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청부살인' 혐의 CJ그룹 전 간부 무죄 확정

대여금 80억 원 못 받자 청부살해 하게 하고, 범인도피 혐의 모두 무죄

등록 2012.04.12 17:48수정 2012.04.12 17:48
0
원고료로 응원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신임을 얻어 개인자금을 관리하면서 일부를 사채업자에게 빌려줬다가 회수하지 못하자 살인을 청부하고 범인을 도피시킨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CJ그룹 전 간부가 무죄를 확정 받았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회장 비서실 핵심부서에 근무하며 이재현 회장의 두터운 신임으로 회장의 개인자산을 증식·운용하는 업무를 수행하던 A(43)씨는 2006년 자신이 관리하던 이 회장의 개인자금 중 170억 원을 월 2~3% 이자를 받기로 하고 사채업자 P씨에게 투자 목적으로 빌려줬다.

그러나 A씨는 이중 80억 원을 돌려받지 못했고,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J씨 등에 청탁해 P씨를 살인하려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른바 '청부살인'에 대가로 A씨가 J씨 등에게 건네기로 한 돈은 3억 원.

범행일체를 준비한 J씨 등은 마음을 바꿔 자신들이 직접 범행을 실행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직접 범행을 실행할 제3의 인물에게 사주했다. 그는 2007년 5월 둔기로 P씨의 머리를 내리쳐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며 미수에 그쳤고, 1억1000만 원이 든 가방만을 빼앗았다. 이후 범행이 발각될 것을 염려한 A씨는 J씨 등에게 3억 원을 건네며 도피시켰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A씨는 P씨와 친밀하게 지내는 과정에서 과시하기 위해 자신이 관리하는 이재현 회장의 자금운용 등에 대해 말해줬는데, 둘 사이의 신뢰가 깨진 뒤 P씨가 앙심을 품고 A씨의 170억 원의 출처와 이재현 회장의 차명자금 운영과 관련한 내용을 모두 폭로하겠다고 협박하자 P씨를 살해하려는 의도를 굳혔다"고 판단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4형사부는 2009년 6월 배임, 살인예비, 강도상해, 범인도피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A씨는 사채업자인 P씨에게 담보도 제공받지 않고 차용증도 받지 않아 결국 80억 원의 거액을 회수하지 못하는 손해를 끼친 점에 비춰 볼 때, 피고인의 대여행위는 이 회장과의 신임관계를 저버리고 손해발생의 위험을 초래한 것으로 경영상 판단에 따른 정상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이 회장에 대한 관계에서 업무상 배임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A씨는 "J씨 등에게 P씨를 살해하고 가방을 빼앗아 오라고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J씨가 피고인으로부터 범행준비금 명목으로 3000만 원을 받았다는 진술에 신빙성이 있고, 피고인은 거액의 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자금 융통에 곤란을 겪었던 사실 등에 비춰 P씨에게 상당한 원한의 감정을 가졌을 것으로 보여 이런 원한관계는 살해의 동기가 충분해 보인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피고인들이 J씨 등과 범행을 공모한 이상 공범인 J씨 등의 P씨에 대한 강도상해 범행에 대해서도 공동정범으로서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A씨는 "J씨에게 건넨 3000만 원과 3억 원은 J씨가 마치 P씨에 대한 폭력행위를 교사했다는 식으로 수사기관에서 허위로 진술할 태도를 보이며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급한 것일 뿐 도피자금으로 지급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J씨가 검거되면 자신들의 범행 공모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도피자금으로 돈을 제공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창석 부장판사)는 2009년 12월 1심 유죄 판단을 뒤집고, A씨를 무죄로 판단했다.

A씨는 "나름대로 이재현 회장의 재산을 증식시켜 보겠다는 생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해 P씨에게 대여한 것으로 P씨의 기망행위로 돈을 편취당하게 됐던 것"이라며 "J씨에게 살해 지시를 한 바 없으며, J씨에게 돈을 준 것도 그의 협박에 못 이겨 갈취당한 것"이라며 항소했다. 검사는 "형량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각각 항소했다.

배임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 A씨는 이재현 회장으로부터 재산관리에 관해 포괄적인 권한을 위임받은 것으로 보여 회장으로부터 대여행위에 대해 사전 승낙을 받아야 하는 행위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피고인이 P씨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은 것 자체가 불법적인 것은 아닌 점, P씨에게 사기를 당한 것을 안 뒤에는 자금을 회수하며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를 한 점 등에서 배임이나 횡령의 범의를 가진 자의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따라서 업무상 배임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은 위법하다"고 밝혔다.

살인예비, 강도상해, 범인도피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J씨가 진술을 번복하는 등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며 "특히 J씨는 피고인들로부터 범행 대가로 3억 원을 받기로 돼 있음에도 교사자의 지시와는 달리 피고인들과 상의 없이 범행 내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인지, 가방을 뺏는 정도의 범행만을 하는 경우에도 약속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 의문이 들어 피해자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J씨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J씨는 P씨에게 범행사실이 발각됐다고 생각해 적개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며, A씨를 협박해 3억 원을 갈취한 행위에 대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마치 A씨가 처음부터 범행 대가로 지급하기로 했거나 도피자금으로 3억 원을 줬다고 허위진술할 동기가 있었다"며 "또한 자신의 형사재판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고자 피고인들의 지시를 받아 강도상해 범행을 했다고 수사기관에서 허위로 진술할 동기가 있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2일 배임, 살인예비, 강도상해, 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기소된 CJ그룹 전 간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배임과 관련, 재판부는 먼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를 통해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하의 의도적 행위를 한 경우에 한해 배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며 "그런 인식이 없음에도 단순히 본인에게 손해를 발생했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 A씨가 관리한 자금의 성격, 그에게 부여된 권한의 범위와 그가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의 유무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자금을 P씨에게 제공할 당시 차명재산 관리자로서의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피고인 또는 제3자인 P씨에게 재산상 이익을 얻게 하고, 회장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되지 않아 배임의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설명했다.

살인예비 및 강도상해에 대해서도 "피고인들의 지시에 따라 P씨를 살해하려고 준비하고 P씨를 상대로 강도상해 범행을 했다는 취지의 J씨의 진술은 진술경위, 범행 전후의 정황 등에 비춰 신빙성이 없다"며 "피고인들이 P씨를 살해할 동기도 뚜렷하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도피자금 제공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J씨에게 금전을 교부한 행위, 피고인들의 J씨의 강도상해 범행 가담 여부 등을 종합해 자금을 갈취당한 것일 뿐, J씨의 도피자금으로 교부한 것이 아니어서 피고인들에게 범인도피의 범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원심의 판단도 정당하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청부살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서양에선 없어서 못 먹는 한국 간식, 바로 이것
  2. 2 "알리·테무에선 티셔츠 5천원, 운동화 2만원... 서민들 왜 화났겠나"
  3. 3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4. 4 2030년, 한국도 국토의 5.8% 잠긴다... 과연 과장일까?
  5. 5 "은혜 모른다" 손가락질에도... 저는 부모와 절연한 자식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