 향해 몸을 돌렸습니다.


"뭉치. 어디로 가는 거야?"

갑자기 방향이 바뀌자 민재가 물었습니다.


"너 또 공 보고 흥분 했구나.그러면 안돼!"

민재는 엄한 목소리로 나무랐습니다. 그 말에 뭉치는 풀이 죽었습니다. 뭉치는 공을 무척 좋아합니다. 공만 보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 뭉치의 성격을 알고 있는 민재는 뭉치가 공을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광훈 선생님으로부터 뭉치가 너무 공에 집중하지 않도록 적당히 통제하라고 들었습니다. 뭉치가 너무 공에 집중하면 안내견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뭉치는 아무리 야단을 쳐도 공만 보면 흥분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뭉치! 너도 자유롭게 달려보고 싶지?"

민재는 그렇게 말을 하며 뭉치의 견줄을 풀어 주었습니다.

'민재형. 나 정말 혼자 달려도 되는 거야? 형 안내는 어떡하고?'

뭉치는 민재를 바라보았습니다.

"뭉치! 이제부터 10분간 프리런(안내견이 자유롭게 혼자 뛰놀도록 하는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뭉치는 프리런이란 말이 떨어지자마자 총알같이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는 농구 코트로 질주했습니다. 뭉치가 공을 향해 농구 코트로 뛰어들자 농구 코트는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뭉치와 같이 놀고 싶어 하는 학생, 덩치가 큰 뭉치가 달려들자 겁을 먹고 도망가는 학생, 뭉치에게 공을 튀겨 주는 학생.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뭉치는 그런 와중에서도 공만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 광경을 보고 민재내 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우르르 농구 코트로 몰려들었습니다. 농구 코트가 꽉 찼습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삐-익. 삐-익.' 호랑이 체육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어도 학생들과 뭉치는 계속 공을 가지고 놀기만 했습니다.

"자, 이제 그만! 그만!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라니까."

체육 선생님이 커다랗게 고함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운동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선생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농구 코트에 모인 학생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다시 한 번 말합니다. 학생들은 모두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그러나 학생들은 꼼짝도 않했습니다. 뭉치와 함께 농구코트는 점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뭉치는 줄곧 농구공만을 향해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뭉치. 그만해. 뭉치 이리오라니까!"

민재가 큰소리로 뭉치를 불렀습니다. 그제서야 뭉치는 공을 향해 뛰던 것을 멈추었습니다.
민재가 뭉치를 불러서야 겨우겨우 농구 코트의 아수라장은 진정되었습니다.

"뭉치! 재미있었니? 그렇게 공이 좋아?"
'당연하죠. 난 세상에서 민재형 하고 공이 젤 좋아요.'

민재가 견줄을 채우며 뭉치에게 묻자 뭉치는 그렇게 대답하듯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습니다.

"민재. 여기 있었구나. 난 테니스 코트에서 기다렸잖아!"

범석이가 민재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아, 테니스! 범석아, 미안! 뭉치 때문에 깜빡 잊었어. 지금이라도 한 판 할까?"
"좋지!."

범석과 민재는 테니스 코트로 향했습니다. 테니스 코트에 다다르자 민재는 "뭉치, 앉아!"하고 명령했습니다. 뭉치는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뭉치. 움직이면 안 돼.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어."

민재는 뭉치에게 다짐을 하고는 테니스 코트로 들어갔습니다. 범석이가 민재에게 라켓과 테니스공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런데 범석이가 건네준 테니스공은 일반 테니스공과 뭔가 달랐습니다. 모양과 크기는 다른 테니스공과 똑같지만 공에서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났습니다. 바로 시각장애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테니스공입니다. 민재가 능숙하게 테니스공을 바닥에 통통 튀겼습니다. 그때마다 공에선 통통 소리와 함께 딸랑딸랑 방울 소리가 났습니다.

"자, 간다!"

민재가 소리치며 서비스를 날렸습니다. 범석이는 민재의 힘찬 서비스를 능숙하게 받았습니다. 민재도 날아오는 공을 향해 몸을 날렸습니다. 공은 범석과 민재의 코트 사이를 오락가락 했습니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딸랑거리며 오락가락하는 공을 바라보는 뭉치의 머리도 좌우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공을 따라 뭉치도 코트 밖에서 함께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이 오갈 때마다 뭉치도 이쪽 코트와 저쪽 코트를 부지런히 왔다 갔다 했습니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릴 때까지 민재와 범석 그리고 뭉치는 부지런히 코트를 뛰었습니다.

하루 수업이 모두 끝났습니다. 학생들은 제각기 책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민재, 아까 승부를 못 봤는데, 지금이라도 다시 한 판 할까?"

범석이가 민재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습니다.

"미안! 범석아. 오늘은 안 되겠는데! 오늘 우리 소프트웨어 개발 동아리 모임이 있어서 말이야."
"그래? 조금 아쉽군. 그럼 다음 기회로 미루지 뭐."

범석이는 언제나처럼 민재의 어깨를 툭 치고는 교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민재와 뭉치는 동아리방으로 향했습니다.

"민재야. 여기 옆 자리 비었다."

민재가 동아리방에 도착하자 언제 와 있었는지 동욱이가 민재를 불렀습니다. 잠시 후 10여명 회원 모두가 모였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이디어 공모전에 출품한 작품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작년에 대상을 받은 민재가 어떤 아이디어를 출품했는지에 모아졌습니다.

