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 별거상태...한국정부, 이래도 됩니까"

[인터뷰] 재입국 불허된 '조선적' 리정애씨 남편 김익씨

등록 2012.01.31 15:29수정 2012.01.3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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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통상부의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로 일본에 발이 묶인 '조선적' 리정애씨의 남편 김익씨는 "국적변경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의 여행증명서 발급 거부로 일본에 발이 묶인 '조선적' 리정애씨의 남편 김익씨는 "국적변경을 강요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 김도균


"당장 내일 이사를 해야 하는데, 정애씨가 없어서 혼자 하게 생겼네요. 한 달 동안 복덕방을 뒤지다가 정애씨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계약한 집인데…."

김익(37)씨가 착잡한 듯 입을 열었다. 김씨는 지난 2010년 10월 동갑내기인 재일동포 3세 리정애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은 당시에도 주목을 받았는데 이유는 부인 리씨가 '조선적(朝鮮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현재 재일동포는 리씨와 같은 조선적,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 일본 국적 소지자의 세 부류로 나뉜다. 조선적 동포는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동포 가운데 남한이나 북한의 국적을 갖지도, 일본으로 귀화하지도 않아 일본 정부에 의해 무국적자로 분류된 재일동포다. 징용 등으로 강제로 일본에 끌려왔던 이들은 일본이 패전한 직후 미군정 당국이 '외국인 등록령'을 시행함에 따라 '조선적'이란 임시국적을 배당 받았다.

남도 북도 선택하지 않은 조선적 동포

당시에는 남∙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어서, 여기서의 조선은 북한의 공식 국호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줄임말이 아니고 일제의 강제병탄으로 망한 조선을 의미한다. 그런데 1948년 이후 남쪽에 대한민국이,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들 조선적 동포들은 모호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일본으로 귀화하거나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돼 한국 국적을 취득할 길이 열렸지만, 이중 상당수는 이 협정을 부정하면서 그대로 조선적으로 남아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 외교통상부가 파악하고 있는 조선적 동포의 숫자는 6만 명 선. 분단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어느 곳의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이들은 국제법상으로는 난민이나 무국적자 신분이다.

이들 조선적 동포들이 한국을 방문하려면 일본 각지에 있는 한국 영사관에서 '임시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아래서는 조선적 동포들의 국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졌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 여행증명서를 발급받는 일이 까다로워졌다. 현지 영사관에서 증명서 발급을 조건으로 국적변경을 강요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자 급기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09년 이는 인권침해라며 외교통상부에 시정할 것을 권고하기까지 했다.


김씨 부부의 결혼이 사회적 관심을 끌었던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당시에도 결혼식 직전까지 여행증명서가 발급되지 않아 김씨와 리씨는 애를 태워야 했다. 리씨가 오사카 총영사관에 '3개월 뒤 돌아오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여행증명서를 발급 받아 간신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1년여 동안 부부는 3개월 기한의 여행증명서를 갱신해가며 언제 생이별 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결혼생활을 유지해왔다.

3개월마다 생이별 공포에 떤 결혼생활


부부의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은 지난해 말 김씨에게 동업을 제안한 한 선배의 초청으로 유럽을 여행한 후의 일이다. 김씨는 뒤늦은 신혼여행을 겸해서 돌아오는 길에 일본 처가에 들러 리씨의 친척들에게 인사를 드릴 계획을 세웠고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중순 출국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오사카 총영사관은 리씨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했다. 일 때문에 며칠 먼저 귀국했던 김씨는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여행증명서 발급이 거부된 이유에 대해 영사관으로부터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행증명서가 거부된 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경색된 남북관계가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짐작했다.

이제 김씨와 리씨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여행증명서를 기다리며 기약 없는 별거생활을 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일본인도 비자 없이 한국을 오가고, 외국인도 한국인과 결혼하면 합법적 체류를 허가해주는데 왜 '조선적' 동포는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소송 등을 통해 국적을 바꾸지 않고도 한국인과 결혼해 살 수 있는 선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씨와 리씨는 지난 2010년 10월 10일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와 리씨는 지난 2010년 10월 10일 결혼식을 올렸다. ⓒ 김익


다음은 김씨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오사카 총영사관이 리씨에 대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했는데.
"지난 2010년 10월 결혼한 후에 계속 국내에서 생활해왔다. 지난해 12월 16일 정애씨와 함께 출국해서 사업 협의차 유럽에 갔다가 일본 오사카에는 12월 29일 도착했다. 1월 5일 오사카 총영사관에 가서 여행증명서를 신청했는데, 23일 영사관 직원이 전화를 해서 정애씨의 여행증명서 발급이 불허됐다는 통보를 했다. 불허사유는 따로 듣지 못했다. 결혼 전에도 정애씨의 여행증명서 발급이 세 번이나 불허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사실 영사관에서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지 않기 때문에 내주지 않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 한국 국적으로 바꾸면 한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는가.
"조선적 동포가 한국 국적으로 바꿔도 여권이 발급되지는 않는다. 장인 어른의 경우 사업상 필요 때문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장모님도 2년 전에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하지만 두 분 다 입국할 때 여전히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또 재일동포들의 경우에 한국에 호적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에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서는 호적을 다시 만들어야하는데 그 절차가 아주 까다롭다. 영사관에선 한국 국적으로 바꾸라고 강요를 하지만, 실제로 바꾸고 나면 여러 가지 행정절차들은 여전히 나몰라라 하고 까다롭게 하기 때문에 여행증명서를 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는 점 이외에 특별히 달라지는 점은 별로 없다."

