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권력기관보다도 그들... 참 무섭습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명절, 공개되는 사생활 걱정돼

등록 2012.01.25 09:04수정 2012.01.25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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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 생물은 무엇일까요?


1. 주인의 허락 없이 냉장고 문을 열어 과일 및 초콜릿을 섭취
2. 주인의 허락 없이 컴퓨터를 작동시켜 각종 게임을 설치해 하드디스크에 피해를 입힘.
3. 주인의 허락 없이 애장품에 손을 대 변질시키거나 망가뜨림.
4. 주인의 허락 없이 사적 기호품 및 소장품(동영상, 사진)을 들춰내 세상에 폭로함.

3대 권력 기관보다 무서운 '이것'의 대비책은?

정답은 사촌동생이다. '초딩' 혹은 '초글링'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 생물의 정확한 명칭은 '사촌동생' 혹은 '조카'다. 생후 5년에서 12년 사이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주로 친척 간에 왕래가 잦은 설날과 추석에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많은 피해를 입힌다.

나의 경우 벌써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오프라인의 친구들로부터 약 다섯 건 이상의 피해 상황을 메시지로 전달받았다. "이모네 식구들이 기습해 나의 드래곤 볼 피규어 세트가 초토화됐다" "조카가 나의 건담 피규어의 날개를 망가뜨렸다" "군 시절에 모아온 남성 잡지에 주스가 쏟아져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허락 없이 서랍을 뒤지는 바람에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온 친척에게 밝혀질 뻔했다" 등의 상상만 해도 아찔한 상황들이 사촌동생과 조카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내게 전해왔다.

지난해 설날, 나도 같은 유형의 피해를 당했다. 외가의 경우 장녀인 어머니 밑으로 삼촌이 둘, 이모가 둘인데 초등학교를 다니거나 미취학 상태인'사촌동생은' 모두 여섯. 이들이 모두 나의 방에서 소리지르며 놀고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메뚜기떼가 농작물을 갉아먹는 장면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 상황. 컴퓨터를 켰을 때 떠오르는 바탕화면이 뽀로로가 됐을 때의 그 기분은 당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나의 사생활, 나의 과거, 나의 소지품이 그들에 의해 폭로되고 파괴된다는 점에서 사촌동생은 위키리크스보다도, 국세청, 검찰, 국정원보다도 무섭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준비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을 맞지 않기 위한 몇 가지 지침을. 설날의 실패를 계기로 추석에는 안전한 명절을 보내자는 취지로 만들었다.

1. 컴퓨터는 로그오프, 숨길 수 있는 파일들은 미리미리 숨기자

흔히들 많이 당하는 피해는 컴퓨터를 통째로 사촌동생들에게 내주는 데서 발생한다. 일단 컴퓨터를 내주면 컴퓨터가 사바 세계로 갈 확률이 높아진다. '사촌동생'은 게임을 깔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컴퓨터가 느려지거나 오류가 늘어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고 성인물 시청자들은 저장된 파일이 바탕화면에 노출되는 '대참사'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깔끔하게 컴퓨터를 로그오프 하거나 기존 파일들은 깔끔하게 정리해놓자. 보조기억장치에 저장을 하거나 백업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컴퓨터가 거실에 있거나 사용 중인 컴퓨터가 순수한 업무용 컴퓨터인 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컴퓨터를 치우는 것.  

2. 소지품을 미리 정리해놓자

소지품 정리는 컴퓨터의 파일정리 만큼이나 중요한 조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컴퓨터 파일정리보다도 중요할 수 있다. 화장품, 귀걸이, 목걸이, 이성친구와의 교신목록(편지, 다이어리) 등을 모두 다른 곳에 담아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자. 남자의 경우 피규어, 만화책, 성인잡지 등을 친구한테 임·대차로 보내는 방법도 괜찮다. 집에 숨길 경우 너무 생뚱맞은 곳이면 곤란하다. 본인이 먼저 찾기도 전에 엄마가 청소하다 발견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라.

3. 방문을 잠근다

위의 두 방법보다도 훨씬 강력한 조치다. 강력한 처방이지만 동시에 가장 가혹한 시련이 될 수도 있다. 한번 문을 잠그면 자신도 들어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자. 극도로 촉이 발달한 '사촌동생'은 당신이 당신의 방문을 여는 순간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격렬히 뛰어노는 순간에도 말이다. 필히 사용해야 하는 것들은 미리 빼놓도록 해라.

4. 제 3의 장소에서 만난다

가장 어려운 방법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내 경우 이 방법으로 설날 대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여기서 핵심은 친척들을 지루하지 않게 노래방 등의 2차 장소로 꾸준히 이동을 시켜줘야 한다는 데 있다. 친척들이 유흥과 거리가 멀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본인이 계속 분위기를 주도해야 한다. 집으로 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약을 치고 바람을 넣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더라도 최대한 사촌동생들의 힘을 빼놓기 위해 열심히 놀아주도록 하자.

큰집에 올 때는 사생활 좀 지켜주세요... 제발

지금까지 여러 방안들을 제시했다. 막상 쓰고 나니 이 글을 읽는 이들 중 일부는 "오버 아니냐,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 지나치게 디테일하다"라는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아이들을 탓하기도 좀 민망하다. 소지품이라는 개념도 없이 그저 빨빨 뛰어노는 본능만을 지닌 이 아이들이 사실 무슨 죄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생활은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내 방에서 나의 흔적을 감추기 위해 이 어린것들과 싸워야 하는 광경도 참 우스운 일 아닌가. 청와대와 정부, 아니 이모와 이모부, 고모와 고모부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그게 매너라고 감히 말한다. 놀러갈 집의 조카가 스무 살이 넘었으면 더욱.

성인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알 거 다 알고 해볼 거 다 해볼 나이에 일 년에 두 번씩 사생활이 공개되면 그것도 참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돈은 돈대로 깨지고 말이다. 세뱃돈 주실 여유가 있으시면 지난 명절에 아이들이 가져간 소장용 만화책과 망가진 컴퓨터 수리비를 청구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사촌동생' 확산 방지 구상과 그에 따른 친척들의 공조가 절실히 필요한 2012년 설날이었다.
#사촌동생 #초딩 #초글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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