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우중산행은 '멋진' 추억이 되다

창원 천주산 우중산행을 다녀와서

등록 2012.04.24 18:54수정 2012.04.24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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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천주산 정상에서...비바람이 몰아치고... ⓒ 등산선교회


우중산행을 해 본 적은 언제였을까. 예전에 강원도 설악산을 갔다가 온종일 비를 맞으며 걸었던 적이 있고 영남알프스 간월산 우중산행 정도다. 사실 나는 비오는 날에 몸이 젖고 번거로운 것들이 싫어서 비오는 날엔 산행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적극적으로 등산하기 위해 챙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의아하고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우중산행하면 질색하던 당신이 어쩐 일이에요. 내가 비오는 날 등산하자며 안 하던 사람이. 신기하네?!"


요즘 나는 남편을 자주 놀라게 하나보다. 이번에도 궁색한 변명을 늘여놓는다.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가는 산행이잖아요. 비오는 날은 산행하는 사람도 드문데다 너무 한적하면 또 무섬 타는 거 알잖아요. 오늘이야 뭐,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가잖아요. 나름 재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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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천주산 우중산행 ⓒ 등산선교회


예정돼있던 등산선교회 4월 정기산행이 비 소식에 간다 안 간다 번복하다가 결국 비가 오더라고 예정대로 가기로 했다. 창원 천주산 진달래꽃이 활짝 개화했을 걸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70여 명이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비 소식에 30여 명으로 줄었고 당일(21일(토)) 아침에 취소하는 일이 있어 약속 시간에 교회에 모인 인원은 모두 17명.

승합차 두 대에 17명의 사람들이 나누어 타고 목적지로 향한다. 아무리 봐도 비는 조금 내리다가 말 비가 아닌 것 같다. 일기예보에서는 강풍을 동반한 비가 다음날 오전까지 내린다고 했는데, 창원 천주산에 활짝 피었을 진달래꽃도 비속에서 다 떨어지진 않았는지. 빗속에서 진달래꽃을 제대로 볼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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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빗속을 걷다... ⓒ 이명화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이 차창에 엉겨 붙는다. 젖은 고속도로를 달려 창원 천주산 앞 달천공원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지는 쉬지 않고 내리는 비를 미처 다 받아들이지 못해 길 위에 작은 도랑을 만들며 불어난 빗물이 냇물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비가 와서 한적하리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달천공원 주차장엔 산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세워둔 자동차들이 가득하다.


배낭을 메고 우의를 입고 모두들 산 들머리로 들어선다. 나는 카메라가 물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 우의를 입었지만 우산까지 받쳐 들고 걸으니 번거롭고 불편하다. 지난 7일 사전답사 산행 때와 같은 산행 경로를 따라 가는 등산길이다. 비 오는데다가 안개까지 짙게 깔렸다. 빗속에서 먼저 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사람들과 마주쳐 좁은 등산길에서 정체현상까지 겪는다. 뜻밖에도(?) 비오는 날 등산 온 사람들은 많아 내심 놀랐다.

경사진 등산로에서는 끊임없이 내리는 비에 흙탕물이 흘러내리고 온 산은 젖고 또 젖는다. 비가 안 오면 보통 숨 가쁘게 산길 오르다가도 중간 중간에 충분히 쉬어가고 여기저기 눈길 줘가면서 느긋하게 걸어도 시간이 넉넉할 산이건만, 비옷을 입고도 다리가 젖고 팔이 젖어 가방이라도 바닥에 놓을 만한 장소는커녕 발밑이 척척하니 쉬는 둥 마는 둥 대충 생략하고 올라간다. 간식을 꺼내 먹는 것도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시는 것도 빗속에선 여간 번거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뱃속이 조금 허전하지만 호주머니에 넣어둔 연양갱 하나로 보충하고 그냥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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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조망바위에 올라... ⓒ 이명화


비에 젖은 숲은 비안개에 싸여 있다. 지척에 다가오는 산길에서 이따금 진달래꽃 터널을 만나 동행들은 감탄사를 내지른다.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감탄'은 얼마나 멀리 있던가. 자연 속에서 우리마음도 유순해 지고 감각도 예민하게 깨어나는가 보다. 어느새 숲은 연녹색으로 온 산을 물들여놓고 있다.

천주산은 산세가 유순한 편이어서 그리 힘들지 않다. 가볍게 등산할 수 있는 천주산은 육산이다. 봄이면 진달래꽃이 온산을 뒤덮어 상춘객들을 불러들인다. 진달래꽃이 활활 타오르듯 피어오를 쯤에 천주산을 찾은 사람들은 인근에 있는 마금산온천에서 목욕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주남저수지를 가 봐도 좋을 것 같다. 주남저수지 역시 시나브로 표정이 다르다.

달천공원에 도착 잠깐 휴식하며 인원을 점검하고 조금 가파른 경사 길로 올라선다. 이 경사로를 지나면 이내 천주산 정상에 올라선다. 천주산 정상이 지척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얼마쯤 올라가자 진달래꽃이 길 양쪽에 흐드러지게 피어 비를 흠씬 맞고 있다. 안개는 자욱해 멀리까지 내다볼 수가 없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견디다 못해 떨어져 누운 꽃잎들이 여기저기 젖은 길 위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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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비에 젖은 진달래꽃... ⓒ 정영석


바람이 분다. 낮은 곳에서는 없던 바람이다. 천주산 정상에 이르자 바람은 더 거칠다. 카메라를 보호하기 위해 펼친 우산이 뒤집히고 몸이 휘청하고 뒤로 밀린다. 드디어 천주산 정상. 비와 안개에 싸여있는 천주산 정상에서는 주변 경관도 산비탈을 온통 진달래꽃 불을 놓고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비와 안개와 바람에 갇혔다.

