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독배 마셔라? 김재연 사지로 내몰지 말아야

[편지] 추성호님께 외대 후배가... 진실규명 없는 무조건 사퇴는 옳지 않아

등록 2012.05.10 17:33수정 2012.05.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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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비례경선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법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5월 9일 추성호 시민기자의 글을 게재한 데 이어, 최승현 시민기자의 반론을 싣습니다. 다른 의견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성호 오빠,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있으신지요? 오랜만에 <오마이뉴스>를 통해 오빠 소식을 접하게 됐네요. 저도 오빠와 같이 최근 언론과 지인들을 통해 통합진보당의 소식을 접하면서 무겁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쉽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빠 역시 저와 같은 근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말씀을 들으니 참으로 속상할 따름입니다.

(관련기사: 사퇴하십시오, 할 수 있는 선택은 그것뿐입니다)

저 역시 졸업하고는 월급 받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자금 대출 이자의 눈치나 보며 예전 학생 시절처럼 열정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만 오빠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또 진보정치가 더 많은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기에, 여전히 통합진보당의 당원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숨어사는 여학생, 김재연... 사서 고생하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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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 재검증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김재연 당선자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남소연

그래서 외국어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시의원 선거 비례대표까지 출마했던 오빠가 저와 같은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낯설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학창시절 변변한 학생회장 한 번 해본 적 없는 저로서는 오빠처럼 단과대 학생회장을 거쳐 총학생회장을 지낸 분들은 으레 저는 가지 못하는 험난한 길을 계속 가리라는 기대를 했기 때문이었겠지요.
제 기억 속의 오빠는 훤칠한 키에 정장이 잘 어울리는 회장님의 모습이기도 했고, 노천극장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민중가요에 맞춰 율동을 하던 모습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늘 어려운 학생회 활동이었지만 외대인으로서 학교 발전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20대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쉽지 않은 길에 5년 만에 뉴라이트 총학생회와의 선거에서 당당하게 당선된 '추장님' 성호 오빠는 참 멋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김재연 언니, 제가 입학한 것은 재연 언니가 총학생회장직 임기가 끝난 후였기 때문에 학생대표자로서의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입학하던 당시, 김재연 당선자는 수배 생활로 학생회관에서 먹고 자며 학교 밖으로는 마음 놓고 외출 한 번 하지 못하는 '범법자'였습니다. 법을 어기고 학교에 숨어 사는 여학생. 당시 새내기였던 제 눈에 얼마나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겠습니까.


가끔 술자리가 길어져 차가 끊겨 집에 가지 못하고 학생회관 '생활방'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 날이면 재연 언니를 볼 수도 있었습니다. 언니는 환기도 안 돼 창문을 열어 놓은 그 방에 기거하며 창문 틈으로 날아 들어온 외대의 상징 '비둘기'를 익숙한 솜씨로 쫓아내던, 그야말로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들로부터 언니가 왜 수배 생활을 하게 됐는지, 국가보안법이 무엇인지 조곤조곤 설명을 듣고서는 그제서야 재연 언니를 존경의 눈길로 바라보게 됐습니다. 제 기억 속의 김재연과 추성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면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민주노동당의 당원이었습니다. 저 또한 두 분 총학생회장님과 비교도 할 수 없었지만 민주노동당의 학생 당원이라는 것이 뿌듯했습니다. 비록 학생대표자는 아니지만 나도 진보정당의 당원으로 좋은 세상 만드는 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김재연과 추성호를 존경했던 것은 남들이 '빨갱이'라고 욕하고 손가락질해도 역사의 발전을 믿으며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옳지 않다고 나쁜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스스로 떳떳하고 당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바라봅니다. 여전히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가며 욕먹고 상처나도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보정당 당원입니다.

