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우리시대의 23가지 쟁점과 성서적 해법
정병진
- 예수는 정치가라기보다는 종교적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더욱이 그는 당대의 여러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오늘날 시사비평가처럼 논평을 가하진 않았습니다. 예수의 평소 관심사와 한국사회 이슈는 서로 어떻게 포개어질 수 있습니까? "당시는 신정통치의 제정일치 사회였기 때문에 종교와 정치의 영역을 분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요새도 그런 경향이 농후하지만 당대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종교로 정치하고 정치로 종교를 관리하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예수는 물론 유대교의 종교적 전통에서 자라났지만 그 종교 전통을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통해 급진화하였지요.
그런데 이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지극히 종교적인 휘장을 걸치고 있으면서 뚜렷하게 정치적인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바실레이아 투 테우'(basileia tou theou)라는 이 헬라어 개념을 풀면 하나님이 유일한 왕이 되어 그의 공의와 평화와 사랑을 이 땅에 구현하는 궁극적인 대안 통치를 가리키거든요. 비록 예수가 빌라도와 가야바와 헤롯의 억압적 식민체제와 겉돌면서 그들의 '리그'와 무관하게 행동했지만 예수 사역의 실상은 그 외곽의 소외된 현장을 감싸면서 역으로 그들의 정치종교 체계를 뒤집어엎는 도발적인 행위였지요.
하나님의 나라라는 동시대의 거대한 정치적 갈망이 당시 갈릴리의 소외된 생명들을 향해 나타나면서 매우 구체적이고 미시적인 생활정치의 관심사를 포괄했습니다. 예수의 그 활동이 바로 망가진 생명의 회복이란 결실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도 이즈음 망가진 생명들, 소외된 백성들, 벌거벗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850만 비정규직과 수많은 청년실업자들(미취업자들), 극도의 채무 압박 아래 신음하는 신용 위기의 시민들은 특히 우리 시대의 고통스런 사례일 겁니다."
-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상당히 달아오른 상태입니다. 신앙인들도 정치에 둔감할 수 없는데, 이번 선거에 임하는 신앙인의 바람직한 자세는 무엇이라 보십니까?"저는 '하나님 나라'의 심급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 이 땅의 기독교 신앙인들이 우뚝 서는 데서 해법을 봅니다. 온갖 저질적인 기득권주의와 연고의식에 대항하면서 특정 정치세력이 남북한을 포함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정치를 견고하게 세우는 데 정치적 에너지를 투여할 수 있는지, 과연 그런 역량과 정책이 있는지, 그런 정책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충실성이 있는지 면밀하게 살피며 판단의 지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는 단순히 성서를 묵상하는 것만으로 생기지 않을 겁니다. 신문과 잡지, 온갖 매체의 다양한 정보를 두루 소화하면서 세계사의 흐름을 조망하고 우리나라의 권력체계가 작동해온 흐름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때 그런 실천적 지혜가 생겨나겠지요. 때로 극적인 자기 계몽과 각성은 기독교인들의 구원을 성숙의 지평으로 나아가게 이끌어주지 않던가요?"
- 서울시 '무상급식' 찬반투표 이후 '복지'가 최대 화두로 부상한 상태입니다. 또 이 책에서 다루는 양극화, 농촌의 빈곤, 가정해체, 부동산, 교육, 자살 등 많은 문제가 복지로 수렴되는데 예수가 가르친 복스러운 삶의 요체를 간략히 설명해주신다면?"성서의 첫 번째 책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의 이상적인 삶은 99%의 향유와 1%의 금기로 구성된 복지공동체로 꾸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파탄나면서 암울한 타락의 역사가 이어진 것으로 성서는 인류사를 이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래적 의도에 따른 창조세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기치 아래 극적으로, 종말론적으로, 되살아납니다. 그리고 그 신학적 이념과 실천적 교훈은 주기도문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세계지요. 그 뜻은 바로 일용할 양식이 모든 이들에게 '우리의 양식'으로 공평하게 나눠지고 빚진 자들이 탕감 받고 죄와 악의 실존에서 구조되는 일상적 전복과 위기극복의 경험이지요. 이는 이사야가 예언하고 세례 요한이 재현한 대로, 또 예수가 실천한 대로, 낮은 골짜기를 돋우고 높은 산을 깎아 평탄한 대로를 내는 작업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를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각종 극성을 지닌 구조는 그대로 방치해놓은 채 개개인의 능력과 도덕적 양심 등에 모든 사안의 해법을 의탁하는 경향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역으로 우리시대의 상식적인 윤리를 배반합니다.
그런가 하면 많은 신자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호소하면 무슨 요술방망이라도 내려와 만사형통되리라는 환상도 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복스러운 삶의 요체'로 귀결되지 않지요. 복스러운 삶은 산상수훈의 팔복에 암시된 대로 다분히 '가난한 심령'의 존재론적 영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물질적 풍요와 제도적 쇄신도 문제 해결 이후에 남는 또 다른 문제에 무기력해질 수 있거든요.