비와 안개만으로 부족한 듯 바람까지 불어대니 발목에서 무릎 정도까지 젖어있던 아랫도리가 허벅지 위에까지 금방 젖었다. 양팔도 빗물이 점점 번져 찬바람에 소름이 돋는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천주산 정상에서 휘청대다가 오래 서 있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고 바삐 서둘러 하산 길로 접어든다.

바람을 피하고 나자 조금 낫다. 배는 고프지만 비바람 속에서 앉아서 점심도시락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돌탑을 지나고 헬기장을 거쳐 잣나무 숲 옆을 지나 통나무계단 길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빗길이 미끄럽다. 흙길은 흠뻑 젖어 질척거리고 나무들은 새순을 내밀며 온 산을 유록빛으로 싱그럽다. 꽃도 예쁘고 아름답지만, 마른 나뭇가지 끝에 달린 새싹들을 보고 있노라면 잎도 꽃 못지않게 예쁘다는 것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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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비속에서 신났다 여인들... ⓒ 이명화


만남의 광장을 지나 달천계곡 약수터에 이른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약수터는 범람하고 있다. 약수터 아래서부터는 줄곧 계곡을 옆에 끼고 걷는다. 비에 한껏 불어난 계류가 요란스럽게 흐름을 탄다. 촬촬 콸콸~ 숲 전체에 물소리가 환하다. 갑작스런 비에 계곡물도 빗물과 합류해 함께 흐르느라 숨 가쁜 소릴 낸다. 그 물소리가 숲 속 가득하다.

물소리 들으며 빗속을 걸어 정자에 도착. 먼저 온 일행들이 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펼치고 있다. 뒤처졌던 우리도 정자아래 비를 피하고 들어선다. 둥글게 두 개의 원을 그리고 앉아서 조금 늦은 점심을 먹는 시간. 모두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여러 가지 반찬들로 풍성한 만찬으로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 꿀보다 단 늦은 점심을 뚝딱 해치운다. 젖은 몸이 덜덜 떨려서 뜨끈뜨끈한 홍삼차를 마시고 뜨거운 커피를 마셔도 한기는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한 집사님은 계곡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더니 점심을 먹고 나니 그제서야 물소리가 귀에 들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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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산... 빗속의 여인들...어쩌나...뒤 돌아보며 여인들을 불렀더니 그만 꽈당~넘어졌네 ^^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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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천주산 하산길... ⓒ 이명화


달천공원이 지척이다. 화장실에서 젖은 옷을 벗고 가져온 여벌옷으로 갈아입었다. 비로소 떨리던 몸이 진정이 된다. 비오는 날엔 여벌옷은 필수다. 장갑은 젖어도 계속 손에 끼고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체온이 덜 빼앗기는 것 같다. 젖은 신발은 어쩔 수 없이 신고 간다.

돌아오는 길. 빗줄기는 줄어들기는커녕 빗방울은 더욱 굵어진 듯하다. 모두들 우중산행을 해냈다는 뿌듯함으로 희열에 찬 표정들을 하고 있다. 볕 좋고 맑은 날 산행하는 것도 좋지만, 궂은 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편을 감수하면서 산행한 것은 그만큼 번거로움과 어려움도 많았던 만큼 더 뿌듯하다. 지나고 보면 힘들었던 것이 추억의 중심에 있지 않던가.

모두들 "제대로 된 우중산행을 해 본 것 같다고 한 마디씩 했다. 예정대로 산행을 하기로 한 결단이 추억에 남을 신나는(?) 우중산행을 있게 한 것 같다. 70여 명에서 30여 명, 그리고 최종적으로 참석하게 된 우중산행 인원은 17명. 장하고 용감하다. 함께 비를 맞으며 산을 만났던 하루, 이 짧았던 우중산행은 우리 가슴 가슴마다 오래 간직할 멋진 추억이 되었으리라.

산행수첩
1. 일시: 2012년 4월 21일(토). 온종일 비
2. 산행: 부산 포도원교회 등산선교회 4월 정기산행
3. 산행시간: 3시간 45분
4. 산해이점: 달천공원(주차장)
5. 진행: 달천공원(주차장)(10:35)-달천고개(=함안경계 11:50)-천주산 정상(12:10)-만남의 광장(1:00)-달천계곡 약수터(1:15)- 정자(1:35)-점심식사후 출발(2:05)-달천공원(2:20)

6. 특징: 온종일 비. 진달래 만개(비와 안개로 진달래군락지 안보임)

◆우천시 주의사항: 비 오는 날 산행엔 필히 배낭커버를 지참해야 한다. 긴 시간 동안 비를 맞다보면 저체온 증세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방수, 방풍의는 물론 체온유지를 위한 보온의류를 반드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다. 여벌옷은 물론 배낭 안에 든 내용물은 각각 비닐봉지에 하나씩 넣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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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화

#창원천주산 #진달래 #우중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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