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다섯 딸 남겨두고...남편이 죽었습니다

붕어 잡으러 갔다가 시신되어 돌아와...금자씨의 희망

등록 2012.05.24 18:13수정 2012.05.2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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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봐서라도 살아야..." 이금자씨의 무허가 주택이다. 한 눈에 봐도 쇠약해 보이는 금자씨는 지난 달,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다섯 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그녀는 벌써부터 살길이 막막하다. 영정사진 쪽을 바라보며 자는 막내딸 수정이가 안쓰럽고 또 안쓰럽다.
"애들 봐서라도 살아야..."이금자씨의 무허가 주택이다. 한 눈에 봐도 쇠약해 보이는 금자씨는 지난 달,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냈다. 다섯 딸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그녀는 벌써부터 살길이 막막하다. 영정사진 쪽을 바라보며 자는 막내딸 수정이가 안쓰럽고 또 안쓰럽다. 박영미

가정의 달 특집으로 다자녀가구 취재를 위해 군산시청에 수소문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금자(46·전북 군산시 산북동)씨를 알게 됐다. 저출산 시대에 다섯째라니. 알콩달콩 북적북적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를 기대했건만, 전화 한 통화로 모든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어떻게 알고 전화하신 거예요? 애들 아빠, 저세상으로 갔어요."

금자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뜻밖의 상황에 나도 말문이 막혔다. '애가 다섯인데… 남편이 돌아가셨다니…' 믿기 힘든, 믿기 싫은 사실에 가슴은 먹먹해졌다. 더구나 사고 발생일이 지난달 22일. 사망신고서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터. 애써 추스른 금자씨를 또 울게 한 건 아닌지, 전화를 끊고 마음이 무거웠다.

전화를 끊고 잠이 오지 않았다

흐느껴 우는 금자씨의 목소리가 잊히질 않았다. "엄마, 울지 마"라는 세 살배기 막내 목소리도 잊히질 않았다. 사람 사는 세상 별일 다 있다지만, 왜 하필 이 가정이란 말인가.

깊게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야속하고 또 야속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생각은 더 많아졌다. 남편은 어쩌다 돌아가셨는지, 애들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사는 곳은 어떤지...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만나봐야 겠다. 다른 이유 불문하고 만나봐야 겠다.


지난 16일, 금자씨를 찾아갔다. 그녀가 일러준 주소를 찾아 한참을 헤맸다. 골목 안 맨 끄트머리에 내가 찾던 주소가 보였다. 근처에 다다르자 개들이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빨래대에는 애들 옷이 한가득 걸려있다. 한눈에 봐도 쇠약하고 초췌한 여인이 문틈으로 나왔다. 양 볼은 깊게 팼고, 눈 밑은 시퍼렇게 부어있었다.

따뜻한 온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집안은 스산했다. 거실 한쪽 귀퉁이에는 영정사진과 촛대, 그리고 카네이션이 놓여 있었다. 막내(3·강수정)는 영정사진 쪽을 바라보며 낮잠을 자고 있다. 시선을 갖다 대는 곳마다 가슴이 시렸다. 그리고 뜨거운 무언가가 북받쳐 올라오는데 (이미 눈물을 훔치는 금자씨를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딸부잣집에 내린 청천벽력...아빠는 돌아오지 못했다

18살, 13살, 11살, 7살, 3살...그야말로 딸 부잣집. 가진 것 하나 없어도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 그리고 성실한 남편 하나 믿고 살아왔던 금자씨.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은 지난달 22일 일어났다.

7개월째 일거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던 남편은 붕어라도 잡아 팔아보겠다며 충남 부여 옥산저수지를 찾았다. 평소 같으면 늦게 도착한다고 잘 자라고 했을 남편이 밤늦게까지 연락이 없자 금자씨는 불안했다. 즉각 경찰과 협동으로 위치추적을 통해 남편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리고 충남소방서와 합동으로 수색에 나섰다. 헬기가 뜨고 인명구조원이 저수지 물속에 들어갔다. 어두운 밤이라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때 막내 수정이가 울면서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곳엔 수정이의 아빠, 故 강희관씨가 있었다. 

"아이들이 햄을 먹을 줄 몰라...안쓰럽지"

이야기는 힘겹게 진전됐다. 금자씨는 눈물 닦을 힘도 없어 보였다. 금자씨가 걱정돼 찾아온 이웃언니가 거들었다.

"이 집 양반, 참 착했어. 생활력 강하고, 가정밖에 모르고. 애들 신경 쓰느라 안 먹고, 안 쓰고 고생만 하다 갔지. 금쪽같은 새끼들 두고 어떻게 눈 감았는지…."

이집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웃은 계속 말을 이었다.

"이 집 애들은 보통 애들 같지 않아. 햄을 먹을 줄 몰라. 세 살배기 막내도 매운 김치에 물 말아 밥 먹어. 그게 제일 맛나대. 이렇게 살다 보니 애들이 어른이 다됐지. 그거 보고 있노라면 안쓰러워서, 원 참."

기초생활수급자라지만 들어보니 생활은 더 참담했다. 예전에는 보증금 10만 원짜리 아파트에 살았지만 이마저도 낼 형편이 안 돼 지금의 무허가 주택으로 이사 오게 됐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형편이라 동네슈퍼에서 외상 하기 일쑤였고, 넷째 유치원비는 밀린 지 오래다. 또 남편이 7개월째 변변한 일거리를 얻지 못해 쌓인 건 빚뿐. 지금은 기초생활수급비로 나오는 월 22만 원과 쌀40kg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학원 한 번 간 적 없는 큰애는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니며 되는 대로 취업전선에 뛰어들 생각이다. 금자씨 말로는 디자인 쪽에 소질이 있다지만 지금 형편에 대학은 어림도 없다. 둘째, 셋째는 지역아동센터(공부방)를 다니며 한 달에 4만 원 장학금을 받고 있다. 이 돈으로 학용품이며 준비물을 산다는 딸들은 그 흔한 과자 하나 사 먹지 않고 엄마를 살뜰히 챙긴다. 남편 상을 치르느라 며칠을 앓아누운 금자씨는 이런 딸들이 있어 그나마 기운을 냈다.

"저라도 정신 챙겨야죠"

"저라도 정신 챙겨야죠. 남은 사람들은 남은 사람대로 살아나가야죠. 당장 일부터 해야 되는데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네요. 다 딸들이라 (제가) 저녁 늦게까지 일하긴 어렵고, 또 막내 유치원을 보낸다지만 끝나는 시간이 있으니 오래 일하긴 힘들고. 이래저래 막막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일자리를 알아봐야죠."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어머니라고 했던가. 금자씨 자신도 추스르기 힘든 상황에서 애들 걱정이 앞선다. 왜 아니겠는가. 다섯 딸이 그녀의 유일한 위로이자 힘이자 사는 이유인데.

이젠 아빠 없는 하늘 아래, 금자씨와 다섯 딸들이 남았다. 이들이 헤쳐나갈 일들이 벌써 걱정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 따뜻하고 살만하다고 세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이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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