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전장치를 장착한 핏불테리어
위키미디아 커먼스
그런데 문제는 우리집만 빼고 집집마다 개를 키운다는 점이었다. 잘 훈련된 개들은 자기 집의 정해진 곳에서만 볼일을 봤지만, 우리 옆집에 새로 온 덩치가 산만한 개는 우리 아이들이 노는 모래 상자에 똥을 싸 놓기도 해서 은근히 짜증이 났다. 덩치는 큰데 아직 훈련이 덜 된 개라 개줄을 매어 놓았는데, 너무 갑갑하지 말라고 그랬는지 빨랫줄처럼 공중에 매달린 끈에다 다시 끈을 연결해 옆집과 우리집의 경계부분까지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씩은 끈을 풀어 놓는 때도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방문 중이던 친정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밖에서 놀고 있었는데, 개줄이 풀렸는지 풀어 놓았는지 개가 달려들었다. 개는 아이와 놀고 싶었나 보지만 덩치가 우리 아이의 두세 배는 되는 개가 날뛰자 아이는 질겁을 했고, 엄마는 아이를 잽싸게 낚아채서 밖으로 열린 지하실 문으로 달아났다. 그 와중에 개의 발톱에 긁혀 아들의 배와 등판에 꽤 큰 상처가 났다. 말리던 엄마도 여기저기 긁힌 상처를 입었다.
집 안에 있다가 이 호들갑을 접한 나는 아들 몸에 난 상처를 보는 순간 열이 확 뻗쳐서 옆집으로 달려갔다.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사람 앞에서 길길이 날뛸 수도 없고, 또 물린 상처는 아니어서 경고만 하는 선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속이 많이 상했다. 옆집 아줌마는 아이 장난감을 사다 주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했다.
그러고 보면 미국 사람들은 개에게 긁힌 상처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너무 일상적인 일인 탓이다. 보험 청구까지 가는 경우는 개에게 물렸을 때에 해당한다. 한번 사람을 문 개는 주 법에 따라 안락사 시키거나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 찍혀 특별 관리 대상이 된다. 조지아 주의 경우는 후자에 속한다. 한번 사람을 문 개가 다시 사람을 물었을 경우, 개 주인은 가중처벌을 받는다. 그렇지만 사람을 한 번 문 개를 그냥 놔둬도 되는 것인가?
애완견 키우려면 사회적 책임감도 함께 키워야사정이 이 정도면 그까짓 개쯤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싶지만, 미국 사람들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들은 개를 버리지 못하는 것일까?
2011년 8월 6일자 <이코노미스트>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제목으로 인간과 개의 2만 년 넘는 상생관계를 조명한 책을 소개했다. 책 제목은 <개에 대한 변호: 왜 개들은 우리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가>인데 개의 행동방식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토대로 어떻게 하면 개에게 더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이다.
이쯤이면 개는 '소유하거나 없애거나'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소리다. 미국 애완동물 상품협의회(American Pet Products Association)의 2011-2012 통계조사에 따르면, 미국 전체 가구의 39%, 즉 4630만 가구가 한 마리 이상의 개를 키우고 있고, 약 7820만 마리의 개가 사람들과 섞여 살고 있다. 당연히 전세계 1위다. 이러니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개가 없는 곳이 없다.
미국의 오랜 개척의 역사 속에서 개는 사람보다 더 믿을 수 있는 존재였다. 충성스럽고,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바탕으로 위험으로부터 구해 주기도 하고,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듬직한 존재.
미국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대여섯 살쯤 될 때 강아지를 선물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면 아이들이 장성해 부모 곁을 떠나기 전까지 개와 함께 자라면서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다. 정서적으로 좋을 뿐만 아니라 개에게 밥을 주고 훈련을 시키면서 책임감도 길러진다고 한다.
이런 아주 오래된 믿음과 정서 때문에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개에게 물려 팔 다리가 잘리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때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미국 사람들의 '개 사랑'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미국 신문에 흔히 등장하는 상담 코너인 '디어 애비'에서 한 번은 출산을 앞두고 이런 걱정을 하는 사연을 본 적이 있다.
"저희 엄마는 큰 개와 함께 단 둘이 살고 계십니다. 엄마는 여행을 다닐 때도 개와 함께 동행하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절대로 우리 집에는 개를 데리고 오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섭섭해 하시고 화를 내시더군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당연히 현명한 상담가인 애비는 '아기가 우선'이라고 조언을 했지만, 실제로 이런 문제를 두고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참 놀라웠다.
하여튼 에린 사건으로 인해 지난 2005년에 조지아 주 의회에 상정됐다가 빛을 보지 못한 법안이 다시 조명을 받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주 하원의원인 민주당 소속 어네스트 코치 윌리엄스는 조지아 주 안에서 사나운 개를 키우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냈었는데, 사람을 문 개 주인에게 중형을 내리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해 다소의 수정을 거쳐 9일부터 시작된 이번 회기에 다시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화당 측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법령을 갈아치우기 위해 주요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 세 개를 검토 중이다.
주마다 다른 '개 물림 법령' 중에서도 개 주인에게 유리한 것으로 악명 높은 조지아 주 법이 이번 기회에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장치들을 대폭 마련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또한 사나운 개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꼼꼼한 제한 규정을 두어서 불행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한 번 잘린 어린 소녀 에린의 팔은 결코 원상태로 돌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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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이 날 물어뜯고 있어요, 제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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