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자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 회원과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20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파괴되는 강정 구럼비 발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권우성
해군이 몸집 부풀리기 욕심을 버리고 정부·여당이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 공세용 소재로 삼으려는 정략적 의도를 내려놓는다면, 대안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15년까지 확장될 예정인 제주항 해경전용부두나 화순항에 건설될 예정인 해경전용부두를 해군이 '기항지'로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이는 국가안보상의 필요를 충족시키면서도 파국으로 치닫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윈-윈'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07년 12월 국회가 관련 예산을 통과시킬 때, '민항 위주의 해군 기항지'로 부대조건을 제시했던 만큼 당초의 취지도 살릴 수 있다.
2010년 12월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국가관리항에 포함된 화순항에는 남방해역에 대한 해상안보와 치안 유지 강화를 목적으로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해경전용부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또한 제주항 동쪽에도 73m 규모의 대형 해경부두를 2015년까지 짓기로 했다. 제주항에는 소규모의 해군 부대도 있다. 제주해군기지의 대안으로 이들 두 곳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모두를 해군도 기항지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해보자는 것이다.
이처럼 해경전용부두를 해군 함정의 기항지로도 겸용하는 방안은 여러 가지 현실적인 장점이 있을 수 있다. 우선 해군의 요구를 100%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이어도 등 남방 해역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해군의 대기 및 상황 발생시 신속한 투입이 가능해져 해군의 요구를 일부 충족시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강조하고 나설 정도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가장 큰 근거는 "해군 주력 함대가 있는 부산에서 23시간이 걸려 가야하는 이어도 해역까지 제주해군기지에서는 8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기실 이 대통령도 강조한 것처럼,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해군이 상륙해 점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주변국들과 마치 함정 경주 시합이라도 할 것처럼 시차를 강조하면서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또한 한국 해군의 대형 함정들의 해상 작전 기간이 30일을 넘나든다는 것도 중요하다. 최대 함정인 독도함은 40일, KDX-3는 30일, 209급 잠수함은 50일을 보급 없이도 버틸 수 있다. 즉 이어도 등 남방 해역에서 군사 분쟁이 발생할 조짐이 보인다면, 이들 함정을 우리 영해나 공해에서 대기시키다가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군 함정의 신속한 투입이 필요하다면, 위에서 언급한 '기항지'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화순항을 기항지로 사용하면 강정마을에서보다 빨리 이어도에 도달할 수 있고, 제주항을 사용하더라도 10시간 정도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해경부두의 규모를 볼 때, 독도함이나 KDX-3 등 대형 함정의 정박은 어렵더라도 KDX-1급 구축함은 정박이 가능하다. 필요하다면 대형 함정은 해상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백업 라인을 형성할 수 있다.
해경과 해군의 공조는 높이고 혈세는 크게 줄이고 '기항지'의 장점은 또 있다. 남방 해역 보호를 위한 해경과 해군의 공조를 강화하면서도 국가 예산은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해군이 주장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의 핵심적인 목적은 남방 해역 안전과 해저 자원 및 해양수송로 보호다. 그런데 이는 해경의 임무와 중복된다. 해경 역시 이러한 임무를 위해 제주항 및 화순항에 해경전용부두를 만들고 제주지방해양경찰청을 신설해 대응 능력을 높일 방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해경전용부두를 해군 기항지로 겸용하는 방안은 임무의 중복 문제를 해소하고, 유사시 해경과 해군의 원활한 협조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산 절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국방부는 앞으로 5년간 6조5천억 원을 투입해 '이어도-독도 함대'를 창설하고 제주해군기지를 모항으로 쓰겠다는 입장이다. 함대가 창설되면 연간 운영유지비도 수백 억 원에 달할 것이다.
반면 해경 부두 건설비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포함한 이어도-독도 함대 비용의 수백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기항지로의 발상의 전환으로 6조 원 이상의 혈세를 아낄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취소하더라도 케이슨과 트라이포드(일명 삼발이) 등 구조물과 자재를 재활용할 수 있어, 이미 투입된 건설비도 일부 회수할 수 있다.
이미 강정마을은 세계 평화운동의 성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