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선대위원들이 21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19대 총선 중앙선대위 발대식 및 공천장 수여식에서 선전을 다짐하며 박수치고 있다.
남소연
21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19대 총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발대식 자리. 총선공약 소개용 스마트폰 어플을 안내하는 시간에 한 참석자가 이렇게 외쳤다.
"빨리 공천장이나 줘요!"
빨리 공천장을 받아들고 출마 지역으로 가서 한 표를 호소하는 활동을 해야 하는데, 다른 순서로 시간을 끄니 공천자들은 조바심을 낼 만도 했다. 어서 공천장을 받아들고 공천확정을 실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시각 누구보다도 "빨리 공천장이나 줘요!"를 외치고 싶었던 이들은 이만우 고려대 교수와 이봉화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장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10번과 15번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 안정권에 들어 있었지만, 이날 오전 비대위가 두 사람에 대한 재의를 공천위에 요구했고, 선대위 출범식이 열리는 동안 공천위는 이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결국 이만우 교수는 그대로 공천하는 것으로, 이봉화 원장은 공천을 취소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공천을 받은 이들이 축하를 받으며 승리를 다짐하는 행사가 진행되는 반대쪽에서 공천을 취소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진 것.
이례적인 5번의 공천취소... 박근혜의 '시스템공천'은 립 서비스?이런 일이 일어난 데에는 애초 공천심사가 부실했던 데에 원인이 있다. 이 원장의 공천취소는 사실상 다섯번째 공천 취소다. 새누리당은 서울 강남 공천을 받았던 이영조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와 박상일 한국벤처기업협회 부회장의 역사관 논란이 일자 서둘러 공천을 취소했다.
기자에게 거액을 준 정황이 제기된 손동진 동국대 교수와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석호익 후보는 공천을 자진 반납했지만, 공천위가 공천 취소로 방향을 잡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공천 취소로 봐도 무방하다.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전신 한나라당은 동생이 금품 살포 혐의로 구속된 현명관 제주도지사 후보 공천을 취소했다. 뇌물수수 등 비리혐의가 드러난 민종기 당진군수와 권영택 영양군수의 공천도 취소한 적이 있다.
지방선거의 경우 후보자의 수가 총선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각 광역단위 시·도당이 공천심사를 진행한 부분이 커서 그렇다 치더라도 300명이 안되는 공천자들을 결정하는 총선 공천에서 이같이 허술한 공천과 이에 따른 공천 취소 사태가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앞선 4명의 공천 낙마 인사들의 경우, 후보 자격이 의심되는 발언과 행동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가 공천 뒤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경우이지만, 상당수 국민이 '쌀 직불금을 받은 공직자'로 알고 있는 이봉화 원장을 공천한 것은 공천위가 어떤 변명을 해도 통하지 않는 문제다. 결국 한 공천위원의 입에서 "이봉화 공천은 청와대의 명단에 따른 것"이라는 변명이 나왔지만, 결국 공천 결정은 공천위가 한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비대위와 공천위가 공천 실책에 대한 비판에 발빠른 움직임을 보인 것은 새누리당이 과거 한나라당과는 달라진 모습이기도 하다. 과거 총선에선 공천내용에 대한 비판, 특히 도덕성이나 역사관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에 이같이 민첩하게 반응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이은 공천 취소 사태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번 총선 공천을 '시스템 공천' '도덕성 최우선 공천'이라고 강조해온 것이 '립 서비스'에 불과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특히 각 언론의 공천자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친이계 대거 탈락과 친박계 우대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어서, 박 위원장이 '이번 공천은 시스템 공천이었다'고 계속 주장하려면 '시스템 공천이긴 한데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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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장' 주는 날 공천 취소... 이게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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