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끔 자본주의를 뛰어넘는다

학교 가는 길 1

등록 2012.02.27 17:07수정 2012.02.27 17:07
0
원고료로 응원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인다. 자잘한 나무만, 풀만, 벌레만, 개울만, 바위만, 보고 살다가, 그렇게 눈이 좁아져 있다가, 문득 산에서 나오면 그것들이, 그 나무들이, 그 풀들이, 그 벌레들이, 그 개울들이, 그 바위들이, 어우러져 얼마나 아름다운 산을 만드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오래 전, 학교를 나와서 몇 년 쉰 적이 있다. 이 지겨운 수업만 안 하면 선생 노릇도 해 볼 만하다고, 농담처럼 진담처럼 그렇게 지루해하다가, 덜컥 학교를 그만두었다. 처음에는 자유로웠다.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은 많았다. 그렇게 사는 재미가 쏠쏠했다. 제법 태깔도 났다.

그런데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세 해가 갔다. 가끔 외로웠다. 그럴 때면 다니던 학교에 가서, 교문 밖에서 이리저리 어슬렁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아무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온 아이가 "아저씨" 하고 나를 부를 무렵, 내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해직은 호주머니를 가볍게 하는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아내는 내가 민망해할까 봐 서랍에다 용돈을 넣어두었지만, 그래도 아니었다. 해고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궁핍이 주는 고통보다 큰 것은 영혼이 고갈되는 느낌에서 왔다. 그러다 서약서를 썼나? 어쨌든 학교로 돌아왔다, 비틀거리면서.

그런데 거기에 아이들이 있었다. 때로는 귀찮게, 짜증나게, 밉게까지 보인 아이들이, 그 나무들이, 그 풀들이, 그 벌레들이, 그 개울들이, 그 바위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아아,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로. 그것들은 내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오랫동안.

그러고서 18년이 지났다. 물론 처음처럼 가슴은 뛰지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버릇처럼 하루를, 또 하루를 죽여 나갔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정물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고, 나도 그 풍경의 일부가 되어, 박제처럼, 그 죽음 같은 고요에, 몸을 맡겼다. 그게 편했다.

그러다 아팠다. 지난 여름, 병원에 몸을 누였다. 수술대에 세 번이나 올라가면서, 가을이 왔다.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다시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까, 불안이 나를 눌렀다. 정체 모를 그 짐은 감당하기가 힘겨웠고, 함께 엄습해 오는 공포는 정말이지 두려웠다.


하지만 신은 내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은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그리고 '선생'이 되었다. 잘 살아야겠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잘 해야겠다, 그 마음으로 돌아왔다. 신께서는 잠깐 산에서 나를 끌어내리시더니, 나를 다시 산 속 오두막으로 돌려보내신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33명의 '학생'이 있었다.

강양O 강영O 김민O 김현O 박준O 서국O 서민O 손현O 송민O 송현O 신희O 이승O 이창O 정현O 고동O 공명O 김동O 김보O 김영O 김의O 김지O 김형O 노경O 박경O 박진O 선준O 이기O 이용O 임승O 전명O 최강O 황원O 황창O


나는 누가 나무인지, 풀인지, 벌레인지, 개울인지, 바위인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그들을 나무로 풀로 벌레로 자라게 하고, 개울로 바위로 흐르게 하고, 그리하여 끝내는 더욱 푸르게 해야겠다는, 그래서 생명 넘치는 산으로 나도 함께 어우러져야겠다는 생각뿐. 그래서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이 편지를 쓴다.

그대가 내게 저녁 한 끼를 사 준다면,
저녁 밥값보다 많은 차비를 들여서라도
내, 달려가리 그대에게.
           - '사랑은 가끔 자본주의를 뛰어넘는다'에서

덧붙이는 글 | 동부매일신문에 함께 싣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동부매일신문에 함께 싣고자 합니다
#학교 가는 길

AD

AD

AD

인기기사

  1. 1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2. 2 딸이 바꿔 놓은 우리 가족의 운명... 이보다 좋을 수 없다
  3. 3 '100개 눈 은둔자' 표범장지뱀, 사는 곳에서 쫓겨난다
  4. 4 '헌법 84조' 띄운 한동훈, 오판했다
  5. 5 최재영 목사 "난 외국인 맞다, 하지만 권익위 답변은 궤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