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를 수확중인 람풍씨
성락
지난해 갑작스러운 전염병으로 하우스 4동(약 1200평)에 재배하던 피망을 수확 직전 모두 뽑아버린 후 "이대로 농사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쪽파를 심자고 우긴 것도 아내 람풍씨였다. 종자 대만도 70여만 원이 투자됐다. 쪽파는 잘 자랐다. 람풍씨의 정성과 기대가 반영된 탓이다. 피망을 뽑은 자리에 그냥 쪽파를 심은 탓에 마른 피망 잎이 쪽파 밑둥에 걸려 수확 후 다듬기가 더딘 것이 흠일 뿐 싱싱하고 탐스러운 쪽파는 누가 보아도 최상품이다.
문제는 가격. 첫 수확 후 가락시장으로 보낸 쪽파 가격이 10kg 박스당 1만2천 원에 불과했다. 이 가격이면 종잣대와 인건비를 겨우 건지는 정도. 한 해 겨울 쏟아 부은 노력의 대가는 어디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람풍씨와 같은 베트남 아내와 결혼한 황인식씨가 보다 못해 나섰다. 운임 부담이 적은 인근 원주 농산물 시장에 의뢰해보니, 단으로 묶어 출하할 경우 가락시장보다는 박스당 4천 원 가량 더 받을 수도 있지만, 이 역시 만족하지 않은 가격. 지인들을 동원해 원주 지역 마트 등에 직접 출하하는 방안을 모색해 적은 양이지만 나은 가격에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직거래 경우 박스당 2만 원을 받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웃들에게도 소문이 퍼져 나가 심심찮게 팔려나갔다. 사실 시장에서 사는 쪽파에 비하면 품질도 최상품이지만 가격이 30% 정도에 불과하니, 서로에게 이익이었다. 마을 중심 지점이고, 비교적 주민 왕래가 잦은 이곳 휴게소(식당, 편의점)가 자연스레 직거래 장소가 됐다. 아침에도 람풍씨가 쪽파 박스를 트럭에 싣고 왔다. 윗동네 아무개씨가 오면 전해주라는 것. 늘 밝고 긍정적인 람풍씨지만 유난히 발걸음이 가볍다.
잠시 짬을 내어 람풍씨 하우스에 가 보았다. 2동에는 아직도 쪽파가 그대로 있다. 직거래로 다 팔 수만 있다면 겨울 농사로 다소의 소득을 얻겠지만, 주변과 지인들을 통한 판매는 곧 한계가 닥칠 것이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는 람풍씨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그래도 많이 팔았어요. 이웃에서 다들 도와주셔서 좋아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