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화상의 백련사 유적 청화산 등산기

의성여행 (42) 구천면 청화산

등록 2012.05.29 09:15수정 2012.05.2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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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동 지나면서 마주치게 되는 못에서 바라보는 청화산 정상 ⓒ 정만진


경북 의성군 구천면의 청화산 아래 백운동에는 청산교회가 있다. 교회 옆을 지나 마을 안을 통과하면 곧장 골짜기로 들어가게 된다. 그 길이 바로 청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다.

늦가을에 찾으면 이 마을의 안은 골목에도 온통 사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도시민의 마음을 마구 흔들어대는 자연 그대로의 마을. 이 마을 안을 지나면 잠깐 논이 나오다가 이내 임도가 시작되는데, 입구에는 '백운 번영회'가 만든 시비가 있다.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커다란 바위에 청년들이 '시'를 적어놨다.


여기가 청산리 내 고향이라오
뿌리가 있고 조상의 얼이 담긴
청화산 깊은 골 맑은 물 줄기

산으로 들어가다가 이 시가 유달리 실감나게 느껴지는 장소를 한 곳 만난다. 청화산 정상을 온몸에 안은 채 답사자들을 기다리는 작은 연못이다. 특히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고, 해가 청화산 정상에 걸렸을 즈음에 이 연못에 닿으면 그야말로 천상의 세계를 보게 된다. 연목 안은 높은 하늘 흰 구름이 내려와 만든 용궁 같은 경치로 가득 채워지고, 햇살을 받은 청화산은 색깔을 알 수 없는 보석처럼 물 속에 곱게 앉아 있다. 청화산 깊은 골 맑은 물 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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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 들머리의 단풍나무 길(2011년 가을 촬영) ⓒ 정만진


이미 연못에서 청화산을 다 봤지만, 그렇다고 길을 아니 오를 수는 없다. 꼭대기에 올라 조성지를 바라봐야 하고, 안계평야도 보아야 한다. 선돌 부흥대 절벽을 치고 돌아흐르는 위천의 물줄기도 놓칠 수 없는 경치다. 혹시 아는가, 청화산 정상에는 옛날 아도화상이 도리사에 이어 두 번째로 불교를 전파한 백련사(白蓮寺) 터도 있다고 하니, 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메뚜기들이 산꼭대기까지 날아오를지...

임도 좌우로는 단풍나무가 촘촘히, 그리고 곱게 심어져 있다. 이 길을 가을에 걸으면 늦가을인지 봄인지, 그것도 아니면 여름인지 분간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기이하다. 단풍나무 길에는 형형색색의 단풍나무들이 많기 때문. 말 그대로 단풍의 느낌인 짙은 적홍색 단풍나무가 있는가 하면, 한여름 기운이 폭발하는 듯한 청록색 단풍나무도 많고, 연푸른 봄빛을 뽐내는 보드라운 느낌의 단풍나무도 있다. 마블링으로 그린 화려한 미술 작품 같기도 하고, 실패했지만 결과는 더 아름다운 데칼코마니처럼 보이기도 하고, 푸른 하늘에 색색의 단풍나무들을 콜라쥬해 놓은 듯 모든 것들이 팔딱팔딱 살아있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길을 걷노라니 답사자는 혼란에 빠진다.

이런 길은, 당연히  걸어야 한다! 시간만 흐르면 크게 이름을 얻어 자칫하면 한적한 산책이 어려워질는지도 모르는 길인데, 어찌 지금 걷지 않고 다음을 기약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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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 위로 청화산 정상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본 풍경. (2011년 가을 촬영) ⓒ 정만진


그렇게 단풍나무가 아름다운 임도를 1km 가량 황홀하게 걸으니 이윽고 주차장이 나타난다. 이정표를 본다. 오른쪽으로 가면 갈현 턱밑의 국수골에 닿고, 왼쪽을 선택하여 산속으로 들어가면 청화산 정상에 오른다. '정상 3.1km'라 쓰여 있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그늘이 짙은 황톳길이 정겹게 펼쳐져 보인다. 그 숲길로 들어선다. 백운리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일부러 심은 단풍나무들이 아기자기하게 우거져 있던 임도하고는 전혀 분위기가 다른 솔숲길이다. 아무도 가다듬지 않은 천연의 날것 그대로인 길이다. 빗물에 씻겨 내려 계곡처럼 깎인 웅덩이도 그냥 있고, 크고 작은 돌들도 제각각 놓여 있을뿐더러, 나무뿌리가 뼈까지 드러낸 채 숨을 헐떡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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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 되기 이전, 작은 못이 나타나고 그 오른쪽에 폐가 한 채가 서 있다. ⓒ 정만진


나무뿌리를 밟지 않으려고 마음을 써가며 길을 걷는다. 길이 온통 그늘이라 시원해서 좋고, 흙 위에 깔린 나뭇잎들이 바삭바삭 소리를 내어 더욱 좋다. 오르막을 걷는데도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진다.

