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 동네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늘 그렇듯이 술자리는 책임감이 떨어지는 이야기가 오고간다. 총선과 대선이 있는 정치의 해이니 술자리마다 이야기가 무성하다. 여느 때와 달리 나는 이 자리에서 민심을 읽었고, 야권진영이 안고 있는 고민 해결의 중요한 단서를 얻었다.
한 지인은 먼저 분노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한겨레>가 그럴 수 있는 거야? 1면 머릿기사로 '민주당의 자책골'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거냐고. 명색이 비판적 정론지가 말이야. 민주당 공천발표는 당선될 수 있는 사람을 공천한 건데 그게 무슨 잘못이라는 거야. 그럼 누굴 공천할 수 있지? 결국 인지도가 없는 사람을 공천하면 다른 당이 당선되도록 도와주는 꼴이지 않겠어? 아니, 내 눈엔 투표장에 가지 못하도록 바람잡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평소 <한겨레> 같지 않네."
곧바로 다른 지인들이 반박했다.
"지금까지 민주당이 뭘 잘했는데? 종로를 예로 들어 보자고. 야당 대표출신이 꼭 종로로 나와야 하는 거야? 정치 1번지 운운하지만, 어차피 자기 지역구도 아니잖아. 민주당이 진짜 고민해야 할 일은 지역에서 감동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국민들이 민주당에 기대를 거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인데 깡그리 무시하는 선택 아닐까 싶어.
민주당이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유권자들이 외면하는 거고 언론이 '자책골'이라고 하는 거 아냐. 어차피 종로로 나왔으면 국민경선을 치르고 당선되면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을. 종로에 어떤 후보들이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과 경쟁을 하고 경쟁의 승리자가 돼 후보자가 되면 대표출신으로서도 신임을 받고 민주당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에게도 감동을 만들어 주는 거 아냐?"
"지금 급한 상황이잖아. 당장 다른 당과 경쟁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동안 민주당을 위해 나름 헌신적인 역할을 했는데, 당 대표 출신은 중요한 경쟁력이고 그래서 전략적으로 공천을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4.11 총선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떻든 어려운 상황에서 조건 없이 민주당을 옹호해야 한다는 입장과 국민의 기대를 담지 못하는 민주당을 바르게 지적해줘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대치했다. 그렇다.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혁신이나 진보의 영역에는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 사회당이 있는데도 그들에 대한 시선은 눈꼽만큼도 가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민주당은 감동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은 감동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민주당에 거는 기대가 전부가 아니라 이명박 정부에 걸었던 실망을 어딘가에서 회복받고 싶은 뿐이었다. 그런 국민적 정서를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실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백의종군을 하면서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심없는 결단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껏 민주당에 기대를 거는 국민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정치적 실망을 책임져줄 것이라는 희망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런 대세를 사심없이 책임지지 못하고 자신들을 위한 이해관계에 몰입하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속마음을 읽어버린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예리한 언론의 질책도 외면하는 듯하다.
최근 세상을 떠나신 김근태 고문은 "2012년을 점령하라"고 했다. 그가 절규한 것은 무엇인가. 2012년 정치가 짊어져야 할 짐을 명령한 것이다. 정치는 정치인의 것이 아니다. 일찍이 공자는 '정자(政者)는 정야(正也)'라고 했다. 정치인은 백성이 바른 삶을 살도록 역할하는 것이다. 정치는 민심이 요구하는 바른 길을 가는 것이어야 한다. 언론도 언론인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
민주당의 정치가 바로 서려면 국민을 감동시켜야 할 책무가 있다. 국민은 감동을 원하는데 감동을 책임지지 못하는 정치적 안목을 가지면 당연히 민심은 그들을 떠나는 것이다.
과연 <한겨레>의 잘못이라고만 말하는 것이 맞을까. <한겨레>는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선거결과는 절묘하다고 했다. 어느 한 쪽에 몰아주지 않았다고들 한다. 그것이 국민정서다.
민주당은 계속 악재다. 경선인단 모집 중에 사망 사고까지 발생했다. 2012년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감동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지상과제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지금까지 감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들끓게 하고 있다. 2012년의 위기상황을 극복한 비책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민주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위기를 봉합하려는 미봉책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당리당략이나 사심에 얽매이지 않는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당은 신문지상에 쏟아지는 공천결과에 대한 세론은 따갑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전히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공천 결과를 3차로 발표하였다. 그곳에 몇 가지 실망스런 문제가 드러난다. 상대후보와 경쟁력의 논리를 내세워 구태정치인 몇 사람을, 아니 당내 실세만을 배치한 것이다.
술자리의 격론은 어느덧 결론에 도달했다. 민주당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을 제시했다.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한 가지를 실현하면 된다. 국민통합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다. 혹자는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도 한다. 자기 이념아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은 스스로 통합하기 어렵다. 사심을 버리고 통합명령에 충실하면 간단하다.
나는 <한겨레>의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진보든 혁신이든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공정성을 담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언론으로서 최선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신문지상에는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과정을 대비하여 변화를 얼마나 만드는가를 조사하여 발표한 것을 보면 안다. 결론은 독자가 내리는 것이다. 동네 술자리에서 벌어진 정치 이야기지만 보통 사람들도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다.
2012.03.02 10:40 | ⓒ 2012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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