"민재는 올해는 어떤 아이디어야?"

동아리 회장 김승수 형이 물었습니다.

"민재의 아이디어는 책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스마트폰용 어플이래요. 간판이나 마트의 진열된 물건도 알려 주는 기능도 탑재하도록 한 아이디어. 어때요? 끝내주죠?"

민재 대신 재빨리 동욱이가 대답했습니다. 모두의 입에서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역시 김민재답군!"
"올해도 민재가 대상 받는 거 아냐?"

모여 있는 회원들은 모두 민재를 칭찬했습니다.

"대상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정말 민재의 아이디어가 제품으로 된다면 시각장애인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겠네요. 그동안 민재가 교과서 파일 만드느라 무척 고생했는데, 앞으로 그런 고생 안 해도 되고요. 가슴 따뜻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민재와 같은 학년인 권미현이 말했습니다. 미현이의 말대로 시각장애인들은 책을 읽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점자로 된 책이나 책을 녹음한 형태인 음성 도서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민재가 가지고 있는 점자단말기등의 기계를 이용해서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나 점자단말기로 책을 읽으려면 책이 텍스트나 한글, MS워드 등의 파일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들어진 책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교과서처럼 꼭 봐야 하는 책임에도 파일이 없어서 고생하는 시각장애인이 매우 많습니다.

민재도 학년 초마다 교과서를 구하느라 아주 많이 애를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민재를 위해 반 친구들이 교과서를 함께 파일로 입력해주었습니다. 민재 아이디어에 대한 미현의 말에 민재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습니다. 왜 그런지 평소 언제나 활달하고 장난치기 좋아하는 민재도 미현의 앞에서는 얌전해지고 이렇게 얼굴이 빨개집니다.

열띤 토론이 끝났습니다. 민재와 뭉치는 동아리방을 나와서 교문으로 향했습니다. 아직도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뭉치는 농구 코트에서 형들이 놀고 있자 엉덩이가 들썩거렸습니다. 뭉치는 농구 코트에서 움직이는 공을 바라보며 걸었습니다. 그 바람에 뒤에서 날아오는 공을 보지 못했습니다. 날아온 공은 뭉치의 머리를 정통으로 맞혔습니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갔습니다. 갑자기 머리를 맞은 뭉치는 무서워하며 얼른 민재 뒤로 숨었습니다. 민재는 뭉치가 다치지 않았는지 이곳저곳을 만지며 살펴보았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두 아이가 뒤에서 키득거리며 웃었습니다. 그때 미현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야. 너희 아무 곳에서나 공놀이 하면 어떡해! 그리고 제대로 보고 공놀이를 해야지! 저기 안내견이 맞았잖아! 얼마나 아프겠어? 뭉치야! 괜찮니? 어디 안 다쳤어?"

미현이는 뭉치에게로 다가와 쓰다듬으며 물었습니다. 뭉치는 괜찮다고 미현이를 향해 특유의 부챗살 꼬리를 만들며 흔들었습니다.

"미현아. 고. 고마워. 뭉치는 괘. 괜찮은 것 같아."

평소답지 않게 민재가 조금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미현이는 공놀이를 하던 두 학생에게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희 1학년 맞지? 빨리 여기 선배와 안내견 뭉치한테 사과해."
"선배님! 죄송합니다."

둘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말했습니다. 뭉치는 아직 민재의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다음부턴 공놀이는 운동장에서 해."

민재가 너그러운 선배처럼 후배들에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공을 집어 들고 통 통 통 튀기며 교문 쪽으로 향했습니다. 뭉치는 튀기는 공을 보면서도 전과 같이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후배들 덕분에 공만 보면 흥분하는 뭉치의 버릇이 고쳐졌을까요?

[뭉치가 들려 주는 시각장애인 이야기] -시각장애인 스포츠
에고. 오늘 공 가지고 놀다가 난리를 피웠죠. 안그려려고 해도 공만 보면 왜 흥분하는지 모르겠어요.
근데요. 오늘 이야기 듣다가 민재형하고 범석형이 테니스 하는 거 보고 놀라셨죠?

맞아요. 시각장애인들도 운동을 할 수 있어요. 테니스공은요 모양은 테니스공과 같지만 실제 테니스공은 아니예요? 탁구공안에 방울을 넣고 그 위에 다시 고무등으로 감싼 공을 사용해요. 모양은 물론 테니스공과 똑같지요.

그리고 시각장애인 축구도 있어요. 축구공도 안에 방울이 들어 있고요. 테니스와 축구뿐만이 아니에요. 하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지만 야구도 배구도 탁구도 시각장애인들이 할 수 있지요. 또 골볼이라고 하는 스포츠 종목은 시각장애인들만이 하는 특수한 형태의 구기종목이에요.

시각장애인들이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집에서만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이렇게 다양한 스퐅츠도 즐기고 있어요. 구기종목뿐만 아니라 마라톤도 하고 등산도 하는 사람도 많아요. 민재형 반친구 중에서 운동을 젤로 잘하는 범석형과 테니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민재형 밖에 없을 정도로 민재형도 스포츠맨이고요.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시각장애인과 함께 운동 하고 싶으시면 쪽지 주세요. 등산이나 마라톤은 함께 해줄 동반자가 있을 때만 할 수 있거든요. 그래야 새해에도 더욱 건강해지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각장애인 스포츠 #안내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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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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