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투표의 '역설'...신인은 죄다 아웃?

[진단] 민주통합당 모바일선거, 시민배심원제도 왜 뺐나

등록 2012.02.28 09:09수정 2012.02.2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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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27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남소연


민주통합당이 정당 사상 처음으로 모바일 선거라는 혁명적인 제도를 도입했지만, 정작 그 제도를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보완책 없이 이 제도만 덜렁 선전한 후과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모바일 투표를 통해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고 그 힘을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정치 신인들을 배출하겠다는 애초의 취지는 무색해졌고, 지역별로 돈과 조직 동원선거가 횡행한다는 비난만 받게 됐다. 제도는 선진적이나, 이 제도를 통해 19대 국회로 진입할 인물들은 지역에서 돈과 조직을 장악한 기성 정치인들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체성 심사를 위해 검토했던 시민배심원제도가 무산됐다. 각 지역별로 일반 시민들로 공천 배심원단을 구성해 면접 방식으로 정책과 공약, 해당 후보자의 살아온 과정 등을 검증한 뒤 그 결과를 공천심사에 반영하자는 취지였다. 또 이래야만 정치신인의 등용문도 열린다는 게 시민통합당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 등으로 시민배심원제도는 폐기처분됐다. 이런 상태로 공천이 마무리된다면 이용선 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이나 최승국 녹색연합 사무처장 등의 정치신인들은 정견발표도 못해보고 '아웃'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역과 신인 1 : 1로 붙으면 현역이 완승... 왜?

지난 26일 광주 동구에서는 박주선 민주통합당 예비후보의 선거인단을 모집하다 불법 혐의로 선관위 조사를 받던 60대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민주통합당은 즉각 사과하고 박 후보의 지역구의 공천심사와 경선을 중단시켰다. 또 이 지역의 전략공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 후보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며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자고 할 때의 논리와 명분은 분명했지만 실제 선거 현장에 적용해보니 현실과는 괴리가 컸다고 밝혔다. 


이어 박 예비후보는 "모바일 선거인단 모집 경쟁 때문에 유권자들은 민주통합당이 '국민고통당'이냐는 말까지 한다"며 "광주 동구 자살 사건은 상대 후보 측의 과열 혼탁 네거티브 때문에 생겼다"고 주장했다.

서울 중랑을 예비후보로 등록한 양정철 전 청와대 언론기획비서관도 선거인단 모집경쟁의 심각성을 털어놓았다. 양 후보는 "지금 선거인단 모집경쟁은 누가 누가 더 많이 돈을 쓰고 조직을 푸나 경쟁하는 것 같다"며 "이것이 과연 정확한 시민여론을 반영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반문했다.

이어 양 후보는 "지역에서 바닥만 훑은 후보에게는 상당히 유리할 수 있지만 이 제도가 정치신인의 등용문이 되려면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서울 양천을 지역구에 도전장을 낸 이용선 전 민주통합당 대표(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사무총장)는 "지금 호남에서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들이 1:1로 붙으면 돈과 조직, 지명도에서 도저히 현역의 벽을 신인이 넘을 수 없다"며 "이런 한계 속에서는 19대 공천에 정치 신인들이 대거 진입하기는 매우 힘들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이 전 대표는 "모바일 투표는 꼭 도입돼야 하는 선진적인 제도"라며 "그 제도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이 요구됐는데 현 지도부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용선 전 대표가 제기하는 문제는 시민배심원단 제도다. 이 제도는 시민통합당 시절부터 혁신과 통합 출신 인사들이 줄곧 밀었던 제도다. 이 전 대표를 포함한 시민통합당 측 인사들은 시민배심원단의 평가로 돈과 조직에서 열세인 정치 신인들이 새롭게 정치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믿었는데 이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 결국 좌절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이 제도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통합당의 통합 일정이 늦어지면서 실기한 측면도 있지만, 내심 1.15 당대표 최고위원 선거에서 80만 시민들이 참여했던 것보다 4.11 총선 국민참여경선에는 더 많은 선거인단을 모아서 흥행몰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민배심원제도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시민의 자발적 참여보다 조직싸움이 치열한 선거"

이와 관련 민주통합당의 고위 관계자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보다 조직싸움이 치열해졌다"며 "자발적 동참이 없는 상태에서는 선거인단 모집이 결국 조직선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략적 배려가 없다면 시민사회나 노동계 출신의 정치신인들은 경선에도 못 가보고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정치 신인이 돈과 조직으로 동네를 장악한 기성 정치인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겠느냐"고 탄식했다.

또한 그는 "모바일 투표가 공천제도 민주화에 혁혁한 공이 있는 것은 맞지만 이 제도에 모든 당력이 집중되고 무려 30억 원이나 되는 예산이 집행되면서 정치신인들은 정견 발표를 하거나 토론회조차 못 해보고 아웃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천심사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이 90% 생환해서 돌아온 것도 이 맥락과 맞닿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고 4년 이상 지역에서 활동했던 힘센 현역 정치인들에게는 아예 경쟁자가 없으니 단독으로 출마해 단수 공천을 받는 것"이라며 "시민배심원단 같은 절차가 생략됐으니 정치신인들은 아예 빛도 못 보고 사그라들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또 다른 민주통합당의 핵심 관계자는 "모바일 투표가 만능이 아니라는 게 확인됐으니 기존 조직을 많이 갖고 있는 기성 정치인에게만 유리하지 않는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며 "시민배심원단 제도와 신진 배려가 없다면 구태의연한 공천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신인들의 등용문이 되지 못하고 있는 모바일 국민참여경선에는 27일 현재 전국에서 76만7027명이 등록했다. 이대로 간다면 29일 마감하는 날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민주통합당의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에 가입한 선거인단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 여부다.

무엇보다 민주통합당의 국민참여경선에 자발적 시민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민주통합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이어진 공천결과 발표에 감동하는 시민보다 경악하는 시민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2차 공천에는 철새와 세습, 부정비리 혐의 논란 중인 인물은 물론 한나라당 출신 인사까지 경선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MB정권 심판과 정치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이와 관련, 한 시민운동가는 "민주통합당이 어떻게 하면 자발적 시민의 참여로 선거열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내부 정치에만 골몰하는 것 같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민주진보가 단결해 MB정권을 심판하고 19대 의회 권력을 교체하는 것인데 국민감동은커녕 오히려 비난만 받는 꼴이니 참으로 답답한 지경"이라고 성토했다.
#모바일 투표 #시민배심원제도 #정치신인 등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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