법규와 제도, 정책과 예산이라는 복지의 구성분자들이 인간 존재의 실존적 조건을 외면해버리면 우리의 복지는 복되지 않을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팔복 교훈은 이 시대의 복지 담론을 검증하고 재생하는 리트머스 용지가 될 수 있습니다."
- 이 책에서 한국교회에 만연한 근본주의 망령, 무분별한 '성전'건축, 독점적 성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깊은 신학적 성찰과 '치열한 비움'을 역설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알고 있다는 '과잉확신'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바울이 말한 미래로부터 다가올 '미지의 신'에 눈 떠야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흔히 '확신 있는 믿음' 강조하는데 '미지의 신'에 눈 떠야 한다니까 다소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이 듭니다. 오늘 한국교회에서 신앙하는 하나님 이미지에 어떤 문제가 있기에 이 같은 해법을 내놓으신 것인가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적 확신을 지니지 않고서는 이 세상의 불의와 싸울 수 없고, 우리가 그 확신조차 비워낼 수 없으면 그 싸움을 반성할 수 없다고요. 인간이란 존재는 종교적 교리에 의탁하여 신앙적 확신을 지닐 때 그 삶의 기틀이 견고해지고 현실에 그 삶이 뿌리내려 가지만 동시에 그 확신을 회의하고 성찰하면서 끊임없이 흔들릴 때 바람처럼 자유로워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인간이 절대자 하나님이 아닌 점도 분명합니다. 인간의 신 이해는 원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진화되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세계와 온갖 우발적인 삶의 미로에 감추어진 창조세계의 신비 앞에 때로 앎의 과잉을 성찰하면서 '무지'와 '미지'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지의 신'은 바울이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연설하면서 헬라문명 속의 신들을 기독교적 맥락에서 하나님으로 변증할 때 사용한 당시 비문의 일부였지요. 저는 그 문구로써 예수와 바울 당시의 하나님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발견과 함께 갈망하고 고대하는 신학적 은유로 사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앙적 확신이 강하다는 분의 심리구조를 분석해보면 단순 무식하거나 극도의 내면적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 '믿습니다, 아멘'을 아무리 빡세게 외치고 확신을 시위한다고 해서 그 인간의 실존적 심연이 사라지지 않거든요.
이런 점에서 우리는 예수가 질타한 종교적 위선과 자기기만의 탈을 벗고 하나님 앞에 벌거벗으려는 자기해체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물론 그 하나님은 전통적 신 관념에 머물기보다 미래의 세계로부터, 우리의 무지 가운데 출현하는 하나님, 정통 신앙의 기대조차도 배반하는 놀라운 역설의 신이 되겠지요. 이러한 신학적 상상력은 우리의 신앙을 창조적 긴장 가운데 재구성할 수 있는 서늘한 성찰의 능력을 배양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요란한 과잉 확신의 소용돌이에 하나님의 침묵을 강요하는 경직된 우리사회와 한국교회의 세태 속에 이러한 열정적인 아이러니와 내적인 성찰의 동역학이 요청됩니다."
- 끝으로 앞으로 펼칠 저술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이 책은 제가 만든 최초의 대중비평서인데 개인저서로는 18번째, 번역서와 공저를 포함하면 대충 43번째 되는 책입니다. 언젠가 철학자 김영민 교수님(한신대)은 저한테 '많이 쓰는 것도 전략'이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땅에서 신학자로 본격 데뷔한 지 15년째인데, 그동안 저는 이 전략에 충실해온 것 같습니다. 이번 연구학기 내에 쓴 마가복음 주석서와 성서와 창의적 설교를 연계시킨 또 다른 책이 곧 출판예정이고, 지금 '기독교 공동체의 성서적 기원과 실천적 대안'이란 주제로 새로운 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많이 쓰는 전략을 다소 수정 보완하여 한편으로 성서학 본연의 연구 작업에 꾸준히 임하면서 다른 쪽으로 이 땅의 일상적 삶에 심도 있게 반향하는 넓은 의미의 '신학비평' 작업을 좀더 활발하게 개척하고 싶습니다. 가령, 오늘날 막강한 대중예술매체인 영화라든가, 그밖에 예술작품과 다종다기한 대중문화현상, 인문학의 온기가 내려앉은 우리사회의 세밀한 삶의 현장을 포착하여 거기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신학적으로 읽어내는 짧고 굵은 글쓰기 작업을 구상 중입니다. 여기에 저는 실험적으로 '인문신학'이란 말을 붙여왔는데, 그것이 단순한 구호적 표방이 아닌 육체와 글이 만나는 작업으로 꾸려가고 싶습니다.
포이에르바하의 유명한 테제 가운데 '신학은 인간학(anthropology)이다'라는 말이 있지요. 그 관심사에 잇대어 저는 인문학으로서 신학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신학을 고리타분한 골동품처럼 귀퉁이에 처박아놓는 문사철의 고답적 인문학에 온고이지신의 묘법으로 균열을 내며 종횡무진 소통하고 싶은 의욕이 강합니다."
예수, 한국사회에 답하다 - 우리 시대의 23가지 쟁점과 성서적 해법
차정식 지음,
새물결플러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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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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