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 빠지니 생활기록부에 '자습능력 떨어짐'

인천 학습 선택권 보장 조례 공포에도 자율학습 강요 여전

등록 2012.01.26 16:05수정 2012.01.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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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선택권 보장 조례가 공포됐지만, 보충수업이나 야간자율학습(=야자)을 안 하겠다고 하면 담임선생님은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서 '아이가 요즘 공부를 안 하고 잠만 잔다. 야자를 시켜야 공부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이 아닌데도 말이다. 방학 때 보충(수업)도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표는 이미 학교에서 다 짜놓고 무조건 체크(=사인)하라고 한다."

"지난번 여름방학 때 담임선생님에게 기숙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더니, 그럼 생활기록부에 이상하게 쓰겠다고 협박했다. 진짜 기숙학원에 갔다 왔더니, 담임선생님이 생활기록부에 '자습능력이 떨어짐'이라고 써 놨다."

"선생님이 '야자를 하든 말든 너희들의 자유인데 그대로 생활기록부에 기록할 테니까 알아서들 해'라고 협박하듯 말했는데, 야자를 뺀 학생의 생활기록부에 진짜로 '학교생활에 성실히 참여하지 않음'이라고 썼다."

최근 기자와 한 인터뷰에서 밝히거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천지부의 설문조사에 참가한 인천지역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말이다.

방과후학교·자율학습, 여전히 강제적으로 '진행'

지난해 10월 '인천시 학생의 정규교육과정 외 학습 선택권 보장에 관한 조례(이하 학습 선택권 보장 조례)'가 공포됐지만, 인천지역 대다수 중·고등학교에서는 방과후학교(=보충수업)와 자율학습을 여전히 강제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수나로' 인천지부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인천지역 중·고생 252명을 대상으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실태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이 결과를 보면, 조사 학생 10명 중 9명은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학습 선택권 보장 조례가 일선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이다.

'자율학습 실시 전에 자율학습 동의 여부를 묻느냐?'는 질문에 37.1%가 '동의 여부를 묻지 않는다', 52.6%가 '동의 여부를 물으나, 참여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고 답했다. '동의 여부를 묻고 참여 여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답변은 10.3%에 머물렀다.


또한 '자율학습의 결석이나 조퇴를 자유롭게 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답한 학생은 2.8%에 머물렀다. 41.8%가 '교사에게 결석이나 조퇴 여부를 알리고, 할 수 있다', 48%가 '건강상의 문제 등 부득이한 이유를 제외한 다른 이유로 결석이 불가하다', 5.6%가 '결석이나 조퇴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자율학습을 결석이나 조퇴할 때 불이익이 있냐?'는 질문에는 '있다'라고 대답한 학생이 51%로 절반이 넘었다. 불이익으로는 '시험범위 진도를 나가는 것'이 가장 많았고, '생활기록부 불이익'과 '교사ㆍ친구들에게 찍힘'이 뒤를 이었다.

'자율학습 문제 중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돼야한다'는 응답이 46.3%로 가장 많았고, 교사의 태도와 학습 환경 등이 뒤를 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자율학습 이외의 여러 정규교육과정 외 학습에서도 학생의 선택권은 거의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교육과정 외 학습에 대해 학생이 자유롭게 선택해 참여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 아침보충수업(=0교시) 100%, 오후·저녁보충수업 95%, 방과후학교 93.2%, 점심시간 등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 97.5%, 방학 중 보충수업 96.9% 비율로 강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방과후학교나 보충수업 문제 중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도 '학생의 선택권이 보장돼야한다'는 의견이 41%로 가장 많았고, '시험범위 진도를 나가는 문제'와 '주요 과목 중심이 아닌 다양한 강좌 개설' 등이 뒤를 이었다.

반면, 방과후학교와 자율학습으로 인한 사교육 감소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과후학교와 자율학습 실시 이후 사교육을 받는 양이 변화했나?'라는 질문에 '사교육을 받는 시간이나 사교육의 종류·과목 등이 증가했다'라는 응답은 10.2%, '별다른 변화가 없다' 65.3%였다. 이에 비해 '사교육을 받는 시간이나 사교육의 종류·과목 등이 감소했다'라고 답한 학생은 6%, '잘 모르겠다'는 학생은 18%에 머물렀다.

'아수나로' 인천지부 활동가 아리데씨는 "야자나 보충수업을 안 한다고 생활기록부를 나쁘게 기재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냐"며 "학습 선택권 보장 조례가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살인적인 입시제도와 시교육청의 홍보·감시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 시교육청은 대비책 마련은커녕 오히려 정규고사 날짜를 방학 전·후로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도록 한 '학사일정 선진화 방안'을 내놓아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을 박탈하고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선진화 방안을 당장 철회하고 살인적인 입시제도 개선과 조례 홍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방과후학교 운영팀 담당공무원은 "조례 공포 후 20여 차례 접수된 관련 민원 모두를 학교에 시정 조치를 했다"며 "현재 생활기록부 불이익 등 관련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고, 앞으로 방과후학교 담당자 연수와 매뉴얼 제작·배포 등을 통해 조례를 적극 홍보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평신문(http://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학습선택권 #방과후학교 #야자 #방학후 기말고사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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