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다, 이정희...이젠 박근혜 차례다

[게릴라칼럼] 정치판에 파장 남긴 '문자메시지 파동'... 이게 끝이 아니다

등록 2012.03.24 19:11수정 2012.03.24 19:11
0
원고료로 응원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2012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a

23일 서울 관악을 야권연대 경선 여론조사 조작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선 후보직에서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눈물을 꾹 참고 있다. ⓒ 남소연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결국 사퇴했다. 관악을 경선 여론조사 조작 문자메시지 사건이 터진 지 만 3일만이다.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민주노동당 대표를 맡아 이끌면서 이번 총선정국에서는 통합진보당으로 야권연대까지 성사시키는 등 이정희는 명실상부한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그런 만큼 이번 문자메시지 파동과 후보사퇴는 총선판세와 향후 정치판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길 것 같다.

이번 '문자메시지 파동'이 처음 불거졌을 때 "결국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을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진보정당 내부의 정파 혹은 정파주의 문제는 사실 오래 전부터 잠복해 있었다. 기존의 낡은 정치구도를 혁파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고 하면서도 당권을 잡기 위해 혹은 세를 늘리기 위해 보수 정치판에서나 볼 수 있었던 퇴행적 행태를 버리지 못한 업보가 오늘의 부메랑이 된 셈이다.

'진보의 아이콘' 가볍게 본 통합진보당... 그리고 치졸한 민주당

물론 그 정도 수준의 여론조작이나 문자메시지는 지금의 여당·야당 가릴 것 없이 비일비재한 게 문제지만, 아무리 "서로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해도 그런 악습까지 닮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가 자체적으로 해결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가장 중요한 선거의, 가장 상징적인 지역구에서, 가장 중요한 후보에게 터졌으니 통합진보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정희가 사퇴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이 난망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정희의 후보직과 바꾼 악습을 다시 되풀이 할 바보는 없을 테니까. 진작 호미로도 막을 수 있었던 일을 이제는 '진보의 아이콘'으로도 못 막는 사태가 돼 버렸으니 지켜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이정희의 사퇴가 좀 더 빨랐더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는다. 민심은 무섭다. 사람들은 이미 이정희 사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음에도 그런 민심의 흐름을 읽지 못한 당 지도부의 안일함도 딱하다. 관악을의 이정희는 이미 지역구 한 석의 의미를 넘어서는 존재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정당투표를 한다. 그를 보고 야권단일후보를 찍는다. 통합진보당 스스로가 오히려 '진보의 아이콘'의 무게감을 가벼이 본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그 때문이다.

한편 이런 '천재일우'를 놓칠세라 백혜련 카드로 이정희를 압박한 민주통합당의 치졸함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절대명령인 야권연대 파트너가 어려움에 부딪혔는데 이것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할 기회로 보고 자신의 경선패배지역(그래봐야 겨우 7곳)을 압박의 카드로 내민 것은 민주통합당이 정말로 정권교체를 이룰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지 그 진정성을 심히 의심하게 만든다. 안 그래도 미덥지 못한 민주당 지도부의 지도력은 내부의 잡음을 연대의 파트너를 재물삼아 해소하려는 수준밖에 안 되나 싶어 측은하기까지 하다. 힘없는 야당 도와달라고 국민 앞에 무릎 꿇던 시절은 벌써 잊은 듯하다.

이런 수준의 지도력으로는 설령 야권연대가 과반의석을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개혁적인 과제들을 얼마나 원칙적이고 효율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다시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잇속만 챙기려고 배신의 칼을 등에 꽂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이정희의 사퇴로 내부갈등이 봉합되고 야권연대가 다시 탄력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통합당은 이번 사태를 자기성찰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선거법 위반하고도 꿈쩍않는 새누리당...왜 보수에겐 무뎌졌을까

a

13일 부산 사상구에 출마한 손수조 후보 지원에 나선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손 후보와 함께 차량에 올라 거리에 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 남소연


이정희의 사퇴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유산을 남겼다. 이번 관악을 사태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내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단어는 '사퇴'였다. 그와 동시에 "왜 우리는 진보에게 더 엄격하고 더 가혹한가?"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새누리당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경우이다. 그는 지난 13일 부산 사상구를 방문했다가 손수조 후보와 함께 '카퍼레이드 캠페인'을 벌여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현행 선거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자동차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91조3항).' 이에 대해 선관위는 "명백한 위반이 되기 위해서는 계획성, 목적성, 능동성, 목표를 위한 행위가 포함돼 있어야 하는데 좀 부족한 것 같다"는 해석을 내렸고, 이제는 아무도 박근혜-손수조의 선거법 위반 여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한 말이 선거법 위반에 걸려 탄핵까지 당했던 우리네 '미풍양속'에 비춰보면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손수조 후보는 엄청난 횡재를 했음이 분명하다.

본인의 선거법 위반 논란에 대해 선관위까지 나서서 보호막을 쳐주는 박근혜에 비하면 보좌관의 여론조작행위 때문에 본인의 후보직을 내놓은 이정희 입장에서는 분명 억울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

문자메시지 파동을 듣자마자 이정희의 '사퇴'를 떠올렸으면서도 박근혜의 카퍼레이드 소식을 들었을 땐 결국 어물쩍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재벌총수들이 죄를 지으면 우리는 당연히 그분들이 실형을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이 사실을 왜곡해서 보도하면 그러려니라 여기며, '차떼기당'이 여전히 지금도 돈 봉투를 돌리거나 '전과 14범'의 대통령이 내곡동 문제를 일으켜도 (몇차례 문제제기에도 꿈쩍 않는 당사자들을 보며)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까 하고 결국 넘어간다. 

보수는 '원래 그런 사람들'? 복종심의 다른 표현일 뿐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 아니었어?"

MB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서 '원래 그런 사람'에 편승해 집값이라도 챙겨보자는 소박한 마음에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물론 이러한 너그러움에는 역사가 있고 이유가 있다. 비굴함을 가르쳐야 했던 오랜 역사가 있고 입바른 소리하다가 된통 보복당한 사연이 있고 한두 번 정권을 바꾸어도 뿌리 뽑히지 않는 그 끈질긴 생명력을 보아 왔다. 어떻게 해도 안 된다는 무력감과 조금 더 쉽게 살고 싶은 유혹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힘있는 자에 대한 복종심을 키워왔고 그 부당한 지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했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는, 핀잔과 냉소를 가장한 너그러움은 우리의 나약함과 복종심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원래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반대세력에게 너그러움이나 자비와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왔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나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혹은 최근에 불거진 청와대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경우만 보더라도 "원래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없는 죄도 만들어냈고 국세청과 검찰과 경찰과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을 총동원할만큼 집요하고 악착스러웠다. 이제는 죄를 짓고도 생중계 기자회견에서 오히려 크게 호통치는 담대한 기개까지 덤으로 생겼다.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프레임을 만들고 의미 없는 논란만 증식시킬 뿐이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란 애초에 없다. 그게 누구이든 반칙과 편법에는 그에 상응하는 응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정희 #이정희 사퇴 #관악을 #야권연대 #총선 #통합진보당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In Tenebris Lux 어둠 속에 빛이

이 기자의 최신기사 윤석열 최악의 시나리오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4. 4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5. 5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 어머어마하구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