산지기 집이었던 것 같은 폐가 한 채가 나타난다. 거의 쓰러진 모습이기 때문에 무서운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송홧가루 날리는 / 외딴 봉우리 //
윤사월 해 길다 / 꾀꼬리 울면 //
산지기 외딴 집 / 눈 먼 처녀사 //
문설주에 귀 대이고 / 엿듣고 있다 //

박목월의 <윤사월>이 떠오른다. 과연 이 집은 시에 나오는 표현 그대로 '외딴 집'이다.

폐가 앞에 연못이 있다. 큰 감나무 한 그루가 못가에 서서 물 위로 감잎들을 많이도 떨어뜨렸다. 연못 건너편에도 감나무 두 그루가 이쪽을 마주보며 서서 역시 많은 잎새들을 내려놓았다. 물은 맑고, 나뭇잎들은 깨끗하다. 못이 끝나면, 경운기 바퀴 자국이 선명한 넓은 길은 왼쪽으로 이어진다. 등산로는 그 반대편, 나무들 사이로 좁게 난 길을 찾아 제 앞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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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 등산로의 솔숲길 ⓒ 정만진


산길에는 마른 솔잎들이 노란 솜이불처럼 깔렸다. '폭신폭신'이란 낱말에 왜 '신'자가 두 번이나 들어 있는지 이 길을 걸어보니 알겠구나 생각하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미소를 지어본다. 빽빽한 사이 때문에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한없이 가늘고 힘없이 굽은 소나무들이 가까스로 햇살을 끌어안으면서 만들어내는 흐릿한 그림자들도 마냥 정겹다.

그때 문득,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앞을 가로막는다. 둘레에 잡목 한 그루 없이, 방금 면도라도 한 듯 말끔하고 평평한 땅 위에 자란 나무들이다. 그래서, 그렇잖아도 구름까지 닿을 듯 직선으로 높게 자란 거송들이 더욱 크고 꼿꼿해 보인다. 지금까지 줄곧 그늘 속을 걸어왔는데, 갑자기 환한 햇살에 눈을 뜰 수가 없다. 잠깐 아지랑이 같은 용틀임이 눈앞을 어른거린다. 소나무 뒤로 들어가 앉는다. 한참 산길을 올라온 보람처럼 얼굴 위로는 송송 땀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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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에서 내려다보는 안계평야 방면의 풍경이 멀리 아득하다. ⓒ 정만진



소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조성지가 보인다. 그 큰 호수가 그저 배춧잎만하다. 처음에는 저게 뭔가 싶었는데, 저 혼자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으니 저절로 호수인 줄 알겠다. 조성지 둘레는 붉고, 노랗고, 까맣고, 하얀 것들이 한데 어우러졌지만, 아득하여 제 빛깔을 알 수가 없다. 지붕, 들판, 도로, 길을 가는 경운기, 그리고 주먹만한 사과알 등등.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저곳에서는 제각각 아웅다웅이겠지만, 여기서 보니 있는지 없는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그저 조성지뿐이다.

조금 더 산을 오르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오른쪽은 청화산의 남서쪽 골짜기로 들어가 구미시 도개면 다곡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왼쪽은 헬기장을 거쳐 정상까지 내닫는 오르막길이다. 그 길을 1천 보 정도 걸으면 '청화산 정상 700m 용솟음봉'이라 새겨진 정상석과, 그 아래에 세워진 정자 한 채가 '힘들게 예까지 왔으니 이젠 좀 쉬시오' 하고 말을 건네는 정상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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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산 정상 ⓒ 정만진


멀리 안계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로 낙동강의 물줄기도 보인다. 정자에 잠시 등을 대고 누워본다. 아도화상도 이곳에 올라와 백련사를 짓다가 문득 힘에 겨우면 이렇게 누워서 쉬기도 했을 것이다.

산을 내려와 다시 백운동 밖으로 나온다. 청산교회 안내판을 뒤로 한 채 923번 도로에 올라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청화산 남동쪽 비탈로 난 고개를 넘어 비안면 '읍내'로 가려는 것이다. 군위군 소보면으로 잠깐 들어갔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하여 비안면 '읍내'로 가는 이 길을 달리면, 구천면 소재지로 되돌아갔다가 위성교 하늘 위 메뚜기 조형물과 재회한 다음 28번 국도를 이용해 비안으로 가는 것에 비해 시간도 거리도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

비안면 '읍내'는 경상북도 내에서 가장 먼저 1919년의 3.1운동을 일으킨 '항일 유적지'이다. '빨리' 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인생을 걸고' 장열(烈)하게 싸우다가 먼저(先) 가신 선열(先烈)들을 찾아뵙는 길인데!

덧붙이는 글 | 마지막으로 청화산을 찾은 때는 5월 초다.


덧붙이는 글 마지막으로 청화산을 찾은 때는 5월 초다.
#의성여행 #청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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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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