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년> 책 표지. 이 책에는 통일 이야기 말고도 법륜 스님의 개인적인 삶과 역사관 등이 담겼다.
오마이북
"역사와 민족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1983년 대학 국문과 신입생이었던 오연호는 교정에 걸린 플래카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지리산 근처 시골에서 나무하다 온 촌놈을 웬 역사와 민족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가?' 의문을 품고는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 그는 소설가의 꿈을 접고 묻혀 있는 사실을 기록하는 사람, 즉 기자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1983년이면 지금부터 30년, 즉 한 세대 전의 시간이다. 무심한 세월이 흘러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러 있는 그는 기자로서의 뜻을 이루었을지는 몰라도 과연 역사와 민족의 소청(所請)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을까?
"저만 하더라도 과거에 학생운동을 했던 386세대이고, 요즘도 언론을 통해 사회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통일에 대한 생각은 멀리 던져둔 채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거든요....시대와 역사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통일을 잊어버리고 안주하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새로운 100년>(오마이북)은 무엇보다도 역사와 민족을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더할 나위 없이 큰 미덕을 갖는다. '오연호가 묻고 법륜스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된 이 책에서 법륜(法輪)은 거의 대부분의 논의를 역사와 민족을 근거로 하여 풀어 나간다. 이에 오연호는, "30년 전에 '역사와 민족'이라는 단어 때문에 가슴이 뛴 이후 참으로 오랜 만에 스님과 대담을 하면서 다시 가슴이 뛰었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요즘 대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은 벌일지언정 '역사나 민족' 따위는 거론하지 않는다. 시대가 그렇게 하도록 변화된 것일까, 그리고 이런 변화가 정당한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본질을 잊고 있는 것일까? 정작 '고액 등록금' 같은 것은 아예 역사나 민족 따위의 문제와는 무관한 것일까?
<새로운 100년>의 큰 미덕과 작은 아쉬움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우리 역사와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제1 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분단 상황의 극복 곧 통일이고, 지금이야말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적기라는 것이 법륜이 말하는 핵심 요지이다. 그리고 그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통합의 리더십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기성의 리더십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를 읽고 대응해야 하는데 기성 정치권은 이걸 못하는 거예요....성장의 리더십, 민주화 리더십에 물들어 있는 사람에게는 시대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런데 가령 안철수 교수처럼 기존 세력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과 얘기해보면 금방 대화가 통합니다."(316쪽)
법륜은 미래 권력뿐 아니라 과거 권력의 대북·통일정책에 대해서도 비교적 분명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의 평가를 거칠게 요약하면 김영삼·이명박은 실패했고, 노무현은 미흡했으며, 노태우·김대중은 성과를 냈다고 진단한다. 특히 그는 노무현 정권이 나름대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역사의식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본다.
법륜은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에 대해서도 비교 평가를 서슴지 않았다. 그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가 매년 고구려·발해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당연히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역사에 대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린다.
반면 신라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동시에 내리고 있다. 그는 신라가 가야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보인 통합의 리더십과 외세 당나라에 굴하지 않고 통일전쟁을 벌였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이전에 외세 당나라를 끌어들인 점, 그리고 민족의 영토를 대폭 축소시켰다는 점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이처럼 법륜의 역사관은 일단 상식적이고 평이하기 때문에 대중적 호소력을 갖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중적 호소력이란 것은 이런 것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작금 법륜이 얻고 있는 대중적 호소력의 비결은 이런 것 말고도 법륜 특유의 '확장적 민족주의'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의 고대사관은 주로 <환단고기>에 근거한다. <환단고기>는 조선의 요하문명을 중국의 황하문명과 대등 또는 우월하게 인식하는 재야의 역사관이다.
또한 법륜은 유교국가인 조선왕조에 대해서는 의외로 박한 평가를 내린다. 그에 의하면 조선의 유학 정치인들은 역사의식이 미흡한 나머지 사대주의로 흘렀다는 것인데 필자는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일단 조선은 고려에 이어 우리 영토를 압록·두만강까지 확장했다. 또한 조선은 대단히 높은 수준의 정치와 문화를 이루면서 최소 200년 이상 아시아의 1등 국가를 구가했다고 필자는 보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문제는 필자에게 이 책이 가지는 유일한 아쉬움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