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 도시락어머니는 이 양은도시락에 가마솥에서 맛있게 익은 밥을, 또 새벽부터 준비한 정성이 담긴 반찬과 함께 우리 3남매의 점심도시락을 챙겨주셨다. 사진은 태안 튤립꽃축장에 마련된 추억의 교실.
김동이
아침 밥상에도 오르는 김이기도 하지만 우리 3남매의 점심 도시락 반찬이기도 했다. 아침상이 차려지고 안방 한켠에 붙어 있는 작은 부엌문이 열리면서 아침상이 들어온다. 좀 전에 구운 노릿노릿 잘 구워진 김도 밥상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밥상에 올려진 김 이외에 남은 김은 라면봉지에 담겨 양은도시락과 함께 우리 3남매의 가방에 담긴다.
아침식사까지 한바탕 우리 가족의 소란한(?) 아침이 지나면 어머니는 또 묵묵히 밥상을 치운다. 설거지가 끝나면 다시 밭으로 향한다. 5리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지만 뙤약볕을 안고 밭으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울만도 하지만 어머니는 묵묵히 밭으로 간다.
하루 종일 뙤약볕에 앉아 또아리를 튼 수건 하나 머리에 이고 밭에 풀을 맨다. 매일같이 혼자서 풀을 매는 모습에 우리 남매들은 "우리 학교 갔다오면 같이 해. 혼자 하지 말구"하면서 말려도 봤지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니들 학용품이라도 사 줘야지"하며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우리 기억 속에 자식들을 위해 하루도 쉬지 않았던 억척스런 어머니로 남아있다.
한 번은 학교 갔다가 오후 3시쯤 집에 온 적이 있었는데,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집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부엌이었다.
슬쩍 부엌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어머니께서 밥에 물을 말아 김치를 반찬으로 시장기를 떼우고 있는게 아닌가. 순간 울컥했다. 왜? 집에 먹을 것 없는 가난한 가정도 아니었는데 화까지 치밀어 올랐다.
"엄마! 왜 지금 밥 먹어? 그것도 물 말아서?" 너무나 어이없게 난 어머니께 화를 냈다.
"어. 일하다가 끼니를 놓쳐서... 해 먹기도 뭐하고...""그래두 그렇지 왜 물을 말아 먹어. 일이 그렇게 좋아?"철 없는 어린 시절 난 그렇게 어머니께 막말을 해댔다. 하지만, 어머니는 내색도 하지 않고 급하게 밥그릇을 치우면서 "배고프지? 엄마가 뭐 해줄까?"하고 여전히 자식 걱정을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늘 그랬다. 자식들 때문에 자신은 늘 뒷전이었다. 자라면서 우리 남매들은 '아들 딸 바보'인 어머니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다.
어머니는 또 종가집의 맏며느리로 시집 와 종갓집의 큰 살림도 맡았다. 힘들 법도 하지만 항상 웃는 얼굴로 종친을 대해 종친들의 입에 칭찬으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한 종친은 "우리 종부님 안 계시면 종친회가 제대로 될지 몰라"라고 할 정도로 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기도 했다.
집안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종갓집임에도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난 그렇게 성년으로 자랐고, 지금도 남부러울 것 없이 떳떳하게 살고 있다.
날 두 번 울린 어머니의 세 차례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