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판사 탈락시키면 '사법파동' 일어날 것"

김영식 판사 "연임심사, 대법원 방침에 순응 않는 법관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돼선 안 돼"

등록 2012.02.08 19:16수정 2012.02.08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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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활발히 소통해 '개념 판사'라는 별칭을 얻은 서울북부지법 서기호 판사(사법연수원 29기)가 뜻하지 않은 연임 적격여부 심사 통보를 받고 7일 대법원 법관인사위원회에 출석해 소명한 가운데 법원 안팎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심지어 만약 서기호 판사가 연임심사에서 탈락하면 현재 관망하고 있는 판사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는 '사법파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심사결과는 이번 주 중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사안이 이례적으로 확대돼 국민적 관심이 커진 만큼 법관인사위원회로서도 부담이 커 다음 주에 결론 내려 질 수도 있다. 

이번 사안이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서기호 판사가 SNS에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가카 빅엿'이라는 표현을 써 보수언론으로부터 '법복을 벗으라'는 공격을 받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2009년 촛불재판 개입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신영철 대법관을 징계에 회부해야 한다'는 글을 법원내부게시판에 올리고 서울중앙지법 평판사회의를 주도한 것에 대한 '보복성'이라는 의구심 때문이다. 

서기호 판사도 7일 인사위원회에 출석해 근무평정에서 5회나 '하'를 받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2009년 이후부터 신영철 대법관 사태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이후 연속 3회 '하'를 받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변했다"고 8일 법원내부게시판에 알렸다.

실제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옛 법원노조, 본부장 전호일)는 지난 2일 성명을 통해 "서기호 판사에 대한 연임 부적격 분류는 SNS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행동, 2009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파동 때 평판사회의를 주도했던 활동에 대한 법원과 집권세력의 보복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보복으로 규정했다.

특히 "법관 인사권과 징계권을 한 손에 가진 양승태 대법원장이 인사권 및 징계권을 법관 길들이기로 사용하려 한다면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법원구성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경고하며 법원 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전했다.


7일 법관인사위원회에 열리기 앞서도 법원본부는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복성에 가까운 서기호 판사에 대한 연임배제 시도를 당장 멈추라"고 촉구했다.

기자가 만난 법원공무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법원직원들에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는 서기호 판사가 만약 연임심사에서 탈락해 법복을 벗는 일이 벌어진다면 사법부는 역대 사법파동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현재 판사들도 이번 사태를 조용하게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만약 탈락으로 이어진다면 판사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전망도 제시했다. 왜냐하면 서기호 판사 연임에 대한 칼자루를 결국 양승태 대법원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법원본부의 한 간부는 "법관인사위원회의 위원 9명 중 3명이 판사이고, 나머지 6명 중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하는 변호사나 법학교수 등 외부인사도 결국은 대법원장이 위촉하기 때문"이라며 "결국 서기호 판사에 대한 칼자루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쥐고 있어 만약 탈락시키면 판사들이 반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분위기는 법원 밖에서도 뜨겁다. 지난 5일 서기호 판사를 지키기 위한 트위터 계정(@people_eyes)이 만들어 지자 동의를 표시하는 팔로워가 4천 명에 이르고,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서기호 판사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people_eyes>는 "최시중 방통위의 SNS검열에 항의하며 '가카, 쫄면, 빅엿'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화제가 됐던 서기호 판사, 재임용심사 명분으로 사법부에서 쫓겨나기 직전"이라며 "판사 길들이기, 사법부 장악 시도 시민의 힘으로 막아냅시다"라고 호소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장을 지낸 이상갑 변호사도 4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법원이 서기호 판사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려고 한다"며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판사들을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변호사는 8일에도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법적인 이유로는 서기호 판사를 탈락시키기 어려워 보인다"며 "대법원이 무리수를 뒀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이번 사태는 오로지 신영철 대법관 사태를 주도한 것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널리 알려 대법원이 서 판사를 탈락시키는 것을 막아내자"고 동참을 호소했다.