"분단된 조국에서 어느 한 쪽 선택할 수 없어"

- 그래도 두 분 같은 경우 여행증명서라도 쉽게 받을 수 있다면 함께 살기에는 쉬워지는 것 아닌가. 리씨가 조선적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한국은 분단된 조국의 한쪽이라는 게 정애씨의 생각이다. 한 쪽을 선택하게 되면 다른 한쪽을 버리는 게 되는데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조선은 분단되기 이전의 조국이어서 포기하고 싶지 않고, 남북이 통일되는 날까지 조선적을 지키겠다'는 정애씨와 다투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런 정애씨 입장을 존중하고 있다. 결혼할 때 정애씨는 개성공단에서 일자리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남∙북한이 힘을 합쳐 만든 제품을 일본에 수출하고 싶다는 것이 아내의 소망이었다."

- 결혼식 전에도 여행증명서 발급이 거부되어서 애를 태웠다고 들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결혼식 날짜 잡고 청첩장까지 다 찍어서 돌렸는데, 여행증명서가 발급되지 않아 화상 결혼식까지 올릴 생각을 했다. 간신히 여행증명서를 받기는 했는데 그 조건이 '결혼식만 하고 3개월 내에 반드시 일본으로 돌아오겠다'라는 서류에 사인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일단 들어오는 것이 급해서 사인을 하고 여행증명서를 받긴 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 서류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

- 결혼식 올리고 나서도 한국에 머무를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외교통상부 여권과에서 3개월 단위로 체류연장을 받았다. 그때도 '오사카 영사관에서 3개월 내에 돌아오겠다는 서약서를 쓴 사실이 있다'는 문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그 다음에는 결혼생활이라는 인도적 사유로 또 연장을 받았고, 이렇게 여행증명서를 모두 네 번 연장 했다. 그러다가 작년 12월에 출국을 한 것이다."

 김익-리정애씨의 즐거운 한때.

김익-리정애씨의 즐거운 한때. ⓒ 김익


"조선적에 대한 외교부와 법무부 입장 달라"

- '조선적'에 대한 외교통상부와 법무부의 입장이 달랐다고 들었다.
"결혼하고 나서 한국에서 계속 머무를 방법을 찾다보니까 법률검토를 한 변호사들이 조선적은 법률적으로 무국적자로 외국인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조언을 했다. 외국 여성의 경우 한국 남성과 결혼하면 배우자 (F2)비자를 받아서 체류를 할 수 있지 않은가.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외교통상부, 오사카 영사관 등으로 문의를 했는데, 다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고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몇 번 전화를 하다보면 먼저 통화했던 똑같은 담당자와 연결되기도 했다. '아, 이래선 안 되겠구나'하고 국적확인 소송을 하려고 했는데, 법무부에서 의외의 유권해석을 내렸다. '법적으로 보면 조선적 재일동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란 답변이었다. 헌법이나 정부 수립 당시 재정되었던 여러 가지 법률들, 남북교류협력법 등에 비춰보았을 때 그렇다는 얘기였다. 법무부 답변은 '조선적은 북한하고 친하니까 북한 국적'이라고 보고 있는 외교통상부의 입장과는 다른 것이었다."

- 법무부의 답변은 리씨가 국내에 체류하는 데는 문제없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체류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데, 일본이나 해외로 나가려면 (여권 역할을 하는) 여행증명서 기간이 끝나버리면 곤란하게 된다. 또 정애씨가 일본에 특별영주권자로 있기 때문에 재입국허가서를 받아야 일본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걸 4년에 한 번씩 갱신을 해야 한다. 또 정애씨가 결혼 후에 한 번도 친정에 가지 못했고, 나도 처가 친척들에게 인사를 못드려서 이런저런 이유로 출국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오사카 총영사관에서 여행증명서를 안내줘서 일본에 발이 묶이게 되었다."

- 여행증명서가 거부되면 다시 신청할 수는 없는가.
"여행증명서가 발급되려면 3주 정도 시간이 걸린다. 재신청을 할 수는 있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다시 거부될 것이다. 또 현 정부가 조선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경색된 남북한 관계에 변화가 없으면 여행증명서를 받기가 힘들 것 같다. 사실 이명박 정부 아래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일단 올 봄쯤 다시 한 번 신청을 해 볼 생각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언제 입국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 정애씨는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나는 우리 부부 문제를 널리 알려내면서 소송을 포함한 법률적 대응을 해 나갈 계획이다. 반드시 국적변경을 하지 않고도 입국이 가능한 선례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조선적 #리정애 #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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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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