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동 백운동... 마을 이름만 봐도 이곳은!

의성여행 (41) 구천면

등록 2012.05.28 10:35수정 2012.05.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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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면 답사지도 (1) 안계면 선돌마을의 위천 건너편에서 부흥대 조망 (2) 구천서원 터 (3) 메뚜기가 뛰는 청정 들판 (4) 내산리 석불 (5) 조성지 (6) 청화산


안계면 선돌에서 구천면으로 가려면 남쪽으로 2km쯤 내려와 위성교를 건너야 한다. 선돌마을 뒤편 관어대(觀魚臺) 절벽 일대가 절경이라는 사실은 위성교 위에서 흘낏 북쪽을 바라보기만 해도 확인이 된다. 고운 물길이 흘러가는 강의 자태도 곱고, 물가를 따라 햇살에 반짝이는 갈대숲도 화려하지만, 그 너머로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관어대쪽 풍경은 멀리서 보아도 눈에 경치가 밟힐 지경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곧장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관어대가 강 건너로 보이는 강둑에 선다. 화선지를 깔아놓은 듯한 모래들, 그 사이를 명주실처럼 가르면서 흘러가는 물줄기, 깎아지른 듯한 절벽바위들이 푸른 물에 비친 그림, 강둑과 위천 사이를 이불처럼 덮고 있는 갈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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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면에서 바라본 선돌 부용대, 관어대의 풍경 ⓒ 정만진


더 가까이 다가가서 선돌의 물이 보고 싶다. 원시 시대에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았던 곳이다. 관어대의 절벽은 세월의 이끼가 배어 온통 검은 빛이다. 강물은 더 이상 맑을 수 없을 만큼 청명한 가을하늘빛으로 반짝인다.

하지만 발길은 여기서 멈춰진다. 너무나 무성한 갈대가 '출입 통제' 안내판처럼 여겨진 탓이다. 갑자기 모래땅이 아래로 꺼질지도 모른다 싶어, 그저 강둑 위에서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만족한다. 누가 여기 나무다리를 좀 놓아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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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천교를 건너 구천면으로 들어갈 때 볼 수 있는 하늘의 메뚜기 조형 ⓒ 정만진



맑은 물 맑은 공기, 구천면의 자랑

구천은 이 선돌 아래 위천만큼이나 맑은 고장이다. 앞으로는 위천이 흐르고 뒤로는 청화산(靑華山)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위천과 청화산 가운데는 안계평야의 남쪽 자락이 넓게 펼쳐진다. 평야가 끝나면 단풍잎 같은 모양으로 골짜기 골짜기 물을 채워담은 조성지(池)가 자리잡고 있다. 애당초 어수선한 풍경이 들어앉을 여지 자체가 없다.


그래서 구천면으로 들어가는 28번 국도 위성교 입구에는 하늘에 커다란 메뚜기가 날고 있다. 농약 오염이 없는 깨끗한 쌀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의 표시로 메뚜기 조형물을 세워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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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민들이 찾아와 메뚜기를 잡으며 쓰는 망 ⓒ 정만진


실제로 10월 초순과 중순, 구천면의 이 들판은 메뚜기를 잡으려고 몰려든 도시민들도 '사람 반 벼이삭 반'의 풍경이 펼쳐진다. 10월 중순이 넘으면 서리가 내리고 벼를 베게 되므로 메뚜기 축제는 들판이 가장 찬란한 황금빛을 뽐내는 그 무렵에 벌어진다. 군청이나 면사무소가 마련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입소문을 들고 몰려온 사람들이 스스로 그런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길가에는 농업진흥청과 의성군농업기술센터가 세워둔 '탑 라이스 생산단지' 안내판이 서 있다. 내용 중에서 '세계 최고 품질의 쌀'을 붉은 글씨로 써둔 것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이 지역은 급변하는 소비시장과 수입쌀 시판에 대비하고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추진하는 <쌀 혁명!! 탑 라이스 프로젝트>로 세계 최고 품질의 쌀을 생산하는 지역입니다. 목표 완전미 95% 이상, 단백질 6.5% 이하, 농가수 76호, 560필지, 면적 97.5ha, 병해충 종합관리(IPM) 기술 실천, 수확시기 10월 중순 서리 맞기 전'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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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서원 터에 남은 비석 ⓒ 정만진


위성교를 넘어 구천면으로 들어왔을 때, 바로 왼쪽의 마을에 구천서원이 있다. 아니, 지도에는 '구천서원'이라 기록되어 있어 서원 건물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龜川書院 六先生 埋版所(구천서원 육선생 매판소)'라는 조그마한 비석과 그것의 비각만 남아 있다. 1721년에 세워졌지만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서원은 사라졌고, 그 장소(所)에 박의중, 박서생, 김효정, 정휘, 이우, 장용한, 여섯 선비의 이름과 돌아가신 날짜를 적은 위패[版]만 묻혀[埋] 있다.

