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반찬으로 딱! 쪽파 한 박스에 2만 원

베트남 새댁 람풍씨 쪽파 농사 풍년... 문제는 판로와 가격

등록 2012.03.28 18:55수정 2012.03.2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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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 입맛을 돋구는 쪽파 김치
봄 입맛을 돋구는 쪽파 김치성락

 깨끗하고 싱싱합니다
깨끗하고 싱싱합니다성락

"형님! 쪽파 김치가 맛있다던데, 한 번 담가 보실래요?"
"갑자기 웬 쪽파 김치는? 그리고 요즘 쪽파값이 얼마나 비싼데... 에이, 식당에서는 타산이 맞지 않아."
"이거 한 박스면 되겠수? 10kg인데 쪽파가 아주 깨끗하고 좋아. 2만 원만 내슈."


대답도 다 하기 전에 이웃에 사는 후배 황인식씨가 트럭에서 꽤 묵직해 보이는 박스를 가게 앞에 내려놓는다. 덜 아물어진 박스 덮개 사이로 파란 쪽파가 보인다. 얼핏 보기에도 싱싱하고 깨끗하다.

"그런데, 이게 2만 원 맞아?"
"아! 그렇다니까요. 아마 무게도 10kg이 훨씬 더 나갈거유."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후배 황씨는 평소 다문화 가족으로 형제처럼 가깝게 지내는 마을 선배 장정현씨의 하우스에서 일을 거들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것이다. 장씨의 하우스 4동에서 쪽파를 수확해 가락시장으로 올렸는데, 가격이 형편없이 나왔다는 것. 인건비 때문에 일일이 단을 묶지 않고 박스 포장만 했더니, 그나마 가격이 더 안 나와 종잣값이나 건질지 모르겠다며 한숨짓는 선배 내외가 판매를 거들겠다고 나섰다는 것이다.

사실 조바심은 장정현씨 보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아내 판티 람풍씨(26·한국이름 이수경)가 더 크다. 남편은 몇 년 전 비닐하우스 보수를 하다 떨어져 척추를 크게 다친 후, 트랙터나 트럭을 가지고 하는 작업 외 하우스 일은 거의 손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쪽파농사는 그녀의 몫이었다.

지난해 전염병으로 수확 직전 피망 뽑고, 쪽파 심어


 쪽파를 수확중인 람풍씨
쪽파를 수확중인 람풍씨성락

지난해 갑작스러운 전염병으로 하우스 4동(약 1200평)에 재배하던 피망을 수확 직전 모두 뽑아버린 후 "이대로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쪽파를 심자고 우긴 것도 아내 람풍씨였다. 종자 대만도 70여만 원이 투자됐다. 쪽파는 잘 자랐다. 람풍씨의 정성과 기대가 반영된 탓이다. 피망을 뽑은 자리에 그냥 쪽파를 심은 탓에 마른 피망 잎이 쪽파 밑둥에 걸려 수확 후 다듬기가 더딘 것이 흠일 뿐 싱싱하고 탐스러운 쪽파는 누가 보아도 최상품이다.

문제는 가격. 첫 수확 후 가락시장으로 보낸 쪽파 가격이 10kg 박스당 1만2천 원에 불과했다. 이 가격이면 종잣대와 인건비를 겨우 건지는 정도. 한 해 겨울 쏟아 부은 노력의 대가는 어디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람풍씨와 같은 베트남 아내와 결혼한 황인식씨가 보다 못해 나섰다. 운임 부담이 적은 인근 원주 농산물 시장에 의뢰해보니, 단으로 묶어 출하할 경우 가락시장보다는 박스당 4천 원 가량 더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만족하지 않은 가격. 지인들을 동원해 원주 지역 마트 등에 직접 출하하는 방안을 모색해 적은 양이지만 나은 가격에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직거래 경우 박스당 2만 원을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웃들에게도 소문이 퍼져 나가 심심찮게 팔려나갔다. 사실 시장에서 사는 쪽파에 비하면 품질도 최상품이지만 가격이 30% 정도에 불과하니, 서로에게 이익이었다. 마을 중심 지점이고, 비교적 주민 왕래가 잦은 이곳 휴게소(식당, 편의점)가 자연스레 직거래 장소가 됐다. 아침에도 람풍씨가 쪽파 박스를 트럭에 싣고 왔다. 윗동네 아무개씨가 오면 전해주라는 것. 늘 밝고 긍정적인 람풍씨지만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잠시 짬을 내어 람풍씨 하우스에 가 보았다. 2동에는 아직도 쪽파가 그대로 있다. 직거래로 다 팔 수만 있다면 겨울 농사로 다소의 소득을 얻겠지만, 주변과 지인들을 통한 판매는 곧 한계가 닥칠 것이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는 람풍씨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그래도 많이 팔았어요. 이웃에서 다들 도와주셔서 좋아요. 고맙습니다."

 아직 수확하지 못한 쪽파
아직 수확하지 못한 쪽파성락

 마음은 항상 부자인 람풍씨
마음은 항상 부자인 람풍씨성락

며칠 전 황인식씨가 가져온 쪽파로 담근 김치를 오늘 손님상에 내놓았다. 예상대로 손님들 반응이 좋다. 데쳐서 초장과 곁들여 먹는 쪽파도 봄 반찬으로 그만이다. 덕분에 반찬메뉴 걱정 하나는 던 셈이다. 람풍씨의 남은 근심도 봄바람과 함께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쪽파 #직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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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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