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박혀 있는 시시는 지금 288개 지하철역 4,600개 스크린도어에 1,900여 편이 박혀 있다.
이종찬
'시의 시대' 하면 사람들 대부분은 지난 80년대를 떠올릴 것이다. 시는 그때 5·18 광주를 선지피로 물들인 끔찍한 군홧발에 마구 짓밟히면서도 더욱 강하게 일어서서 맞짱을 떴다. 시인들은 그때 길가에 뿌리를 내린 채 흙먼지를 둘러쓰고, 사람들 발길에 마구 짓밟히면서도 어여쁜 꽃을 피워 올리는 민들레처럼 총구 앞에 시라는 알몸으로 당당하게 맞섰다. '시의 시대'가 열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서로 잘났다 어깨를 우쭐거리는 21세기. 날이 갈수록 온라인과 디지털이 판정승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빌어먹을' 시를 쓰고 있을까.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시가 팔리지 않는 시대, 결코 밥이 되지 못하는 시를 피붙이 살붙이처럼 끌어안고 있는 '거렁뱅이' 시인들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그릇 줄 수 있는 길은 정말 없을까.
우리 사회는 이들 시인들이 마치 전쟁을 하는 것처럼 온몸과 온 마음을 다 바쳐 쓰는 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시에도 수, 우, 미, 양, 가를 매겨 백화점에 나와 있는 번지르르한 상품처럼 '뺀들뺀들한 시'와 '울퉁불퉁한 시'로 나누고 싶어 할까. 시가 눈깔 허옇게 뒤집고 뻗어버린 시대, 시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21세기를 '윙크' 하면 21세기는 시를 '포옹'할 수 있을까.
'시는 눈 밝고 마음 밝은' 독자들 마음을 밥으로 먹고 산다 서울시(시장 박원순)가 15일 "시민들이 출·퇴근 시간 지하철을 기다리며 바쁜 생활 속에서 손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스크린도어 시 작품을 시민에게 더욱 친근하고 공감 가는 시로 선정해 게재 및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참 잘한 일이다. 그동안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박혀 있는 시를 읽은 시인들 대부분은 '저것도 시라고 쓴 것일까?'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시를 스크린도어에 싣기 시작한 것은 지하철역 스크린도어가 생기기 시작한 지난 2008년부터다. 이들 시는 지금 288개 지하철역 4600개 스크린도어에 1900여 편이 박혀 있다. 문제는 이 시들 대부분이 '시답지 않은 시'라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우리 사회에서 시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은 시대, '참 좋은 시'로 다가서도 '찬밥' 신세인데, 어찌 '시답지 않은 시'로 시민들 닫힌 가슴을 열 수 있겠는가.
서울시는 "새롭게 게재될 시의 다양성과 일반시민의 참가를 높이기 위해 기성시인의 시 외에 청소년, 일반시민이 쓴 시 200여 편을 공모 받아 시민참여의 기회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2012년 5월 서울시 와우홈페이지에 공모하여 서울시민의 일상이 느껴지는 시 200여 편을 엄선하여 게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 했다. 시는 '눈 밝고 마음 밝은' 독자들 마음을 밥으로 먹고 산다. 눈 밝고 마음 밝은 독자들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인들이 시를 쓰면서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배가 고픈 것도 이 때문이다. 시는 시인들만이 쓰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를 아끼고 사랑하며 시를 쓸 때 비로소 시가 빛이 반짝반짝 나는 것이다.
서울시는 "올해는 특별히 지하철역 특성에 맞는 테마가 있는 시 작품을 게시해 지역적 특성을 돋보이게 할 계획"이라며 "어린이대공원역에는 동시, 혜화역에는 젊은이들 관련 시, 다문화 외국인이 많은 역에는 나라별 시 작품 등 지하철역 테마에 어울리는 시 작품을 게재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이른 바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시를 보여줌으로써 시가 시민들에게 더욱 살갑게 다가서게 하겠다는 꽤 괜찮은 생각이다.
테마별 시는 대림과 가리봉역에는 중국 시, 이촌역에는 일본 시, 이태원역에는 영·미, 나이지리아 시, 신반포·고속터미널역에는 프랑스 시 등이 게시된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시민에게 특별한 꿈과 희망을 주는 시,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시를 가려 뽑기 위해 (사)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단체로 짠 '시 선정 운영위원회'도 꾸린다.
'시가 흐르는 서울' 어서 보고 싶네서울시는 '시가 흐르는 서울'을 활짝 열기 위해 5월 끝자락~10월 들머리까지 매주 토요일 '시와 음악이 있는 시민 시낭송 공연'도 펼친다. 이 행사는 한강 선유도공원에서 5월 26(토)부터 10월 들머리에 걸쳐 매주 토요일마다 열린다. 해질 무렵 분위기가 있는 시낭송을 콘셉트로 잡은 이번 시낭송 행사는 일몰 시간을 생각해 5~8월은 밤 8시에, 9월~10월은 밤 7시부터 문을 연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가 흐르는 서울' 시낭송에 많은 시민과 단체들이 참여를 한 데 이어 올해에도 더 많은 시민과 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시민이 직접 시낭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아울러 9월 경에는 '시민 시낭송 경연대회'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가 흐르는 아름다운 서울'... 한 시대 시인으로서 서울시 말만 들어도 어서 보고 싶어 가슴이 설렌다.
윤영철 서울시 문화예술과장은 "한강 선유도에서의 시낭송과 서울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 시 작품을 설치를 통해 시민들에게 잠시나마 일상의 여유를 제공, 시민들의 정서함양에 기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날이 갈수록 '남이야 죽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물질이기주의, 그 넘을 수 없는 탄탄한 콘크리트 벽을 더욱 단단하게 쌓고 있는 얄궂은 시대다. '더불어 살자'며 끝까지 명줄을 놓지 않고 있는 시, 그 '시의 시대'가 이번 스크린도어 시 교체와 시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시낭송 행사로 다시 활짝 열릴 수 있을까. 아날로그 감성을 지닌 시가 디지털로 무장한 21세기를 비집고 들 틈은 또 없을까.
덧붙이는 글 | [문학in]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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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엔, 1900편의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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