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의 야권 연대가 마지막 고비를 넘겼다. 주말 사이에 치른 후보 단일화를 위한 경선에서 민주통합당이 57곳, 진보통합당이 11곳에서 승리하면서 서로가 원하던 '보기 좋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민주통합당에서는 정동영, 정세균 후보를 비롯해 당을 대표하는 얼굴들이 무난히 승리한 데 이어 고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아내 인재근 후보와 이학영 후보 등 상징성이 큰 전략 공천 후보들이 승리했고, 통합진보당에서는 이정희·심상정 공동 대표와 더불어 노회찬·천호선 대변인 등 앞으로 당을 이끌어야 할 핵심 인물들이 단일 후보로 뽑혔다. 민주통합당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통합진보당에게도 힘을 실어주는 결과라 하겠다.
이것으로 선거를 치르기 위한 연대는 마무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연대의 목적은 선거에 있지 않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힘을 모아 국민들 앞에 약속한 정책과 입법 과제들을 이뤄내는 것이 연대의 진정한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이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의 힘의 균형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른바 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 사이 힘의 황금비를 찾는 일이다.
개혁과 진보가 충돌하던 참여정부 시절
지금 이 순간, 두 당이 이명박 정부에 맞서 야권 연대라는 이름 아래 모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연대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이야 서로의 차이를 모른 척 하거나 허물을 덮어주기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선거를 앞두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선거가 끝나면 서로의 차이는 다시 곳곳에서 드러날 것이고, 어쩌면 지난 허물을 들춰내며 싸우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되풀이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점에서 어렵게 이룬 야권 연대가 선거 뒤에도 오래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일은 두 당 사이의 힘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 하겠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개혁'과 '진보'라는 서로 다른 두 톱니바퀴가 서로 어긋나지 않고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도록 둘 사이의 황금비를 맞추는 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개혁'과 '진보' 사이 힘의 균형이 깨져있던 참여정부 시절을 반면교사로 삼아볼 만하다. 잠시 시간을 거슬러 5년 전 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가 보자. 지난 15일에 발효된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 2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특별 담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작은 장사꾼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와 중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의 변화까지 미리 내다보는 큰 장사꾼의 안목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습니다. 협상의 결과로서 우리는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시장에서 자동차, 섬유, 전자 등 우리의 주력 수출 상품은 물론, 신발, 고무, 가죽과 같은 중소기업 제품들도 경쟁 국가들에 비해 가격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참여정부는 개혁 정권의 한계에서 벗어나있지 못했다. 그는 담화의 끝에 "줏대도 없고 애국심도 자존심도 없는 그런 정부는 아니"라며 확신에 차서 말하기도 했지만, 그로부터 1년이 조금 지난 2008년 11월, 돌연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자연인으로 돌아간 뒤였다.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습니다. 우리 경제와 금융 제도 전반에 관한 점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 고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고쳐야 할 것입니다."
그의 생각이 알려진 뒤 당시 진보신당의 공동대표였던 심상정은 공개 편지 형식을 빌어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이 나라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길"이었음을 고백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한미FTA가 옳은 길이었다고 믿었다.
사실 참여정부 시절 내내, 개혁 세력과 진보 세력은 끊임없이 충돌했다. 경제의 금융화와 세계화가 정점으로 치닫던 그 시절, 참여정부가 세상을 지배하던 자본 권력과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참여정부가 추진한 거대 경제권과의 FTA와 동북아 금융 허브 전략 등은 모두 삼성이 내놓았다는 의혹이 있다. 그렇게 개혁 세력이 자본 권력에 끌려가는 사이 진보 세력의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우리 사회의 균형도 무너지고 말았다. 1:99의 사회는 이미 이때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만일 그때 참여정부가 진보 세력의 우려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였다면 어땠을까. 만일 금융 자본주의의 위험을 조금 더 일찍 알아채고 정부가 나서 '돈이 일하는 경제(money working economy)'에 올라타라고 부추기지 않았다면, 어쩌면 '빚과 투기'의 시대가 열리는 것도, 그리하여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는 것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오해는 말기 바란다. 진보 세력이 모두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진보 세력에게는 한미FTA를 대신할 만한 대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진보 세력은 한미FTA를 체결하지 않는 것이 대안이라거나, 우리나라와 경제 규모가 비슷한 나라들과 FTA를 우선 체결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했지만, 국민들을 설득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어쩌면 당시 진보 세력은 대안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진보 세력에게 국민들은 실망했고, 그래서 참여정부에게 등을 돌린 뒤 진보 세력에게는 더더욱 곁을 주지 않았다.
99%의 반란을 위한 개혁과 진보의 균형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륙의 작은 나라 튀니지에서 일어난 '쟈스민 혁명'의 향기는 중앙아시아로 퍼져나갔고, 세계 금융 자본의 심장인 월가에서 타오른 'Occupy Wallstreet'의 불길은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바야흐로 전 세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곳 대한민국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은 거세다. 사법 권력과 언론 권력 그리고 경제 권력을 허물어뜨리려는 99%의 반란을 우리는 곳곳에서 마주하고 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할 개혁과 진보 두 세력이 황금비를 이루며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이유다.
개혁은 다수의 합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다수의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소수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도 뚜렷하다. 사회 갈등을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함으로써 사회화 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갈등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는 것이 정당의 역할이라고 했을 때, 소외된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정당도 마땅히 존재해야만 한다. 바로 그것이 진보 정당의 몫이다.
노동자, 그 가운데서도 비정규 노동자, 도시 빈민과 자영업인, 농민, 성 소수자와 장애인 등 오랜 세월 다수의 합의로부터 소외돼온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이만큼이나마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진보 정당이 이들의 곁을 묵묵히 지켜왔기 때문이었다. 또한 비록 지금은 근본도 알 수 없는 아류들이 판을 치는 통에 저작권을 잃었지만 '보편적 복지' 역시 진보 정당이 줄기차게 외쳐온 의제였다.
그런 점에서 변화의 계절을 맞은 2012년 대한민국에서 통합진보당을 비롯한 진보 세력에 대한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진보 세력이 더 이상 우리 사회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게 한쪽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균형추의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때로는 세상의 흐름을 내다보며 변화의 고삐를 바짝 당기는 역할도 해내야 한다. 진보 정당이 오랫동안 꿈꿔온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석 이상의 의석을 얻어 원내 교섭단체가 되면 무엇보다도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담에 참석해 주요 의안과 의사일정을 정할 수 있게 되는 등 국회 운영의 실질 주체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이는 오랜 세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지배해온 국회의 독과점 구조가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의 더 많은 목소리, 더 많은 의제가 국회에서 다뤄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 만큼 대한민국 국회가 넓어지고 평등해지는 것이다.
덧붙여, 교섭단체가 되면 혜택이 크게 늘어난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장 국고보조금의 50%를 교섭단체들끼리만 나눠가지도록 돼있으며, 정책입법에 필수적인 정책연구위원을 국고보조로 둘 수 있다. 이는 처음부터 구조가 교섭단체에게만 유리하도록 짜였다는 점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교섭단체가 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노력한들 기존 정당과의 정책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진보 세력의 한계로 지적돼온 정책 역량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교섭단체 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올해 우리는 처음으로 전국 규모에서 야권 연대를 실현해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이미 2004년 17대 총선부터 1인 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실시해오고 있기도 하다. 다시 없을지 모를 좋은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번 선거에서 우리 시대가 바라는 개혁과 진보의 황금비가 무엇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들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지금부터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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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전북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 혁명>(2023),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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