사람이 모이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자기의 의견과 입장이 있습니다. 진보정당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의견 차이와 입장 차이가 왜 없겠습니까. 그럼에도 진보정당 당원들은 서로의 양심을 믿으며 의견 차이가 있으면 토론하고, 원칙과 기준을 세우고 당을 일궈 왔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진실 규명 필요 없다? 김재연을 지킬 수 있을까요

그것이 진보정당의 운영 원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당 바깥에서는 빨갱이라고 욕하고 온갖 주홍글씨를 갖다 붙여도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이 같기 때문에 길은 조금씩 달라도 믿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믿지 못하면 지금까지 그 수많은 난관을 헤치며 함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모진 말이 가슴을 후벼파도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당원들이 자신의 양심을 걸고 당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성호 오빠는 국민들이 누가 잘못을 했는지에 대한 진상규명은 바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통합진보당의 당원이기 때문에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오빠도 당원이면서 이렇게 당이 안팎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데 그저 부끄러워만하고 당원이 아닌 사람처럼 실망만 하고 있으실 겁니까.

솔직히 저는 무섭습니다. 오랜 수배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켜왔던 재연 언니가 이제 국회의원 당선자가 되어 합법적으로 등록금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고, 청년 실업문제와 저와 같은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나는 당당하다. 결백하다'라는 말은 필요없고 무릎꿇고 빌라고 합니다. 자신의 양심을 믿고 살아온 사람에게 잘못이 있건 없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면서 그만 두라고 합니다. 그것도 돈으로 산 자리도 아니고, 당 안팎의 청년들이 소신껏 투표해서 후보가 됐고 저를 포함한 국민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직인데 잘못이 있건 없건 그건 중요하지 않고 사람들이 충격 받았고 실망했으니 자리를 내놓으라 합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최악의 가능성으로 김재연 당선자가 사퇴를 했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누가 잘못했는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진행될까요? 아니면,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어수선한 틈을 타 검찰 조사, 긴급체포와 같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들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상상만으로도 공포스러운 그 과정에서 오빠는 재연 언니를 지켜줄 수 있습니까? 제가 너무 과도한 상상을 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님이 자꾸 떠오릅니다. 대통령 임기도 끝났는데, 검찰에서 벌집처럼 쑤셔놓고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더니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전직 대통령도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습니다. 하물며 이제 막 정계에 입문한 정치 신인은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진보정당의 정치인입니다. 저는 정말 무섭습니다. 저는 10년 한길을 걸어온 자랑스러운 외대 선배의 양심을 믿고 합법적으로 지켜주고 싶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진보정당 당원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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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연 당선자, '사퇴거부'라니요? 미래를여는청년포럼 회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합진보당사 앞에서 김재연 청년비례대표 당선자가 사퇴를 거부한 것과 관련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며 김 당선자의 즉각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면서 독배를 마시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지요. 저는 소크라테스가 진보정당 당원이었다면 당원들이 힘을 모아 그 악법을 철폐하기 위해 투쟁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농사짓고 날품팔며, 삼교대 근무하면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의 정당이 그 시대에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전 공무원노동조합 문제로 검찰에서 당 서버를 압수수색하겠다고 그 난리를 쳤을 때 우리 진보정당 당원들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냉바닥에서 잠도 자지 않고 뜬눈으로 지새며 지켜냈던 당이었습니다. 우리가 일궈왔던 진보정당이 철퇴에 날아가게 생겼습니다. 오빠도 저도 이제는 당직자도 아니고 단체 활동가도 아니지만 당원으로서 당을 지켜달라고 호소하고 어려움에 처한 선배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자신의 양심을 믿고 살아온 사람을 떳떳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들고 피바람의 소용돌이로 몰아서야 되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소시민이지만 진보정당 당원으로서 당이 어렵고 외대 운동의 선배가 어려울 때 그래도 의리와 동지애로 힘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못은 없지만 가던 길을 멈추라 한다면, 우리 후배들 누가 앞으로 그 길을 가려 하겠습니까.

20대 청년시절의 열정과 패기만큼 앞장서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사람 목숨 귀하게 여기고 사지로 내몰지는 맙시다. 사람들이 외면하고 욕할 때 우리가 먼저 사람들을 설득하고 진실을 알려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빠를 믿습니다. 앞장서서 그 길을 가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양심을 지키고 어려울 때 서로 도움을 줄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힘도 모으고 지혜도 모아서 꼭 지켜냅시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추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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