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 '윗선'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 불법사찰이라는 용어는 현정부를 음해하기 위한 음모이고 정치공작이다"며 반박하고 있다.
유성호
갑작스러운 기자회견이었다.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그동안 언론과 전혀 접촉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수차례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말을 하지 않다가 그냥 전화를 끊곤 했다.
그랬던 이 전 비서관이 20일 공개석상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나섰다. 이날 처음으로 기자와 연락이 닿았다. 기자회견 사실을 전하는 그에게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지시 의혹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짧막한 대답만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기자회견 때 물어보라."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정작 기자회견 때에는 자신이 준비한 발언자료만 읽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았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충분한 해명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내 얘기만 들어라"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누군가 "이명박 대통령과 똑같다"고 수군거렸다. 기자들이 택시를 타려는 그를 끝까지 쫓아가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자료삭제 지시"... 청와대가 증거인멸 주도했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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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호 "자료 삭제 지시 했다.. 내가 몸통" ⓒ 최인성
'호통 기자회견'이라는 비아냥거림에도 이 전 비서관의 기자회견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가 "자료삭제를 지시했다"고 인정한 대목이다. 이는 지난 2010년 8월 검찰 특별수사팀이 그를 상대로 8시간 동안 조사했지만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다.
이 전 비서관은 "KB한마음 사건이 발생한 후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고 최종석 행정관에게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있는 내용을 철저히 삭제하라고 지시했다"고 '실토'했다.
이 전 비서관은 직제상으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과 아무 관련이 없다. 직제상 지원관실의 보고라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실(공직기강비서관)이다. 노사관계 등을 다루는 그의 업무도 '공직사회 기강 확립'을 위해 설치된 지원관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그는 지원관실에 '자료삭제'를 지시했다.
"자료삭제를 지시했다"는 이 전 비서관의 '양심고백'(?)은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 증거인멸 과정에 개입한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도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증거인멸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자료삭제 지시'를 인정했으면서도 '증거인멸 지시' 의혹은 부인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 전 비서관이 내놓은 자료삭제 지시의 이유도 가관이다. 그는 "그 하드디스크 안에 감추어야 할 불법자료가 있어서 삭제를 지시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이런 해명을 내놓았다.
"저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어떤 자료가 저장되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혹시 하드디스크에 공무원 감찰에 관한 정부부처의 중요자료를 비롯하여 개인신상 정보가 들어 있어서 외부에 유출될 경우 국정혼란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의 중요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어 악의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 책임하에 자료삭제를 지시하였던 것입니다."직제상으로나 업무상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과 거리가 먼 이 전 비서관이 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자료의 외부유출을 걱정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오히려 그가 지원관실과 아주 가까운 관계였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이 전 비서관은 공직윤리관실의 설치와 운영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지원관실 직원들을 선발하는 데 직접 면접을 보고, 워크숍과 야유회, 회식 때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원관실의 관용차를 자주 이용했다.
게다가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작성하는 각종 보고서를 비선으로 보고받았고, 지원관실의 특수활동비 가운데 280만 원을 매달 전달받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 전 비서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80만 원 청와대 상납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주장"이라고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청와대 비서관이 왜 지원관실 직원에게 돈 건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