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만해도 사법처벌...이런 나라 없습니다"

[인터뷰] '표현의 자유 전도사' 박경신 교수 펴낸 <진실유포죄>

등록 2012.05.17 11:57수정 2012.05.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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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책 <진실유포죄>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는 박경신 교수
자신의 책 <진실유포죄>와 관련해 이야기하고 있는 박경신 교수조정훈


"허위사실유포죄는 위헌일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기준을 명백히 위반한다. 왜냐하면 포장만 허위사실유포죄일 뿐, 실제로는 정부의 비리에 대한 진실한 고발과 비판을 처벌하는 진실유포죄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허위사실 자체를 처벌하는 국가는 유일하게 우리나라뿐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인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는 최근 자신이 펴낸 <진실유포죄>(다산초당)에서 '허위사실유포죄' 등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국사회를 이렇게 지적했다.

'표현의 자유 전도사'로 통하는 박 교수는 '인터넷법클리닉' 사이트를 통해 누리꾼들과 독립예술가를 위한 저작권 및 명예훼손 등의 무료법률상담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블로그에 <검열자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는 실제 성기 사진을 보여주며 음란물심의기준에 관해 논평했다는 이유로 음란물 유포죄로 불구속 기소되기도 했다.

"허위사실유포죄는 가장 심각한 진실유포죄"

<진실유포죄>는 전체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사람들의 소통을 제약하는 규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2장에서는 시간, 방법, 장소, 매체를 제약하는 규제들을 다룬다. 3장에서는 소통을 규제하는 주체, 4장에서는 사생활로서의 표현의 자유를 성찰했다.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지난 5년 동안 표현의 자유가 많이 억압됐다고 느낀 사례들로 PD수첩, 미네르바, 언론소비자주권연대(언소주)의 형사처벌 등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 인용됐던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허위사실유포죄 등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법들이 '진실유포죄'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죄'들이 "사상을 통제하고 검열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과 관련해 여러 차례 피고인 쪽 증인으로 나오기도 했던 박 교수는 "이 법(죄)들이 모두 국제인권기준을 위반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가장 심각한 '진실유포죄'로 지금은 위헌판정을 받은 허위사실유포죄를 들었다. "미네르바는 자신이 쓴 280개의 글 중에서 단 2개만 틀렸는데 허위사실유포죄로 100일을 감옥에 있었다"며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것은 모르겠는데 진실을 말하지 말라는 것은 잘못된 법"이라고 지적했다.

그 외에도 모욕죄가 있어 자신의 진실한 감정을 표명하는 걸 막는 것도 진실유포죄라고 주장했다. 또 노동자들이 일을 못하겠다는 것, 소비자들이 물건 못 사겠다는 것도 집단으로 하면 업주를 위축시킨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시하고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도 진실유포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 책에서 "모욕죄는 무한정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혐오죄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모욕은 대접의 기대치와 실제 대접받는 것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을 형사처벌하려고 하니 결국에는 대접의 기대치가 높은, 즉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을 위한 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게 '혐오죄'라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일종의 차별금지법인데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사회적 약자 등을 보호하는 혐오죄로 대체하자는 것이다.

"사법 시스템이 공정해야 표현의 자유 보장"

 박경신 교수의 신작 <진실유포죄>
박경신 교수의 신작 <진실유포죄>다산초당
책의 제목인 '진실유포죄'는 다른 여러 규제가 진실한 말하기나 글쓰기마저도 잠재적으로 범죄시하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지칭한다. 박 교수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행위 자체도 실명 의무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진실한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나 노회찬 X파일 사건의 통신비밀보호법 유죄판결도 진실유포죄라고 주장한다. 녹음파일 공개 등 진실을 밝히는 사소한 불법행위를 근거로 처벌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우리가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국제인권기준에 따르면 다 보호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욕설이라든지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은 우리나라에서만 처벌되지 다른 나라에서는 보호받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이 한 말이 틀렸다고 처벌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사법부나 검찰, 경찰 등의 국가권력이 형사처벌에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문제 삼았다. 예를 들어 전국어버이연합 같은 단체가 가스통 굴리고 총 들고 나와도 처벌 안 하면서 진보적인 의제를 가진 집회를 처벌하는 것은 검찰이나 경찰이 가진 편향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변호사 수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법률 서비스를 공정하게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법조계의 전체적인 특권층적 정체성이 없어져 정권편향적 법집행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끝으로 박 교수는 "사생활이 보호되어야 사장의 자유가 보호된다"고 강조했다. 누구의 친구인지를 밝혀야 한다면 사상의 자유는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실명제를 이용해 신상털기나 이메일 수사도 사상탄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람은 잠재적으로 소수자다. 압제에 대해 대다수가 숨죽이고 있을 때 별안간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소수자'가 된다. 이들의 목소리가 없이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보호해줘야, 즉 익명표현의 자유가 있어야 민주주의가 만들어진다. 지금 민주주의가 찾아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민주주의를 만들 때 필요한 것은 지킬 때도 필요하다."
#진실유포죄 #박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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