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하는 아내에게 "밥 주세요"

[인서체육아일기5] 무심한 남편이 왜 보고싶었을까

등록 2012.03.03 14:28수정 2012.03.0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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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큰 아이. 예정일보다 약 보름 정도 빨리 태어났습니다. ⓒ 김동수


첫 아이 출산 예정일은 5월 30일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성격이 급했던 모양입니다. 보름이나 먼저 나왔기 때문입니다. 아빠와 엄마는 성격이 급한 편이 아닌데 말입니다.


통영시 연합예배때부터 아랫배가 아파왔고, 자정쯤부터 진통이 시작됐다. 약 30분 간격으로 이어졌다. 4시 이후부터는 7분 간격이었다. 09시 30분 '00병원 도착', 10시 00분 분만대기실 들어감, 12시 17분 출산. 체중은 3.3kg, 키 49cm, 머리둘레 32cm,가슴둘레 32cm,혈액형 A형-5월 14일

아내는 아이 출산에 관해서만 간단히 적었지만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이 4시 30분이라 3시 50분쯤에 일어납니다. 진통이 시작된 아내를 교회 가자며 일으켰습니다.

진통하는 아내에게 "밥 주세요."

"새벽예배 시간 다 되었어요."
"진통이 시작된 것 같아요."
"아직 예정일 보름 정도 남았잖아요."
"예정일은 보름 정도 남았지만 빨리 나올 수 있어요."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요."

진통이 시작된 아내를 보면 빨리 병원에 데려갈 생각은 하지 않고, 새벽기도 가자며 타박했습니다. 아내도 첫 아이라 그런지 진통이 정말 출산을 위한 것인지 의심하는 눈치였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 전화를 했습니다.


"사모님 집사람이 진통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뭐 하세요. 빨리 병원에 가야지."
"집사람이 '가진통'이라고 하는데요."
"가진통은 무슨, 그런 것 생각하지 말고. 빨리 병원가세요."

하지만 배 고프다며 밥까지 해 달라고 했습니다. 더 대단한 것은 진통을 하면서도 아내는 아침밥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집에서 안 쫓겨난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병원에 갔습니다.


밤새 진통했는데도 쳐다보지 않고, 아침밥 해달라고 한 남편이 무엇이 좋다고 아내는 제가 보이지 않으면 찾았습니다. 옆에 꼭 붙어 있기를 바랐습니다. 1998년만 해도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저를 1분 만이라도 있게 해달라며 간호사에게 애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밥 해 달라는 남편이 보고 싶다는 아내

"남편이 정말 보고 싶어요."
"아무리 남편이라도 분만실에는 들어올 수 없어요."
"제발 1분이라도 옆에 있게 해주세요."
"안 된다고 했잖아요."
"보고싶단 말이에요."

"…"

아내 정성이 갸륵했는지 간호사는 1분 정도 시간을 주었습니다.

"힘들지 않아요."
"괜찮아요. 당신이 옆에 있으니까. 정말 좋아요."

"아침밥 해달라는 남편이 그렇게 좋아요."
"그냥 좋아요. 당신이 옆에 없으니까. 불안하고, 겁나요."

"조금만 더 힘내세요. 곧 아기를 낳는다고 했으니."

눈물을 흘리는 아내를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나 같은 사람이 무엇이 좋다고. 아내 손을 꼭 잡아주고 다시 나왔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진통끝에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생명이 이렇게 귀한 줄 미처 몰랐습니다. 경이로운 생명 탄생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하룻밤만 자면 남편과 한 달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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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댁에서 산후조리를 한 아내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했고, 울먹였습니다. ⓒ 김동수


아내는 출산 다음 날에도 육아일기를 썼습니다. 남편이 보고 싶어 울었다고 했지만 일기에는 적지 않았습니다.

"사천 큰 댁으로 귀가. 2시간마다 영헌에게 우유를 먹였다. 잠을 잘 잤다. 좁쌀 크기의 녹색변을 누었다." - 5월 15일(금)

나 역시 열 달을 하루 종일 같이 있다가 하루 떨어져 있었는데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마음이 '허'했습니다. 전화만 아니라 편지를 하루가 멀다하고 썼습니다. 17일 썼던 편지글입니다.

'경' 보구려

새벽 여명, 당신의 복통이 산통인줄도 모르고 새벽기도 가자, 아침밥을 해달라는 인생이 글을 씁니다. 아마 평생 당신의 마음에 남을 날이었습니다. 생명의 탄생은 신비한 것이며, 거룩함을 새삼 느끼는 한 주간이었소. 생명은 무엇일까요?12시간 동안 당신이 구로를 경험하면서 왜 우리가 생명을 거룩하다, 존귀하다, 존엄하다 하는 알았습니다. 생명은 비천하지 않으며, 비천한 자가 있을 수 없음을, 어느 누구도 해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자는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며, 그 거역의 대가는 자신이 지는 것입니다. 사적인 이익을 넘어 나라와 민족이라는 대의명분하에서 벌어지는 온갖 전쟁까지 거역의 행위임을 알았습니다. 생명을 이익의 도구로 포장하는 거역의 시대가 일어서는 안 될 것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생명을 낳은 오늘 당신의 모습은 레바논의 백향목보다 더 고운 자태였습니다. 이 상상할 때 당신이 먼저를 나를 안았습니다.

이 아이가 몸으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지혜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영헌이가 사랑에게 결핍 된 아이로 자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영헌이가 지혜가 부족한 아이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오. 영헌이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며, 부모를 사랑하며, 疏外된 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를 이를 위해 부모의 참 모습을 보여 주도록 노력합시다.

자고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를 드러내는 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옳다고 하는 자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머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은 찌꺼기라 노자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세속은 자기 자랑에 바쁩니다. 자기가 드러나지 않으면 당장 죽을 것 같습니다. 뽐내지 않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이 막막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거꾸로 가는 세속입니다. 이것을 거역하고 가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막상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학문을 배울 때 시험 점수 때문에 아이를 닦달할 것입니다. 참 어렵습니다. 잠심(潛心)이라 했습니다. 앞에 말을 두고 깊은 생각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보 먹고 싶으면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어머니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사랑을 고부간에 나누도록 해요. 사랑은 나누면서 깊어지리라 믿습니다. 자신을 보여주어 상대를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알 때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 드리는 자세가 필요함을 한 달 간의 몸조리를 통하여 고부간의 참 모습을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당신이 힘들지만 어머니를 먼저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어느 누가 진통이 오는데 남편을 위하여 아침상을 차린다 말이오. 바로 이것이 나와 당신의 사랑의 차이오. 내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사랑을 당신은 나에 베풀어 주었소. 여보, 사랑하오. 말로서도 해야만 당신의 사랑에 백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음을 알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오.

그렇게 경험하기를 원했던 거룩한 탄생의 신비, 인간의 이성과 의학으로는 사실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거룩한 생명의 탄생의 신비를 보면서 그 생명을 존엄하게 지켜주어야 함을 확신했습니다.

영원한 당신의 몸이. 당신의 그 남편이

 1998년 5월 17일
#육아일기 #진통 #아내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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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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