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의 주말과 공휴일은 '사골곰탕데이'

늘해랑무료급식소가 급식하는 현장을 가다

등록 2012.01.15 17:41수정 2012.01.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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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자장면데이' 등이 있다면, 안성시내 독거어르신들에겐 '사골곰탕데이'가 있다. 매주 주말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이 바로 그날이다. 이미 독거어르신들 사이에 이렇게 소문이 났다. 그 배경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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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골곰탕 한 그릇의 행복 이 사골곰탕은 3일전부터 푹 고아 만든 것이다. 갈비가 곁들여져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며, 하루 중 한 끼를 먹는 독거어르신들에게 행복이 아닐 수 없다. ⓒ 송상호

▲ 사골곰탕 한 그릇의 행복 이 사골곰탕은 3일전부터 푹 고아 만든 것이다. 갈비가 곁들여져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며, 하루 중 한 끼를 먹는 독거어르신들에게 행복이 아닐 수 없다. ⓒ 송상호

 

주말과 공휴일엔 '사골곰탕데이', 이런 이유가

 

안성 시내에 독거어르신들 상대로 무료급식소를 하는 곳이 두어 군데 있다. 하지만 주말과 공휴일에 여는 곳은 없었다. 적어도 늘해랑무료급식소(소장 오영목, 67세)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러다보니 독거어르신들이 평일이 아닌 날엔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힘들었다.

 

이에 오영목 소장은 자신의 두 동생들(오영준, 오영호)에게 무료급식소를 한 번 해보자고 제의했고, 의기투합이 성사되었다. 그렇게 삼형제가 2010년 7월에 일내버렸다.

 

처음엔 국수를 급식했다. 매주 하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하루 한 끼를 드시는 어르신들이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국수보다 밥, 그냥 밥보다는 뭔가 든든한 식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사골곰탕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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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중 지금 어르신들이 식사 중이다. 이 곳은 전에 오영목 소장 부부가 식당을 하던 곳이며, 현재는 급식을 위해 남겨둔 공간이다. 정육점 바로 뒷 편에 있어서 급식하기에 용이하게 되어 있다. ⓒ 송상호

▲ 식사 중 지금 어르신들이 식사 중이다. 이 곳은 전에 오영목 소장 부부가 식당을 하던 곳이며, 현재는 급식을 위해 남겨둔 공간이다. 정육점 바로 뒷 편에 있어서 급식하기에 용이하게 되어 있다. ⓒ 송상호

 

"3일 전부터 푹 고은 사골곰탕 드셔유"

 

주말이면 정육점 앞에서 문 열기만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꽤 된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14일 토요일도 그랬다. 하루 한 끼를 먹으니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더군다나 힘을 내게 하는 사골곰탕이 아니던가. 그들 때문에라도 10시면 문을 연다. 문을 열자마자 겨울의 냉기를 피해 실내로 들어오신다. 아침부터 넓지 않은 식사공간에 자리가 거의 다 찬다.

 

원래 급식 시간이 낮 12시인데, 오전 11시 30분이면 배식한다. 오전 10시부터 기다린 어르신들에게 미안해서다. 대신 김치랑 소금은 미리 내놓지 않는다. 배가 고프신 어르신들이 미리 다 드시기 때문이라고. 무한정 김치를 내놓을 수 없어서다.

 

이 사골곰탕은 급식하기 3일 전부터 푹 고아 진국을 만든다. 국물이 뽀얗다. 거기에 갈비를 여러 점을 넣어준다. 조금이라도 더 든든하시라는 배려다. 반찬은 김치 한 조각이지만, 어르신들은 든든하다 못해 행복해 보인다. 배부른 사람에게 산해진미가 식상하지만, 배고픈 사람에겐 곰탕 한 그릇이 얼마나 큰  행복이겠는가.

 

정육점하면서 쉬는 날이 없어

 

"남들 쉬는 날에 무료급식을 하다 보니 쉬는 날이 따로 없네유 하하하."

 

오 소장이 웃으며 말한다. '사골곰탕데이'는 독거어르신들과의 약속이기에 쉴 수가 없다. 약속을 넘어서 하루 굶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드시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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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봉사자들과 함께 지난 14일 토요일에 급식봉사를 끝낸 자원봉사자들과 오영목 소장(뒷줄 맨왼쪽)과 그의 동생 오영준 씨(앞줄 맨 오른쪽)가 급식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봉사자들 중엔 안법 고등학생, 청소용역이 직업인 아주머니들이 있다. ⓒ 송상호

▲ 급식봉사자들과 함께 지난 14일 토요일에 급식봉사를 끝낸 자원봉사자들과 오영목 소장(뒷줄 맨왼쪽)과 그의 동생 오영준 씨(앞줄 맨 오른쪽)가 급식소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봉사자들 중엔 안법 고등학생, 청소용역이 직업인 아주머니들이 있다. ⓒ 송상호

사실 이곳은 식당이 아니다. 예전에 식당을 했었던 자리라 정육점 매장 뒤에 조그마한 식사 공간이 있을 뿐이다. 오 소장의 아내가 식당하기에 벅차다고 해서 식당을 그만두고 정육점만 하고 있다.

 

6평 남짓한 공간이다 보니 환경이 열악하다. 정육점 뒤편에 연탄이 쌓여 있다. 연탄난로를 땐다. 의자도 플라스틱 의자에 둥그런 양철탁자다. 90년대 시골식당 분위기다. 이 공간을 없앨 수도 있었지만, 급식을 위해 남겨두었다.

 

주말이 기다려진다는 오 소장 부부

 

"그래도 난 주말이 기다려져유."

 

낼모레면 칠순인 오 소장의 미소가 행복해 보인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 자신의 성격 탓이란다. 그 성격이란 것이 모두 오 소장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그의 아내가 증언해준다. "시어머니가 사람들을 불러서 먹이고 나누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라며.

 

번듯한 후원 없이도 무료급식이 가능한 이유는 85년도부터 고기장사를 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사골과 갈비를 싸게 사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요즘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세월에 무료급식소 운영은 때론 버겁다. 그만둘까도 생각했지만,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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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파는 중 지금은 토요일 무료급식을 끝낸 오영목 소장 부부가 손님에게 고기를 팔고 있다. 그들은 평소 정육점을 운영한다. 주말과 공휴일에 급식을 하기에 쉬는 날이 따로 없다. ⓒ 송상호

▲ 고기 파는 중 지금은 토요일 무료급식을 끝낸 오영목 소장 부부가 손님에게 고기를 팔고 있다. 그들은 평소 정육점을 운영한다. 주말과 공휴일에 급식을 하기에 쉬는 날이 따로 없다. ⓒ 송상호

"이 급식소는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정상 내가 못하더라도 이 일을 함께 하고 있는 동생들과 지인들이 계속할 겁니다. 이 땅에 끼니 굶는 어르신들이 있는 한은요."

 

그의 이 말엔 비장함이 깃들어 있다. 오 소장과 그의 아내는 고기를 팔면서도 내일 급식준비를 위해 마음이 분주하다.

덧붙이는 글 늘해랑무료급식소 031-675-2655 는 안성 시내 국민은행 바로 옆에 있다.
#늘해랑무료급식소 #무료급식소 #정육점 #오영목 #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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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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