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2011년 5월 27일 정오 서울 광화문 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며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요즘 서울 광화문광장은 '1인시위 메카'가 되었다. 이순신 동상 앞에는 '정봉주 전 의원 사면', 'YTN 해고자 복직', '원전 공사 반대', '반값등록금' 등 다양한 구호를 적힌 피켓을 든 5~6명의 사람들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부당하고, 억울한 사연이 많다는 점에서 씁쓸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시위하는 장소가 생겨서 외롭지 않게 1인시위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깔때기'를 댈 만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1인시위 메카 광화문의 탄생'은 반값등록금으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4월 '반값등록금 될 때까지' 릴레이 1인시위를 시작할 때만 해도 광화문광장에서 1인시위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배우 김여진, 권해효와 국회의원 이정희, 천정배 등이 반값등록금 1인 시위에 동참하면서 광화문광장이 알려졌고, 1인시위 하는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해 등록금넷에서 1인시위를 시작할 때 여러 가지 고민이 들었다. 2000년 참여연대가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의 '증여세 징수'를 국세청에 촉구하면서 처음 1인시위를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콜럼버스 발견'에 견주었다.
집회·시위는 보통 '다수'의 사람들이 운집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혼자 시위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하면서도 집시법을 무력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1인시위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이 북적대듯이 1인시위는 이제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익숙한 시위 방법이 되었다. 등록금넷도 2008~2010년까지 기간은 달랐지만 매년 1인시위를 진행해왔던 터였다. 더불어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공약한 '반값등록금'도 몇 년째 주장하다보니 식상해져 있던 상황이었다. 식상한 '반값등록금'에 대한 약속을 흔해빠진 '1인시위'라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1인시위의 메카'가 된 광화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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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값등록금 될때까지 릴레이 1인 시위 (편집 : 자원활동가 김우주) ⓒ 이선희
결과부터 말하면 '반값등록금 1인시위'는 성공적이었다. 등록금넷은 1인시위의 슬로건을 '반값등록금 될 때까지'로 정했다. 그동안 등록금을 주제로 많은 1인시위가 있었지만, 이번에야 말로 '끝장'을 보겠다는 결의를 담은 것이었다. 그러나 등록금넷만 결의한다고 이 시위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같은 1인시위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등록금이 지나치게 높고, 인하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사립대학교가 80%를 차지하고, 각 대학의 주도권은 재단이 쥐고 있고, 정부는 등록금을 인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2007년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표를 주었지만 결과는 '반값등록금' 사기였다. "반값등록금은 마음의 부담을 반으로 줄여준다는 의미였다"는 황당한 답변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등록금넷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맞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확실하게 보여주기로 했다. 그리고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친환경 무상급식이 좋은 후보와 나쁜 후보를 갈랐듯이, 반값등록금이 그와 같은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값등록금 1인시위는 선거를 통해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한 등록금넷의 승부수였다. 1인시위는 김여진(배우), 권해효(배우), 이정희(국회의원), 천정배(국회의원) 등 유명인사의 참여를 통해 반값등록금 이슈화에 한몫을 했다.
식상한(?) '반값등록금 1인 시위'의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