구천서원이 있던 마을의 이름은 본래 '九川(구천)'이었다. 마을 위쪽에서 아홉[九] 개의 샘[井]이 내려보내는 물길이 흘러가는 '벌'판이라 하여 본래는 "구정벨" 또는 "구즌빌"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九川(구천)으로 바뀌었고, 다시 龜川(구천)이 되었다. 아홉 갈래의 물길이 마을 안을 지나 위천으로 이리저리 흘러드는 모양을 거북[龜]의 등에 빗댄 것으로 여겨진다.

위성교에서 메뚜기가 펄펄 날고 있는 평야를 지나 구천면 소재지 안으로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1km쯤 가면 "미륵댕이" 또는 "서낭댕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작은 고개가 있고, 그 고개 아래 오른쪽 사과밭 뒤 솔숲에 문화재자료 305호인 '내산리 석불좌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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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 석불좌상 ⓒ 정만진

석불 앞에 가면 이 고개를 옛날에 "미륵댕이" 또는 "서낭댕이"라고 부른 까닭이 바로 이해된다. '미륵댕이'가 미륵불상이 있는 '만댕이(꼭대기의 사투리)'를 뜻하고, '서낭댕이'가 서낭당(성황당)이 있는 고개를 의미하는 말일 터, 불상 주위에는 촛불 자국이 많이 남아 있고, 기도를 올리느라 가져다 놓은 물그릇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그것을 보니, '얼굴에 개성미가 없고 두터운 법의(法衣)에 간략한 주름이 도식적으로 나타나는 등 세속화한 감을 준다'는 안내판의 내용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불상은 세 번이나 목이 떨어져 나갔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붙여 놓았다.

구천면의 자랑 세 가지는 무엇?

구천면이 자랑할 만한 볼거리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메뚜기가 펄펄 나는 들판 풍경, 맑고 넓은 조성지, 그리고 청화산이다. 조성지와 청화산은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가면 나온다. 비안면으로 넘어가는 923번 도로로 들어가는 것이다.

조성지는 1952년 11월 1일에 착공하여 1959년 12월 31일에 준공되었다. 무려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쌓은 대규모 저수지인 만큼, 준공 당시 의성군 안에서만이 아니라 경상북도 내에서도 가장 큰 저수지로 이름을 날렸다. 물을 가득 채우면 면적이 59.2ha나 되니(3km☓2km 정도), 구천면 사람들이 '쌀 혁명'을 위해 '탑 라이스' 벼농사를 짓는 논 97.5ha의 60%를 넘는 넓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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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지 ⓒ 정만진



이 호수에 조성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저수지가 '조성(造成)'된 위치가 '조성(造城)'마을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람들이 청화산 아래 이곳으로 들어와 마을을 만들[造] 때 사방은 온통 돌투성이었고, 그래서 그 많은 돌들을 거두어 성(城)처럼 동네를 이루었다. 造城마을인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한자로 쓸 때 造成이라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성지의 경치를 100%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못둑 위로 가야 한다. 청화산의 골짜기 골짜기에 물을 채우면서 못이 단풍잎 모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수면의 한 부분밖에 볼 수 없고, 짧게 막은 못둑에 올라야 전체의 장엄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의성군 홈페이지는 조성지를 '깊은 산속 바다처럼 넓고 푸른 호수…… 철 따라 철새들이 날고……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 서식하는 민물고기가 다양하고 씨알이 좋아 태공들의 발길 끊이지 않는' 곳이라며 자랑하고 있다.

이 호수는 넓이에 비해 못둑이 아주 짧다. 만약 누군가가 조성지를 한 손에 잡고 들어 올린 광경을 상상해 본다면, 단풍잎의 자루를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잡은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조성지가 꼭 단풍잎처럼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여름철의 '푸른' 잎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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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이 썩은 사과를 버려놓은 위로 바라보이는 조성지 못둑 ⓒ 정만진



못둑에 올라, 골짜기 구석구석으로 물길을 밀어올린 조성지의 풍경을 바라본다. 왼쪽 골인 청운동 앞 물가에는 누군가가 일산(日傘)을 펴고 한껏 자연을 즐기고 있다. 직접 가보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물가에 닿아 낚싯대를 드리우는 등 조성지를 즐기기에 가장 좋은 장소가 바로 저 청운동 어귀이다. 그리고 이곳 못둑 아래.

청운동이 있으니 백운동이 없을 리 없다. 조성마을에서 나와 923번 지방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마을이 바로 백운동이다. 923번 도로와 청운동에서 나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에는 폐교 흔적이 있고, 곧 '청산교회' 이정표가 나타난다. 청산교회는 청산리에 있는 교회라는 말이니, 백운동과 청운동을 합쳐 청산리라 부른다는 사실을 헤아릴 수 있다.

청산교회 옆을 지나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 바로 청화산 등산로이다. 나는 지금 청화산을 오르리라 마음먹고 있다. 아니 청화산에 들어가리라 마음먹고 있다. "감히 등산(登山)이라 말하지 말라. 어찌 인간이 산을 오른단 말인가. 입산(入山)이 옳다"라고 갈파한 누군가의 가르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마을 안 골목길에까지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사과 알맹이 사이로 보이는 청화산이 이름 그대로 파랗게[靑] 빛나며[華] 더욱 까마득하니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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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에서 바라본 조성지와 안계평야 ⓒ 정만진

#의성여행 #구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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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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