판사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서울북부지법 변민선 판사, 서울남부지법 이동연 판사가 서기호 판사의 연임심사와 관련해 법원내부게시판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고, 8일에는 서울행정법원 김영식 판사도 "연임심사가 대법원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법관을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해하고 법관의 관료화를 부추길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김영식 판사는 <다시 한 번 법관연임심사의 공정성을 촉구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먼저 "어제 법관인사위원회에서 서기호 판사에 대한 연임심사가 있었고, 서 판사도 100페이지에 이르는 소명자료를 제출했다고 하니 충분한 토론과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서 이렇게 분수없이 글을 쓰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대법원이 평생법관제도를 지향하면서 그와 함께 법관연임심사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고, 또한 법관사회만이 경쟁과 검증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어서도 안 되고, 법관사회의 활력과 신진대사를 위해서도 어느 정도의 연임거부는 불가피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그러나 "강화된 연임심사가 대법원의 정책이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법관을 솎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해하고 법관의 관료화를 부추길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판사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법관의 임기가 10년으로 제한돼 있는 것은 맞지만 우리 헌법 제106조는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법관의 신분을 엄격하게 보장하고 있고, 위 규정은 법관 독립의 초석을 이루는 조항"이라며 "따라서 법관연임심사가 이러한 헌법의 정신을 형해화시키고 '법관 파면의 손쉬운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조직법도 연임발령 거부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기 위해 그 사유를 세 가지로 한정하고 '현저성'을 그 요건으로 규정했다"며 "그렇다면 법관에 대한 연임심사는 부적격법관을 걸러낸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 기업들이 하는 상시적인 구조조정 방식으로 진행돼서는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판사는 "대법원은 서 판사의 근무평정 중 이른바 '하' 등급을 5차례나 받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으나 일선 법관들이나 국민들은 서 판사가 왜 '하' 등급을 받았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은 그동안 사건처리율, 항소율, 파기율 등 법관에 대한 통계를 근무평정의 주요 잣대로 내세워 왔으나, 실제로 서 판사의 업무 통계가 전국 평균, 해당 법원 평균에 비해 형편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평균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지만 법관의 10%에게는 '하' 등급을 부여해야 한다는 상대평가의 불가피성 때문인지, 그리고 만약 이렇게 평균에 근접하고 있으면서도 '하' 등급을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판사를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하여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봐 연임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정신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는 "그런데 최근 제가 들은 바로는 서 판사의 업무 통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하고, 서 판사가 그간 (법원내부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재판에 대한 남다른 열정마저 느껴진다"며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서 판사가 왜 '하'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런 근무평정만으로 연임거부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갖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에 연임심사 대상자라는 김 판사는 "제가 그다지 동료법관들보다 법원장 눈에 띄는 일도 없었고 또 통계도 고만고만해서 그 어려운 '상' 등급을 받았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 '중'과 '하'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결국 한 해에 10명 정도에게 연임부적격통보가 된다고 보면, 저도 내년에 연임부적격 대상자로 통보받을 가능성이 큰데 생각만 해도 두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고 아마 제 동기들 중 절대 다수의 판사도 안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다들 연임심사 시기가 다가오면 법원장에게 잘 보여야 하고 마치 '선착순' 게임을 하듯 어떻게든 동료법관을 밟고 일어서야 한다"며 연임심사의 폐단을 꼬집었다.

김 판사는 "대법원은 '현실에 대한 지나친 과장'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일선 법관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요"라고 따져 물으며 "따라서 연임적격 심사는 철저히 헌법과 법원조직법의 정신에 맞게 엄격하게 진행해야 할 것이고 또 섣부른 예단과 사회 분위기에 휩쓸릴 것은 더더욱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에 와서 법관연임 문제가 새삼 논란이 된 데에는 서 판사가 그동안 SNS를 통해 사회적 발언을 활발하게 해 왔다는 점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또 게시한 글이 법관으로서의 품위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논란이 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실제 보수적인 법원 분위기에서 그러한 표현이 법관의 품위 그리고 사법신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분들도 많을 수 있다고 보여 서 판사와 같은 분들을 불편해하는 법관들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만으로 법관사회의 다양성을 포기하고 동료 법관이 법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판사는 "아무튼 대법원이 SNS 게시 글을 문제 삼지 않은 점은 다행이나, 이 문제와 관련해 일선 법관들은 그간 줄곧 일부 언론이 특정 판사에게 자진해서 법복을 벗을 것을 요구하거나 대법원장에게 연임심사에서 탈락시킬 것을 요구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얼마 전 법원행정처장께서는 특정 사건의 재판장에 대한 집단적인 불만표출행위와 재판장에 대한 사법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 이런 행위들이 '헌법이 수호하고 있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사법부는 어떠한 부당한 간섭이나 압력에도 흔들림 없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사명을 다할 것이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며 "그러나 자칫하면 서 판사에 대한 대법원장님의 연임거부는 위 두 사건과 전혀 다른 형태이면서도 동일하게 헌법이 수호하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판사는 "대법원장님은 국민들의 사법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말할지 모르나, 그동안 사법부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 원인을 이른바 '일부 판사들의 튀는 판결이나 돌출 행동'이라고만 믿는 국민이 다수는 아니라고 본다"며 "우선 위의 두 사건만 보더라도 사법불신의 원인은 사법부의 권위적인 재판진행이나 양형에 관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는 "결국 항간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 대법원은 해당 판사뿐만 아니라 일선 판사들을 설득해야 할 책임이 있지, 결코 대법원이 이른바 일부 퇴는 판사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해당 판사의 업무성적이 법관직을 지속하기에 부적절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행정절차법이 규정하고 있는 투명성, 처분의 사전통지 등 모든 절차를 충실히 지켜 해당 판사에게 충분한 소명과 방어의 기회를 부여해야 하고, 법원장이 하는 근무평정만 아니라 그동안의 사건처리율, 항소율과 파기율 등 업무통계나, 직원들이나 동료법관들의 평가 등도 제시돼야 하고, 그런 모든 자료를 통해서 해당 판사가 '근무성적이 현저히 불량해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이 밝혀져야 할 것"이라며 "여하튼 대법원장님이 법을 지키지 않아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 판사는 "생각해보면 법관 개개인은 나약하고 하찮은 존재에 불과한데도 헌법은 법관에게 다른 공무원과 차원이 다른 엄격한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며 "결코 법관들의 능력이 출중하고 인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제도보장을 통해서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확립될 수 있다는 지난한 역사적 경험의 소산이기 때문으로, 부디 법관들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출렁임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또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여러 가지로 법원이 시험대에 올라있고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인 만큼 이번 법관 연임 논란도 사법부답게 가장 합리적으로 그리고 법령에 충실하게 결론이 도출되기를 바라며, 그래서 제가 속한 사법부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근무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이번 사건을 보면서도 자꾸 유신이나 5공화국과 같은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대법원이 여러 구실을 붙여 시국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법관을 지방으로 내쫓았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이 허망한 기우에 그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서기호 #연임심사 #법관인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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